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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진영 Jan 25. 2024

아버지가 사라진 날

뜨겁고 서늘하게, 애틋하고 서글프게

2021년 늦봄에 아버지를 잃었다. 상실의 감정이 커서 아버지의 죽음에는 '잃었다'는 표현을 쓰게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보고 싶다는 사람들의 말은 참이다. 아끼던 맏딸이라서, 그럼에도 늘 퉁명스럽게 아버지를 대한 후회가 짙어서, 거울을 볼 때마다 그를 꼭 닮은 내 얼굴이 거기 있어서. 내게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수만 가지 이유가 있다.  


아버지는 광복 이듬해에 태어났다. 몇 년 후 전쟁이 발발했고 갓 시집온 작은어머니의 등에 업혀 피난을 떠난 고난의 세대다. 아버지는 그 시절의 가난과 배고픔을 길게 설명하는 대신 20리를 걸어 학교에 다닌 사실을 강조했다. 아버지가 몇 년 간 살았던 시골집을 찾을 때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에 산길을 따라 꼬마 아이들이 차례로 걷는 풍경을 떠올려본 것도 그 때문이다.


술잔을 기울이는 날이면 아버지의 이야기는 가지를 뻗었다. 학교에 보내줄 수 없다는 말에 감나무 밑에서 며칠이고 울었던 기억, 참 예뻤던 어린 누이를 잃고 슬퍼한 날들, 기타를 만들기 위해 장롱 뒤판을 몰래 잘라낸 때와, 대식구를 건사하려 직업 군인을 택한 결심이 열매처럼 투 욱 툭 맺히고 터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 생각이 많았다.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검은 옷을 입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친구의 눈시울은 붉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라 했다. 나는 적당한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하고 꼭 안으며 중얼거렸다.


"미안해, 내가 어제 무서워서 연락을 못했어."

나는 이 문장을 올바르게 말하지 못하고 울먹였다. 친구의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메시지를  받은 후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나는 '괜찮으시냐?'는 질문을 수없이 썼다 지웠다. 누군가의 죽음이 확정되는 순간만큼 두려운 일은 없어서, 나는 죽음으로 향하는 어둔 길목을 밤새 서성였다.


영정 사진 속 얼굴은 친숙하고도 낯설다. 시간의 간극 때문이거나 세월의 더께가 이유일 게다. 몇 번 뵌 적은 있으나 오래전이다. 유쾌하고 인자한 어른으로 기억하는데 몇 번의 만남과 친구가 전해준 일화들이 완성한 이미지다. 나는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리며 좋은 곳으로 가시길 진심으로 기원했다. 상주들과 맞절을 하며 부디 슬픔에 갇히지 않기를, 스스로를 탓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것은 나에게 건네는 위로 같은 것이기도 했다.


"언니, 엄마가 다시 병원으로 오래. 아버지, 돌아가셨대."

몇 해 전 여동생도 말을 제대로 끝맺지 못하고 흐느꼈다.


새벽 4시에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건 나였다. 엄마와 통화가 되지 않는다고, 아버지 상태가 좋지 않으니 서둘러 오는 게 좋겠다고 간호사가 말했다. 잠든 엄마를 깨워야 하나 혼자 가는 것이 맞나 망설이다 문을 두드렸다. 조용히 단 한 번 불렀는데 엄마는 깨어 있는 사람처럼 곧바로 방문을 열었다. 병원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우리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게 한 시간이 될지, 반나절이 될지, 하루가 될지 몰라요."

의사는 아버지의 정해진 결말을 설명했다. 나는 엄마의 재촉에 떠밀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를 탔다. 언제가 될지 모르니 집에서 기다리라는 이유였지만 나의 불안을 헤아린 엄마의 마음이라는 걸 알았다. 해가 뜨고 있었고, 하늘이 고왔으며, 쓸쓸함이 공기 속에 가득했다. 엄마의 바람처럼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죽음 앞에서 도망치는 쪽은 매번 나였다.


"아빠 보러 가자."

옆자리에 앉은 여동생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집 근처 30분 거리에 자리한 절에 아버지를 모시고 자주 찾아오리라 다짐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사천왕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고 한편에 자리한 납골당으로 향했다. 아버지의 자리는 쉬는 듯 고요했다. 


“꽃 피고, 열매 맺고, 산빛 고와지고, 흰 눈 나리는 순간마다 아버지를 생각하겠습니다. 무엇으로 오시든 거기 계신 줄 알겠습니다. 사랑합니다. “

아버지의 사진 아래 마지막 인사를 적은 것은 나다. 계절마다 떠올라 한바탕 휘젓거나 적시듯 스미는 이유는 그 문장 때문이라 생각했다. 아버지가 사라진 후 나는 겨울 속에 산다.


1946-2021 나의 아버지. 빛나는 미소를 가진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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