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예 Jan 08. 2024

문해력이 세상을 바꾼다

도리스 레싱, <19호실로 가다>

'아무리 그래도 책 좀 안 읽는다고 일상에서 큰 일이 나겠는가?' 싶을 수 있다. 그보다 우리가 일상에서 피하고 싶은 일들은 상황에 맞지 않는 멘트를 쳐서 ‘갑분싸’ 만들거나, 예약 취소 조항을 잘 못 이해해 생돈을 날리거나, 분명 레시피에서 시키는 대로 한 것 같은데 숯덩이가 나왔다거나 하는 류의, “맙소사!” 소리가 절로 나올 일들이다. 이런 일들을 최대한 피하는 방법은 뭘까? 그게 바로 문해력을 키우는 일이다. 아쉽게도, 문해력을 키우는 일은 책 읽기와 직격으로 연결되어있다. 때문에 '책 좀 안 읽는다고 일상에서 큰 일이 나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안타깝지만 큰 일이 난다"가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눈치는 삼라만상 인간사가 돌아가는 큰 맥락을 읽어낼 수 있어야만 챙길 수 있는 감각이고, 실속 있는 선택이란 자고로 텍스트에 담긴 정보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어야 가능한데 이 모두를 ‘소설 읽기’를 통해 야무지게 챙겨갈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꼭 “자기계발서”라는 딱지가 붙은 책을 읽어야만 자기계발이 되는건 아니다. 세상 모든 책은 자기계발서가 될 수 있다.


사실 문해력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히 읽는 것’이라, 일정 수준의 문해력 향상은 적당한 재미와 적당한 난이도의 작품을 꾸준히 읽는 것만으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앞서 ‘인터벌 독서법’을 언급한 것은, 계속 읽다보면 그 수준을 넘어야할 때가 분명히 오기 때문이다. 또한 비슷한 것만 계속 읽다보면 일명 ‘책태기’가 올 수도 있다.


인터벌 독서법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쪽

https://brunch.co.kr/@egg0001/334


그래서 오늘은 앞서 소개한 '인터벌 독서법에서의 1'에 해당할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건 바로 도리스 레싱의 단편들이다. 도리스 레싱은 초보자가 섣불리 도전할 경우 남은 평생에 걸쳐 책이 싫어지거나, ‘나의 문해력은 역시 구제불능이다’라고 느끼게 할 수 있을 법한 작가다.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 그건 문장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글 자체에 워낙 암시적이고 함축적인 부분이 많아서다. 때문에 여러번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달라질 수 있고, 사람에 따라 해석한 내용이 제각각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렇게나 어려운 도리스 레싱의 작품에까지 도전해야하는 것일까? 첫째, 재미 위주든 뭐든 그간 꾸준히 단편 소설을 읽어왔다면 문해력이 어느 정도 올라왔을 터. 중간중간 이런 난이도 있는 글들을 시험삼아 읽어보며 내 문해력이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해보는 과정이 필요해서다. 둘째, 도리스 레싱은 가부장제 안에서 자신만의 일과 자신만의 삶을 가지지 못한 여성이 어떻게 말라죽어가는지를 여성의 목소리로 예리하게 표현하기 때문이다. 즉, 이 이야기들이 바로 지금 우리의 이야기일 수 있어서다.


남녀 간의 불꽃 튀는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에 있어 도리스 레싱은 여성의 사유와 여성의 감정에 오롯이 집중하여 답을 내놓는다. 나는 이런 측면에서 도리스 레싱의 여러 작품들 중 특히 <19호실로 가다>를 좋아한다. 나는 이 작품이 ‘어떤 감정은 끝끝내 공유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주 신랄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타인의 처지와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착각일 수 있다. 심지어 아주 위험한 착각..


능력과 지성을 갖춘 완벽한 여성 수전은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아내와 엄마, 집의 안 주인의 역할을 해내며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는 채로 서서히 병들어간다. 어느 날 수전은 낯선 도시에 위치한 낯선 호텔의 19호실에서 익명의 한 개인이 되어 처음으로 온전히 혼자가 되어본다. 19호실에서 수전은 아무 일도 안한다. 그저 혼자 의자에 앉아 멍을 때린다.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숨통이 트인다. 하지만 자꾸 수전이 밖으로 나돌자 남편 매슈는 수전에게 불륜 상대가 생겼다고, 아내가 밀회를 위해 더러운 싸구려 호텔 방을 매일 같이 들락거린다고 생각한다. 수전은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사실 그 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그 방이 없으면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는 그런 복잡다단한 감정을 설명하느니, 차라리 멋진 애인이 생겼다는 거짓말로 남편을 이해시키기는 일이 더 쉬워서다.


"나는 수전과는 완전 다르지!" 라고 자신할 수 있는 여성이 과연 존재할 수 있기는 한걸까. 그때나 지금이나, 여성이 온전히 혼자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끝없는 집안 살림과 돌보아야할 가족, 해결해야할 일, 시도때도 없이 울려대는 전화.. 사회적으로,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요구되는 일들은 대개 해도해도 티가 나지 않는 것들이다. 상황에 맞게 가사도우미를 쓰고, 아이를 교육 기관으로, 남편을 직장으로 내보낸다고 해서 이 부분이 궁극적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수전 역시도 그렇다. 자신만의 일과 자신만의 삶을 가지지 못한 여성에게는 그 어떤 선택도 최선일 수가 없다. 19호실 역시도 사실은 그저 미봉책일 뿐인 것이다. 수전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방법조차도, 수전이 서서히 병들어왔다는 지점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더 마음이 아팠다.


맥락이란 본래 행간에 숨겨진 메세지를 읽는 일이지만 때때로 그 행간은 텍스트 이상의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텍스트를 통해 나 자신을, 내가 속해있는 사회를 둘러볼 때 한 단계 높은 차원의 해석 또한 가능해진다. 도리스 레싱의 작품들이 어려운 이유는 사회적인 맥락 없이는 제대로 읽히지 않는 작품들에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이 이야기를 수전 개인의 문제로 국한해서 본다면, 이 이야기는 ’복에 겨운‘ 한 우울증 환자의 에피소드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보다는 이 이야기를 수전과 유사한 옷을 입은 여성들 전반의 문제로 읽어낼 때, 이 이야기는 명품이 되고 우리의 읽기에도 더 큰 힘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작가의 본분은 답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쪽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작가들이 아무리 문제를 제기한다 한들, 아무도 읽지 않는다거나, 혹은 기껏 읽어놓고도 부족한 문해력으로 인해 요지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종국에는 다들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는 그런 세상이 오지 않을까? 사회 전반적인 문해력이 낮아진 상황에서 문학은 그저 신선놀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되어버릴 수 있다. 문학이 세상을 구원하려면 일단 사회 구성원 다수의 단단한 문해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문해력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전 14화 재미없는 책을 올바르게 덮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