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기린 Oct 15. 2022

번데기 집

긴 밤과 짧은 낮이 있는 번데기 같았던 집. 나의 30대는 그곳에 있다.

구로동 원룸촌 구석, 9층 맨 끝방. 계약서에는 분명 5평이었지만 실체감은 4평. 일주일도 넘게 열지 않는 문. 때로는 인큐베이터 같았고, 때로는 관 같았던… 긴 밤과 짧은 낮이 있는 번데기 같았던 집. 나의 30대는 그곳에 있다.


그 집으로 이사 갈 때만 해도 잠깐 살다가 결혼할 때 나가면 되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혼을 생각했던 오랜 연인과 헤어졌고, 잘 다니던 직장은 그만두게 됐다. 잔병치레는 해도 입원은 해본 적 없던 내가 건강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받았다. 공백이 길어지며 그동안 모아놓았던 돈도 다 써버렸다.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다. 아무리 충전해도 금방 방전되어버리는 고장 난 배터리 같았다. 무기력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장녀라는 자존심에 가족들에게는 궁핍한 티도 내지 못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7년을 살았다. 살았다기보다는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해가 뜨고, 해가 진다. 그리고 또 해가 뜨고, 해가 진다. 현관 입구를 막고 있는 재활용 쓰레기. 싱크대엔 방치되어 곰팡이가 핀 채 쌓여있는 식기들. 이 방에 움직이는 것이라곤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는 나의 손가락과 나보다 활기 넘치는 초파리. 종일 이불속을 벗어나지 못했다. 바닥에 커다란 싱크홀이 뚫린 것처럼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하루가 지났는지, 이틀이 지났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 암울한 낮과 밤.


동생이 밥 잘 챙겨 먹으라며 보내준 냉동 볶음밥 택배가 문 앞에 온 줄도 모르고 며칠이 지나버렸다. 볶음밥은 이미 오래전에 해동되어 쉬어버려 동생의 마음만 고맙게 받았다.

그 와중에 작은 성취라도 하고 싶었는지 깨어있을 땐 블록을 깨는 모바일 게임을 종일 했다. 취침 시간은 새벽 5시. 6시. 7시. 이내 아침 8시까지 미뤄졌다. 눈을 뜨면 오후 2시가 훌쩍 넘었다. 유일한 스케줄인 아침겸 점심겸 저녁을 대충 챙겨 먹으면 곧 해가 졌다. 밥 한번 먹는 것도 겨우 하는데 의욕이 있을 리가 없었다. 집 앞 편의점에 가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모든 일이 두렵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친구들은 일터에, 가족들은 지방인 고향에 있는데 내 상황이 떳떳하지 못하니 전화 통화를 하는 것도 싫었다. 사람과 나누는 대화라고는 가끔 필요한 것을 사러 나갔을 때 “봉투 필요하세요?”라는 말에 “아니요.” 같은 말이 다였다.


그래도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없었다. ‘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힘들게 할까...’ 못난 푸념을 했다. 죽지 못해 사는 것은 맞았다. 그래도 어이없고 외로운 죽음은 싫었다.

화장실에서 넘어져 다쳐도 아무도 모르겠지. 아마 내가 죽어도 아무도 모를 거야.’ 하며 화장실에 들어갈  항상 휴대폰을 챙겼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신세 한탄을 늘어놓자 친구는 말했다.

“너는 재능이 많은데 이렇게 있는 게 안타까워”

눈물을 꾹꾹 누르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울음보를 터트렸다.




지금도 우연히 그곳을 지날 때면, 무기력을 뒤집어쓴  번데기처럼 웅크린 내가 여전히 누워 있을 것만 같다.  결과로 함량미달인 40대를 맞이했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좋았겠지만, 나에게는 그때는 ‘그럴 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떠나보내고, 다시 시작해야  .

단지 나의 게으른 기질로 시작이 조금 오래 걸렸을 . 덕분에 자신에 대한 가장 길고 깊은 고민을 했고, 언젠가는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는 ‘남들처럼, 평범하게’라는 말이 간절한 만큼 야속하고 아리게 슬펐다. 지금은 남들처럼 출근길 지옥철에 몸을 싣고,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월급날과 주말을 기다리는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고향에 내려가면 가족들에게 근사한 밥도 사주고, 조카들에게 용돈도 줄 수 있는 장녀, 이모 노릇도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한 건 나처럼 방황하는 방구석 청춘들에게 위로를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디  버텨주길 바란다.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방황해도 괜찮다고 두드려 주고 . 언젠가는 때가 온다고, 당신의 힘으로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올  있다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당신의 친구가, 당신의 가족이  문을 열고 나오기를 기도하고 응원하며 기다려주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절망이 거름이 되어  글을 쓰고 있는 나처럼.


이전 07화 포토샵 하는 회사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