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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예원 Nov 16. 2019

나를 무너뜨리는 것은

기대에 관하여


예전에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심한 결벽증 환자를 치료하는 장면이 나왔다. 정신과 의사로 나오는 주인공이 자신과 환자 사이에 쓰레기 통 속에 있던 쓰레기들을 잔뜩 늘어놓고 그것을 일부러 만지게 한다. 환자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외면하려 하지만, 주인공은 그럴수록 더 독하게 쓰레기를 손에 꽉 쥐어준다. 그리곤 더러운 것을 만져도 당장 큰일이 나지 않음을 상기시켜주고, 더러워진 손은 씻으면 그만이라고 알려준다. 일부러 두려운 것과 맞닥뜨리게 해서 강박을 반복적으로 이겨내게 하는 치료법이었다. 나는 그 치료법이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이기 두려워하는 나에게도 적용이 될 줄 알았다.




나는 누군가와 호감을 가지고 연락을 시작하면 곧잘 무서워하곤 한다. 별 것 아닌 것에도 입맛이 뚝 떨어질 정도로 예민해지며 상대가 나의 아주 사소한 흠이라도 발견할까, 또 그래서 나를 싫어하게 될까 봐 치를 떨 정도로 민감해진다. 나는 저 강박증 치료법처럼 내가 계속해서 그런 상황에 놓이면 나만의 대처법이 생긴다거나, 그렇게 나쁜 상황으로만 치닫지 않음을 깨닫거나, 만일 정말 나쁜 상황이 와도 그것 또한 털어내 버리면 그만이라는 낙관적 생각을 끌어안을 수 있겠거니 했다. 그리고 나는 실로 참 많은 수의 이성과 연락을 했었다.


그들과 연락을 하고 끊고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정도 그쪽의 반응에 의연하게 대처하기도 하고 그 연락하는 사람 때문에 앓지 않는 나를 보며 이제 그 새로운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무뎌져 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 무뎌짐은 내가 그들을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음에 있었다. 내가 그들을 진정으로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무뎌짐을 가장한 무관심. 내가 그들에게 진심 어린 호감을 가지지 못해서, 그들이 만약 내게 어떤 흠을 발견해 나를 싫어하게 되어 떠나가더라도 나는 별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꽤 오랜만에 조금은 정말 만남을 가지고 싶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 나타나자, 나는 여전히 두려워졌다. 여전히 진심으로 끌리는 상대와 연락을 한 후의 새벽을 오롯이 평안하게 보내지 못했다. 편히 잠을 청하는 게 세상 가장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가 내게 어떠한 싫은 내색 하나 비춘 적도 없었고, 오히려 좋은 꿈 꾸고 잘 자라며 예쁜 말까지 주고받으며 잠시 연락을 쉬고 있는 것뿐인데 나는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드라마처럼 그 상황에 최대한 많이 맞닥뜨려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최대한 설레발을 아끼고 섣불리 우리의 미래를 맘대로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혼자서 먼저 앞서 가지 말 것. 그 기대심이라는 게 항상 나를 벼랑으로 내모는 주범이었다는 걸, 이제 와 깨달았다. 잘 될 거야 하고 이유나 근거가 없는 맹목적인 희망에 목을 걸며 맹신하지 말고, 그저 이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 그와 호감을 나누는 것. 섣불리 건 희망은 결국 나중엔 고문으로 돌아오곤 했으니까. 최선을 다 했지만 안될 수 있다는 현실도 그냥 그럴 수 있다고 의연히 받아들이는 것. 그래도 나는 괜찮을 테니까. 만일 미래의 내 옆에 그가 없어도 나는 크게 기대한 적이 없으니 미련도 심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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