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기린 Feb 18. 2024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이번 설 연휴에 고향에 내려가 한 것이 있다면 드라마 정주행이다. 매일 유튜브만 보고 살다가 오랜만에 드라마를 봤다. 요즘 화제작인 내 남편과 결혼해 줘. 주인공이 억울하고 가슴 아픈 죽음을 맞이하고 깨어나 보니 10년 전으로 돌아가 있었고, 똑같은 결과를 맞이하지 않기 위해 운명을 바꿔 가는 이야기이다. 속시원한 사이다 전개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보았다. 그러나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내 머릿속엔 한가지 질문으로 가득 찼다. 

'내가 만약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바꾸고 싶을까?'




31, 32살. 나쁘진 않았다.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고, 평화롭다 못해 권태로웠던 연애 또한 하고 있었다. 그때쯤 나는 무슨 고민이 있었을까? 기억도 나지 않는다. 바빴던 남자 친구에 대해 애정을 갈구하고 있었던 것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드라마 주인공처럼 내가 오늘의 기억을 다 가져간 채로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지체 없이 그때의 남자 친구에게 이별을 고했을 것이다. 물론 그 또한 쉽지 않았겠지만. 그랬다면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 나의 꽃다운 나이를 그렇게 안타깝게 흘려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퇴사하기 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이직할 곳을 마련하고 퇴사했을 것이고, 좀 더 공격적으로 이직에 임했을 것이고 자신에게 과하게 엄격하지 않고 좀 더 상향 지원하고. 남아돌았던 시간에 교정과 쌍꺼풀 수술을 해도 좋았을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지금 사뭇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극적인 상상이 아니어도 나는 그때 이미 그 미래에 대해 알고 있었다. 동생의 지인이 알려준 그대로였다.


“저희 언니도 좀 봐주세요. 여기 사진이요. 둘이 결혼할 것 같아요?”

“결혼 안 해. 헤어질 거면 얼른 헤어지라고 그래~ 헤어지면서 힘들 텐데 그만큼 성장할 거야. 회사 그만둘 생각 있으면 그만두지 말라고 그래. 이번에 그만두면 한참 동안 이직 못하니까.”


동생의 시댁 지인 중 무속인 분이 있다. 10년 전쯤, 동생은 명절에 시댁에서 그분을 만난 김에 새해 운세를 물어보다가 문득 내 것까지 물어보았던 모양이다. 당시 나와 오래 교제 중이었던 남자 친구와 내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결혼하겠냐고 물었던 것이다. 사진을 보자마자 그분은 단박에 “결혼 안 해”라고 했다고 한다. 그해 말에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오랫동안 백수 신세였고, 지지부진한 연애를 몇 년간 버티다가 결국은 힘들고 고통스럽게 마무리지었다. 무속인의 이야기가 아니어도 세상의 이치를 알았다면, 나 자신을 조금만 객관적으로 들여다봤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나의 오늘을 들여다본다. 10년 후에 오늘을 돌아보며 나는 어떤 것을 바꾸고 싶을지 말이다. 글쎄... 지금은 내가 인생의 항로를 틀 만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 같다. 불행을 대비하는 것밖에는... 큰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식단과 건강을 관리하고 병원에 가서 정기검진을 받는 것,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차곡차곡 저축하는 것,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그리고 글을 계속 쓰는 것.


작가의 이전글 불청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