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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예원 Nov 16. 2019

어릴 땐 몰랐으나 지금은 안다

재는 것에 관하여


어릴 적에 난 할아버지 댁에 갈 때마다 근처 개울에서 친척동생과 함께 올챙이를 잡았다가 다시 풀어주며 놀았고, 개구리나 개구리 알이나 모두 그저 내 옆에 있는 것이 당연한 것들로 여겼으며 심지어 도롱뇽이나 커다란 물고기가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가도 개의치 않고서 첨벙 대며 놀곤 했다.


그런데 나이가 더 든 지금은 아마 그리 하라 해도 하지 못할 것 같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개울 속의 무언가 들이 이제는 징그러운 존재가 되었고 그것들이 내 피부에 스치기만 해도 그들이 어떤 독이나 해를 품고 있을지 몰라 두려워 소리소리를 질러대며 질색팔색 할 게 분명하다.


개울뿐 아니라 친척동생과 잘만 돌아다니던 뒷산도 이제는 그곳에 뱀이나 독초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 섣불리 들어갈 엄두도 나지 않고, 조금 용기를 내어 올라가다가도 자그마한 기척에 혹여 산짐승일까 빠르게 하산해버리고 만다. '산에 가면 뱀 나오니 가지 말라'라고 했던 어른들의 말씀을 놀고 싶은 마음이 앞서 무시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그저 농담으로 겁을 주려 하는 말이 아니었음을 너무 잘 알게 되었다. 어릴 땐 몰랐으나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이 생각보다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아서일 테다.




난 연애나 누군가와의 만남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엔 그저 내 눈에 아름답기만 하면 그 사람의 속이 어떤 모양을 하고 어떤 질감을 가지고 있는지, 그 속에 어떤 독이 들어있을지도 모르고 그저 그 사람의 뒤를 쫄래쫄래 쫓아다니거나, 그런 이가 내게 호감을 표시해오면 경계의 태세도 없이 홀라당 내 마음을 다 줘버리고 말았더란다.


허나 그런 이들에게 몇 번 데고 나니, 이제는 겉만 번지르르하여 속은 보여 줄 생각도 없이 접근하는 누군가들을 환멸스러워한다.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이제는 깨달아 스치려고 접촉을 시도만 해도 질색팔색 하며 거리를 유지한다.


외롭다며 내 맘을 맡길 사람을 함부로 찾으려 하고, 소중하지도 않은 것들에 혹해 멋대로 겁도 없이 그들을 운명이라 치부하려 했다. 그게 뱀이나 독초를 품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릴 땐 몰랐으나 지금은 안다. 사람을 너무 쉽게 믿으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말씀도 이제는 전부 안다. 날 재미나게 혹하려 하는 것들은 거진 위험을 품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사무치게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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