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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예원 Nov 13. 2019

어쩌면 사람의 실질적인 관계는

사람의 관계에 대하여





조금 먼 친척 분이 연남동에서 유명한 식당을 경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엄마한테 전해 들었다. 평소 홍대와 연남, 신촌, 합정 그 언저리를 제 집 드나들 듯이 하던 나인지라 혹시 어딘지 아느냐 물은 엄마의 물음에 대충 어디에 위치했을지는 감이 온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럼 다음에 한 번 가보라는 말에 멋쩍은 웃음만 지어 보였다.


물론 나도 한 번 가보고 싶기는 하지만 그 친척 분은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딱 한 번 본 게 다였고, 그래서 얼굴도 제대로 모르며 어른들의 말씀 속 이름만 몇 번 들어본 게 다일 정도로 거의 남이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섣불리 방문하기는 나도 그분도 불편할 게 뻔한 상황이었다. 솔직히 얼굴도 잘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방문해봤자 그분이 아실 여러 사촌들의 이름을 거론해야만 나를 조금이나마 친척 중 한 명으로 인식할 정도이니까. 그 이후 나는 친구와 연남동에서 그 식당을 실제로 발견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도 방문을 한 적은 없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친구와 함께 연남동으로 향했고 한 돈가스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자리를 잡고 테이블 앞을 보니 선반에 내가 평소 좋아하는 성우 분이 다녀갔다는 라벨이 붙어있었다. "오, 이거 봐. 그 성우님이 여기 왔다 가셨대." 나는 그 라벨을 가리키며 친구와 그것에 대해 작게 이야기를 나누곤 사장님께 주문을 했다. 그런데 사장님께서 나와 친구가 한 대화를 들으셨는지 내게 그 성우 분을 알고 있느냐며 흥미롭다는 듯 이것저것 말을 붙이셨다. 식사를 하면서 계속 사장님과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고 그 사장님은 나와 내 친구에게 음료수를 서비스라며 건네셨다. 그리고는 "성우님이 우리 가게에 가끔 들리시는데 그 성우님을 알고 계시기에 저도 모르게 반가워서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말을 걸었네요. 식사 방해해서 미안해요." 하며 웃어 보이셨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나는 사람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친척이지만 그것은 명분뿐인 생판 모르는 관계와, 완전 남이지만 같은 사람을 알고 있다는 공통점으로 만든 유대감. 같은 연남동에서 장사를 하시는 두 분. 어쩌면 내겐 친척분의 식당이 더 친근하고 가까이 느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까지 그곳에 방문한 적이 없고, 처음 방문한 아예 생판 모르는 남의 가게에선 더 많은 대화와 교류를 나누며 잠시 30분 이야기한 것으로 소박하지만 감사한 마음마저 받았다.




사람의 관계란 참 웃긴 것 같다. 가족들에겐 한마디 꺼내지도 않는 속 이야기를, 만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어도 말이 잘 통하는 지인에겐 조금씩 털어놓을 때가 있다. 친척이지만 옆을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할 사이, 완전 남이지만 자주 보며 서로의 일상과 안부를 나누고 전혀 새로운 곳에서 만나게 되어도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이웃과 단골들.


어쩌면 사람의 실질적인 관계는 명분이나 혈연이 아니라 물리적, 심리적 거리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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