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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위 Nov 19. 2016

플라이 피싱

숲 소리 발전소

마지막으로 강원도 고성을 찾은 건 작년 겨울이었다. 북쪽 산간지방의 겨울은 자연과 인간의 물리적 충돌을 반복하며 지나간다. 덕장의 물고기만 말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 뿌리내린 사람들의 근육과 눈빛도 질겨지는 계절이다. 눈은 끝없이 내리고 도로엔 견인되어 가는 자동차와 마을의 입구를 찾는 중장비들이 힘겹게 움직이고 있었다. 백두대간의 끝자락인 마산봉(1052m)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눈으로 막혀 들어가지 못하고 아쉽게 돌아서야 했다. 일체의 번뇌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백면서생의 얼굴처럼 고요하던 고성의 숲. 그러나 여름의 고성은 완전히 다른 에너지의 세계다.
소소리 높은 나무들은 저만치부터 무성했다. 바위의 표면에는 손가락이 긁고 지나간 듯 줄금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적어도 허리춤까지 물이 흐르던 길이다. 영동지방의 계곡은 경사가 급하고 유속이 빠른 만큼 수량이 급변하는 특징이 있다. 몇 주째 가뭄으로 바위가 드러나고 모퉁이 안쪽마다 조그만 모래 바닥이 생겨난 것이다. 일행들이 먼저 자리를 잡자 더 이상 공간이 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비박을 해야 했다. 큰 바위들이 굴러 내려오다 더 큰 바위를 만나 차례로 멈춰 선 곳 아래에 얇은 매트리스를 깔고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간간이 피부가느낄 수 있을 정도로 비가 내렸다. ‘지금이라도 텐트로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다 왠지 모를 지금의 긴장감이 좋아서 그냥 있기로 했다. 수력 발전소처럼 소리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다면 아마도 여름이 가장 좋은 계절일 것이다.

위치는 숲의 입구가 적당하다. 이런 때는 코도 눈도 귀가 하는 일을 따라가지 못한다. 물이 불어나거나 산짐승이 나타날까봐 두려운 것이 아니다. 자연의 소리가 가진 수만 개의 은유가 세상을 압도하는 기분 때문에 조그만 인기척에도 놀라게 되는 날이다. 낙엽을 쓸고 다니는 바람, 영민한 벌레들의 움직임, 새의 기분과 날씨의 변주를 귀 끝으로 짐작하는 밤. 어느 지점에선가 스르르 거대한 숲이 기지개를 펴고 산이 공전하고 머리맡의 바위가 수백 년 만에 다시금 삐걱거리는 것이다. 나는 꼼짝 않고 누워서 하루살이처럼 몰려드는 상상을 가능한 침착하게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작업을 날이 샐 때까지 반복해야 했다. 밤새 돌멩이에 끼워둔 헤드랜턴 위에는수많은 벌레가 날아오고 곤충이 다녀갔다. 뼈가 굵고 다부진 사마귀 한 마리가 숲의 요정처럼 지키고 서있기도 했다. 그와 나는 우주에 단둘이 남겨진 것처럼 화해했다. 자연으로의 여행은 이방인이 된 낯선 느낌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시작된다.

도원리 계곡은 영동지방에서도 최북단에 위치해 위도 상으로는 서쪽의 북한보다도 높은 지역이다. 그만큼 북설악에서 내려오는 깨끗한 물이 흐른다.
자연 활동에서라면 가장 존경하는 김진영 선배.

다음 날 정상까지의 거리를 가늠하지 못하는 내게 “도시에 살면서 원근감을 잃은 거예요”라고 말하는 김의 통찰이 무척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잃은 채 살아가는 것이 원근감뿐일까? 가벼운 소리와 냄새에 본능적으로 반응할 때마다 퇴화를 거듭하는 인류의 어느 날로 되돌아갔다 오곤 한다.

도원리 계곡은 영동 지방에서도 최북단에 위치해 위도 상으로는 북한의 개성보다도 높은 위치에 있다. 그만큼 사람의 손길이 닿기 어렵고 상류까지는 좁은 등산로도 없어 오로지 계곡을 따라서만 올라갈 수 있다. 트위그앤블룸(TWIG'N BLOOM)의 김진영 선배에게 도움을 청하기위해 연락을 하던 날도 그는 이곳에서 홀로 밤을 맞이하던 중이었다. 김 선배는 단순히 물고기를 잡기위해서가 아니라 계곡을 탐구하는 방법의 하나로 낚시를 시작했다. 계류에 살고 있는 물고기의 습성, 돌과 이끼의 모양, 아침과 저녁에 날아오르는 곤충들의 색깔. 플라이 낚시를 하면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수 천년 동안 풍화작용과 급류에 닦여서 이루어진 화강암 바위의 아름다움은 우리나라만의 자랑이야. 물고기를 많이 잡겠다는욕심을 가지기 보다는 넓은 의미에서 자연을 탐구하고 플라이 피싱이 가진 복합적인 재미를 느껴야 하지.”

