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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Oct 13. 2022

시련의 동지

우리 참 잘 버텼다.

올해가 되자마자 꿈을 꾸었다. 친구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들판에 서 있었다. 잔잔한 자수가 놓인 고급스러운 크림색에, 허리에서부터 치마폭이 풍성하게 펼쳐진 화려한 드레스였다. 나는 그런 친구 옆에서 결혼을 축하해주었다. 꿈에서 깨자마자 친구에게 카톡을 보내 꿈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친구는 ”좋은 일 있으려나~“하며 기대해 보겠다고 했다. 이틀 후, 이른 아침부터 카톡이 와있었다.

”나 청약 당첨됐어!! 네 꿈 덕인가 봐!“

해몽을 검색해 보니 꿈에서 결혼한 인물의 재산이 늘어나는 꿈이라고 했다. 친구가 청약에 지원했다는 것도 몰랐는데 이런 꿈을 꾸다니… 상대의 꿈도 꿔주는 우리는 아주 가까운 친구다.


그녀는 나보다 한살이 많은 언니지만 대학 동기이고, 내밀한 이야기까지 아는 20년 지기 친구다. 대학 시절 함께 몰려다니던 무리였지만 단둘이 시간을 보낸 적은 없는 어색한 관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둘만의 친분이 생긴 것은 졸업 후였다.


내가 편집 디자이너에서 웹디자이너로 전직하기 위해 학원에 다니며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언니는 대학원 석사 논문을 쓰느라 고생하고 있었다. 내가 취업에 성공하고 야근으로 열정페이를 불태우고 있을 때, 언니 역시 회사에서 매일 야근으로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런 우리에게 가장 어두운 시기가 있었으니 내 나이 서른여섯, 언니는 서른일곱.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긴 공백 끝에 성공한 취업은 회사 사정으로 1년 만에 퇴사하게 되어 결국 또 백수가 되어버렸고, 언니는 그간의 경력을 뒤로하고 오랜 꿈이었던 패션디자이너의 길을 걷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홍대입구역 4번 출구 스타벅스 지하. 우리는 출석 도장을 찍듯 만났다. 암묵적으로 독서실 같은 그곳엔 자리 맡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도대체 언제 완성할지 모르는 포트폴리오를 게으르게 만들고 있었던 반면 언니는 영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패션 쪽을 시작하기에는 나이가 있었기에 언니의 돌파구는 오로지 해외 취업뿐이라고 했다. 어떤 날은 에너지 드링크를 6개나 마시며 공부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나는 그저 시간을 때우는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언니는 죽도록 이 상황을 탈출하려 기를 쓰는 사람이었고, 나는 현재에 주저앉아 탈출하는 시늉만 하는 듯했다.


늦은 오후 엉덩이가 아파질 때쯤이면 공부를 접고 밖으로 나갔다. 주머니는 가벼웠지만, 무한리필 식당 같은 가성비 좋은 곳을 찾아 부족함 없는 포만감을 누렸다. 밥을 먹고 나면 서점 한켠에 있는 츄러스 가게에서 달달한 츄러스에 커피를 마시며 본격적으로 수다를 떨었다. 알고 지낸 세월이 세월인지라 이미 몇 번이나 되풀이한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 수다를 떨고 "자세한 것은 다음에 얘기하자!"며 아쉬움을 남기고 헤어지곤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우리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애써 슬픈 내색을 하지 않은 날도 있었지만, 때로는 와르르 무너지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부모 원망, 세상 원망, 있을지 없을지 모를 전생까지 들먹이며 이 세상 모든 것을 원망하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언니는 미국에 있는 회사에 합격했지만, 중개업체의 어이없는 실수로 무산되었다. 나는 지원한 공고들에 ‘읽음’ 표시조차 없던 이력서를 매일 확인해야 했고, 가뭄에 콩 나듯 갔던 면접에서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우리의 삶이 여기서 더 나아질 수 있을까? 그때 우리에게 희망이라고는 없었다. 언니는 공장 생산직 일로 생활을 꾸려갔다. 나는 나의 게으름으로 자초한 일이었지만, 명문대 석사 타이틀을 가진 언니가 공장에서 일하며 해야 했던 마음고생은 도저히 헤아릴 수 없었다. 그렇게 각기 다른 절망의 시간을 담담하게 흘려보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설명할 수 없는 마법 같은 순간들이 찾아온다.

나는 승산 없던 취업을 포기하고 프리랜서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신기하게도 프리랜서를 시작했다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여기저기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오랜 공백의 워밍업 삼아 프리랜서 일로 자신감과 경제적 상황을 회복했을 때쯤 예전에 일했던 회사에서 연락이 와 다시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언니의 성실성과 이력서를 유심히 봐왔던 일하던 공장에서 디자이너로 정직원 제안을 받았다. 그리고 현재는 팀장이 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풀리지 않았던 것들이 바닥을 딛고 다시 정상궤도로 향하고 있었다.




지난여름. 미국으로 출장을 다녀온 언니와 만났다. 내 생각이 나서 샀다는 기념품을 건네주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언니, 그때는 못 갔지만 미국에 갈 운명이었나 보다. 이렇게 가게 된 것 보면…”

“그러게. 그래도 그때 재밌었어.”


도무지 보이지 않던 불확실한 미래. 실타래같이 꼬여버린 삶. 가장 어두웠지만 어떻게든 자존감을 지키려 작은 즐거움들로 위로했던 우리는 결코 초라하지 않았다.

언제나 나의 시시껄렁한 농담에도 박장대소로 답해주는 언니. 나의 시련의 동지.

우리 참 잘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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