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에 관하여
내가 고등학교 1학년 시절, 한 설렁탕 집 뒤에 자리한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가서 약 1년간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곳은 조금 시골 같은 느낌이 있어서 길고양이들이 꽤나 많았는데 그중 한 고양이가 길고양이라 치기엔 사람을 굉장히 좋아했다.
내가 처음 그 고양이를 만났을 때, 그 고양이는 우리가 있건 말건 서슴없이 우리 집 마당으로 발을 들였었고 그런 고양이가 신기해 조금 조심스럽게 몸을 낮추어 눈을 마주하니 금세 내 다리 쪽으로 다가와 자신의 몸을 비비며 내게 친밀감을 표시했다. 무려 첫 만남에. 그 정도로 사람에게 경계심이 없던 고양이였던 지라 난 길고양이가 아닌 설렁탕 집에서 키우고 있는 고양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설렁탕 집에선 키우는 정도는 아니고 하도 사람에게 예쁜 짓을 많이 하길래 팔다 남은 고깃 조각 몇 덩이씩 먹여가며 끼니만 챙겨주고 있다고 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그 고양이를 예뻐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나도 그 고양이와 꽤나 친해졌고, 어느 날부터는 마당에 내가 없으면 야옹거리며 집 안에 있는 나를 부르기까지 했다. 야옹거리는 소리에 나가 보면 바로 내 옆으로 다가와 내게 몸을 비비적대며 온갖 애교를 부렸고 나도 그런 고양이가 귀여워 참치 캔이나 물을 주며 그 애교에 답례를 표했다. 그리고 나중엔 내가 학교에 가고 없을 때에도 마당에서 나를 부르기에 우리 엄마가 대신 나가 내가 없음을 말해주고 잠시 같이 놀아주기도 했었나 보다. 그래서 하루는 날씨가 좋아 엄마가 햇볕에 빨래를 말리기 위해 밖에다가 빨래를 널고 있는데 그 고양이가 마당으로 들어와서는 엄마의 발 근처에 무언가를 툭 내려놓았다고 한다. 뭔가 싶어 확인하니 죽었는지 기절했는지 움직이지 않는 쥐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고. 순간 너무나도 놀란 엄마는 재빨리 그 쥐를 다른 곳으로 치워버렸다고 했는데, 그 일이 있고 나중에 어디선가 그것은 고양이 입장에선 엄청나게 큰 선물을 준 셈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자신이 직접 잡은 그 쥐는 고양이 입장에선 엄청나게 소중한 것인데, 그 소중한 것을 미련 없이 우리에게 선물로 준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엄마와 내가 얼마나 고맙고 미안해했는지.
나는 사실 아주 어릴 적에 골목길을 걸어가다가 굉장히 사나운 길고양이에게 공격당할 뻔했던 적이 있어서, 그 고양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고양이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과 무서움이 남아있었다. 물론 그 고양이를 만난 이후에도 고양이 카페에 한번 방문했다가 본의 아니게 피를 보고 온 적이 있어서, 지금도 고양이보다는 강아지가 조금 더 편한 감이 있다. 그래도 난 그 고양이 덕에 꽤 많은 편견과 고정관념이 깨부수어졌다.
그리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사랑하고 싶은 이, 사랑하는 이에게 내 모든 것을 꺼내 주었다가 상처 받은 일이 너무나도 많아서 이젠 자그마한 것 하나 내주려고 하지도 못하는 내가, 그 고양이처럼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또 누군가에게 미련 없이 내어줄 수 있을까. 망설임 없이 그에게 내 모든 것을 걸 수 있을까.
해가 가면 갈수록, 어떤 이를 거치면 거칠 수록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크기가 쪼그라드는 것 같고, 처음 사랑을 느낀 그 감정은 다시 느끼기엔 눈 씻고 찾아도 보이지가 않는데. 나는 그 고양이처럼 정말 소중한 내 마음을 두려움이나 불안함 없이 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누군가를 내 품으로 안아 그가 짊어지고 있는 고정관념과 편견의 틀에서 풀어줄 수 있으려나.
오늘따라 그 고양이가 참으로 크게 느껴지는 새벽이다. 내 세상보다 한없이 너그럽고 관대한 세상을 가진 그 고양이가 날 품어준 것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