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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잠 Dec 16. 2023

짐짝 같은 사랑





며칠 전에 동생에게 올 한 해 고생했다는 의미로

동생이 가지고 싶어 했던 무선 이어폰을 선물해 줬다.

동생에게 전한 건 이어폰뿐만이 아니었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 켜놓고

밖에서 자전거 타거나 걸으면 절대 안 돼."

라는 걱정 어린 말까지 덧붙여서.

사실 이런 바보 같은 이유로 이걸 선물할지 말지

며칠을 고민했던 것 같다.


어머니의 퇴근시간은 보통은 나보다 늦어

퇴근시간에 맞춰 마중 나가는 일은 내게는 익숙하다.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는 길 가로등이 그렇게 많은데

굳이 뭣하러 나가냐고 뒤통수에 볼멘소리를 던지지만

밤길이 어두워서, 흉흉한 뉴스를 봐버려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런 이유들도 있겠지만

그저 같이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유 모를 걱정들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어서

고단함에 지친 몸을 이끌고 마중 나가곤 한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길고양이들이 제법 있는 편이라

출근하며, 퇴근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게 된다.

겨울인데도 가을 같던 날씨 탓에 별생각 없이 지내다

갑작스러운 추위에 패딩을 꺼내 입고 길을 나서는데

평소라면 이때쯤 보였을 털북숭이들이 보이지 않자

괜한 걱정에 마치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굼뜨게 출근길을 걷는다.

결국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기껏해야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한겨울을 잘 지낼 수 있을지 하는 걱정뿐이면서

말 한 번 섞은 적 없는 것들에 마음을 빌려준다.


사랑해야 하는, 사랑하고 싶은 것들이 늘어난다는 건

그 과정이 다소 고통스럽고, 마냥 행복하지 않더라도

그것마저도 축복이라고 생각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삶의 무게에 대해서 고민하는

철없는 어른이 되어버려서일까

무언가를 사랑하는 일이 마치 짐짝처럼 느껴지곤 해.

마냥 무겁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그리 가볍지도 않은.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은 존재가 생길 때마다

사랑의 무게만큼 부질없는 걱정조차 늘어버려

시작을 망설이는 이유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을 먹먹하게 하는

이 짐짝 같은 사랑을 내려놓을 수 없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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