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싫으면 남도 싫음을 알아야 한다'
예전 팀장님의 소개로 알게된 ‘숨고’라는 플랫폼은 외주에 대해 예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을 갖게 해주었다. 본래 ‘외주’라는 것은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 외부 전문가한테 일을 의뢰하는 것’인데 외주를 맡기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갑’의 위치에 있음을 기본전제로 깔고 다음과 같은 ‘무리한 요구’를 ‘당연시’한다.
1. 일은 빠르게 (이번 주 내로, 혹은 3일 내로)
2. 가격은 저렴하게
3. 모든 편의는 나에게 맞추어서
4. 여러 번의 수정작업은 당연히 기본 가격에 포함.
이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다. 업체 내부에서 일을 끝마치는데 평균적으로 소요되는 시간보다 ‘더 빨리’ 일을 끝내길 원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추가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왜 ‘급속!’이 보통 서비스보다 가격이 더 비싸겠는가. 더군다나 내부 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기 때문에 외주를 주는거다. 내부 인력에게 주는 비용보다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른 시간과 저렴한 비용’은 물론 나의 회사까지 와달라, 여러 번의 수정작업을 당연하게 여기는 ‘갑질족’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나는 못하지만, 너는 해야지’라는 이중잣대는 외주-프리랜서의 관계에서만 있는 게 아니다. 회사 내부에서도 빈번히 발생한다. 매번 마감일보다 하루 혹은 이틀 빠르게 일을 처리해주면 언젠가부터 일을 시키는 사람은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반대로 매번 마감일을 맞추지 못하고 몇 일, 길게는 몇 주를 늦게 겨우겨우 일을 끝내는 사람에게는 마감일을 지켜만 주어도 고생했다고 한다. 심지어 마감일을 지키지 못할 경우에는 항상 일을 빨리하는 사람에게 일을 슬그머니 넘긴다. ‘니가 얘보다 더 능력있고 빨리하니까 좀 대신 해줘’다.
능력이 있는 사람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빨리, 좋은 질(quality)의 일을 해내는 능력은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치열하게 살았다는 증거다. 능력이 없는 사람보다 ‘보상’을 해주어야 할 일이지, 당연하게 단물을 빼먹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이 없는 사람이 나보다 더 큰 보상(혹은 연봉)을 받는다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애사심을 떨어트리고, 회사를 레몬마켓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비단 어느 특정 회사에만 있는 문제가 아니다)을 거치면서 나의 태도도 변화했다. 내가 외주를 줄 때는 상사가 지시하는 것보다 ‘프리랜서’의 입장에 서게 된다. 갑보다는 을을 지지하겠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일을 시킬 때도 마찬가지다. 못하면 끝까지 ‘네 힘으로’ 할 시간을 준다. 그리고 마감일을 지키도록 채찍질한다. 마감일을 지키고 일을 잘 했을 때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후임, 동료, 상사를 막론하고 기대에 부응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 경우에는 한 소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지위를 떠나 함께 일을 하는 ‘구성원’으로서 자기 분량은 온전히 자신이 책임지고 일을 해라, 이거다.
나는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을 힘을 키워야 한다. 좋아하는 사람을 보노라면 나도 분발해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 임경선, 「태도에 관하여」
6, M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