우리나라에도 영국의 플라이 낚시나 일본의 텐카라 낚시와 비슷한 방식으로 충북 영동의 여울 낚시가 있었음을만화가 오세호 작가의 <만화로 배우는 민물낚시>(도서출판자음과 모음)를 통해 알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여울 낚시는 3.6~5.4m의 민물 낚싯대와 동물의 털을 이용해 만든 미끼로 채비를 꾸렸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촛농을 호두 크기로 뭉쳐 찌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촛농은 부력이 뛰어나 찌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도 적당한 무게가 있어 미끼를 멀리 던질 수 있었다고 한다. 금강유역에서 팽이 모양의 나무와 오리털 바늘을 이용해 끄리, 강준치 등을 잡았던 ‘팽이낚시’도 이른바 ‘털바늘’로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낚시 방법이다.

계류에 서식하는 어종은 매우 예민하기 때문에 캐스팅을 하기 위해 다가가는 것조차 조용히 해야 한다. 낮은 포복으로 가야만 할 상황도 있다고.

앞서가던 김진영 선배가 뒤따르던 일행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슬쩍 민다. 걸음을 멈추고 물러서 기다리라는 의미다. 배낭에 묶어두었던 낚싯대를 꺼낸다. 곧이어 플라이를 달고 릴에서 빠져나간 라인이 떠올랐다. 햇살을 잔뜩 머금은 허공을 앞뒤로 가르기 시작한다. 비행기가 지나간 다음 생기는 비행운처럼 급류 위를 가볍게 부유하던 줄과 훅이 수면위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은 물위를 따라 내려가다가 일순간 수면 아래로 빨려 들어간다. 물고기가 잡힌 것이다. “계류에 서식하는 어종은 굉장히 예민하고 민첩해서 낮은 포복으로 다가갈 정도야. 포인트를 포착했다면 그만큼 조용히 준비해야 해.” 그제서야 김 선배가 입을 연다.

우리나라에서 플라이 낚시로 잡을 수 있는 대상어종은 크게 열목어와 산천어로 나뉜다. 열목어는 몇 해 전부터 보호종으로 지정돼 포획이 금지되었다. 도원리 계곡 외에 삼척의 오십천 또는 남대천에서 산천어를 찾을 수 있다. 산천어는 송어의 육봉형으로 강에서 태어났지만 바다에서 살다가 알을 낳기 위해다시 강으로 향하는 어종이 강이나 하천에 적응해 살아가는 대표적인 경우다. 따라서 종의 기원을 거슬러올라가면 산천어의 서식지는 바다와 연결된 하천이어야만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영동지방에 산천어가 서식하는이유다. 산천어 역시 무분별하게 포획할 수 없고 20cm 이하의 어린 개체는 살려줘야 한다.

왜 플라이 낚시를 환상이라고 생각했을까? 제법 손바닥 크기만한 물고기가 단 한 번의 시도로 훅을 삼켰다. 김 선배는 라인을 감아 뜰채로 물고기를 떠올리고는 단 번에 미끼를 뽑고 놓아준다. 물고기를 풀어줄 때 역시 손의 온기나 악력이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기에 매우 신중해야한다. 포획한 물고기를 다시 방류해주는 활동은 플라이 낚시에서 시작된 문화다. 1905년 알래스카에서 태어난 리 울프(Lee Wulff)는 무분별한 남획을 절제함과 동시에 플라이 낚시를 단순한 고기잡이의 과정이 아니라 스포츠 피싱 문화로 발전시키고 싶어 했다. 그가 제창했던 ‘캐치 앤 릴리즈(Catch & Release)’는 당시의 앵글러들에게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현재까지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비가 제법 쏟아지다 사그라진 아침 도원리 계곡을 내려왔다. 물에 젖은 배낭이 팽팽하게 어깨를 당긴다. 간밤부터 내린 비 때문에 수량이 제법 늘어난 웅덩이에 캐스팅을 몇 차례 더 하고 한 마리를 잡았다가 풀어주었다. 플라이 낚시의 매력은 캐스팅과 함께 동물의 털을 이용해 수서곤충 모양의 미끼를 만드는 타잉(Tying)도 빼놓을 수 없다. 현지에서 자주 발견되는 곤충의 모양과 색깔을 확인하고 즉석에서 훅을 직접 제작하는 작업은 이 영역의 또 다른 재미다. 준비부터 릴리즈까지 오랜 의식의 한 과정 같은 모습. 플라이낚시는 세밀한 기술을 요하는 만큼 어렵고 까다로울 뿐더러 장비의 가격도 비싸 도전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비록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만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멋진 풍경. 플라이 낚시가 문득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에티켓과 매너가 필요한 시대라는 것을 알려준다.

부럽고 따라하고 싶은 김진영 선배의 야영 스타일. 단출하되 힘이 있다.
도원리 계곡에서 하룻밤. Photo by Oz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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