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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곤 Dec 29. 2017

[미국 여행] 조지타운과 내셔널 몰

미국, 워싱턴 D.C. (2)

나의 미국, 나의 캐나다

프롤로그 ― 워싱턴D.C. ― 나이아가라 ― 몬트리올 ― 퀘벡 ― 보스턴 ― 뉴욕

워싱턴 D.C. 편 : (1)(2)(3)




   워싱턴 D.C.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미국 정치의 일번지였다. 그렇기에 미국 현대사가 남긴 발자취가 도시 곳곳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링컨이 암살당한 포드 극장부터, 킹 목사가 그 유명한 "I have a dream" 연설을 했던 워싱턴 대행진, 구 우체국 건물을 사들여 개조한 트럼프 호텔까지. 그중에서도 미국 역사의 최중심은 역시 백악관이나 국회의사당에서 볼 수 있겠지만, 이들 기관을 견학하는 데에는 따로 허가절차가 필요하다. 결국 게을러서 못 들어가 봤다는 이야기지만.


   오늘 이야기할 조지타운(Georgetown)과 내셔널 몰(National Mall) 역시 미국 역사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장소다. 둘의 차이점이 있다면 조지타운에는 고풍스러운 건물에 역사가 담담히 숨겨져 있는 반면, 내셔널 몰의 박물관들에는 역사의 흐름이 크게 또렷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겠다.




조지타운


   호스텔에서 매주 진행하는 공짜 투어 프로그램이 있어 조지타운에 다녀왔다. 조지타운은 워싱턴 외곽에 있는 고급 주택 지역인데, 옛날부터 워싱턴의 고위 인사들이 거주하던 곳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슈퍼스타 K> 우승자 로이킴이 다녔던 조지타운 대학으로 익숙한 동네기도 하다. 가수가 된 막걸리 회사집 도련님으로 기억하기엔 얽힌 역사가 많은 동네이긴 하지만.


   주거 지역인 만큼 눈에 띄는 랜드마크는 없다. 하지만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케네디가 백악관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살던 집이나(결국 돌아오지는 못했다), 조지타운 대학의 고풍스러운 건축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잔재미가 있었다. 대학교 기숙사 옥상정원에 올라서면 저 멀리 워싱턴 중심지가 내려다 보인다. 워싱턴 기념탑과 국회의사당을 밝힌 조명이 가까운 댈러스 공항을 오고 가는 비행기 불빛과 겹쳐져 꽤나 아름다운 야경이다. 일부러 찾아가 볼 만한 곳은 아니지만, 한나절 투어에 참여하면 워싱턴의 다른 얼굴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Kalyan Neelamraju via flickr


   조지타운에는 지금도 고위 관료가 많이 살아서인지 고급 식당이 즐비하다. 이 동네 대부분의 식당에는 '대통령 아무개가 즐겨 찾던 식당', 'OO 장관의 추천 식당' 같은 문구가 따라붙는다. 같이 투어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모두 맥주 한 잔씩 하러 간다며 가까운 펍을 향했지만, 나와 태국 여대생 무리는 만 21세가 안 되는 관계로 따라갈 수 없었다. 동네에 있는 모든 식당이 들어가기 망설여지는 가격대를 자랑하는 탓에 나는 호스텔로 돌아가 샌드위치나 사 먹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부잣집 따님들로 추정되는 태국 여대생들이 나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제안하였고, 그들을 따라 가까운 타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이 친구들은 모두 태국 최고 대학인 쭐라롱껀 대학 학생들이었다. 나처럼 방학을 맞아 미국을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국민소득이 그리 높지 않은 태국에서 멀리 유럽이나 미주로 장기 여행을 떠나는 건 큰 특권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친구들은 벌써 몇 주 간 미국 전역을 여행하고 있었으니, 상당한 부유층이라는 걸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나고 자란 나는 왠지 백화점이나 고급 식당, 하여튼 부유함과 관련된 그 무엇 앞에서 긴장하고 무력감을 느끼곤 한다. 이때도 마찬가지로 가장 싼 메뉴 20달러짜리 팟타이 앞에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볶음 국수 한 그릇에 2만 원이 넘다니... 주문을 하고 있으니 태국 요리를 먹으러 왔으니까 자기들이 계산하겠다며 태국 친구들이 통 크게 이것저것 주문했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였다. 갑작스런 호강에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고마운 마음에 아는 태국어를 몽땅 동원하여 태국 요리의 우수성과 태국인의 친절함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았다. 태국 친구들은 국뽕에, 나는 비싼 타이 요리의 맛에 취한 화기애애하고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내셔널 몰


   조지타운에선 한적한 주택가에 숨겨진 역사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면, 워싱턴 최중심부의 '내셔널 몰'에서는 박물관에 다채롭게 전시된 미국 역사를 감상할 수 있었다. 내셔널 몰은 워싱턴 기념탑과 국회의사당 사이에 펼쳐진 넓은 광장 겸 공원이다. 광장 양 옆으로는 스미소니언 재단에서 운영하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촘촘히 자리 잡고 있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 날 군중이 모여드는 바로 그곳이니 TV에서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광장을 중심으로 동쪽의 국회의사당은 현대 미국 정치의 중심이고, 서쪽에는 건국의 아버지 워싱턴을 기리는 거대한 탑이 우뚝 솟아있다. 그 사이에 들어선 박물관들에는 미국의 자연과 문명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야말로 내셔널 몰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과거와 현재를 한 장소에서 보여주는 거대한 전시장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립중앙박물관은 이촌, 독립기념관은 천안, 전쟁기념관은 삼각지, 역사박물관은 광화문, 이렇게 뿔뿔이 흩어져 있는데 내셔널 몰처럼 서로 가까이 위치하여 상호보완적인 전시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trevorklatko via flickr


   전날 같이 식사했던 태국 부잣집 따님들과 더 친해지고 싶었으나 이들이 아침 일찍 호스텔을 떠난 관계로 룸메이트 블레이크(1편 참조)와 내셔널 몰 구경에 나섰다.


   첫 목적지는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Smithsonian National Air & Space Museum). 1846년 영국인 과학자 스미손의 기부로 설립되었다. 비행기의 발명부터 시작하여 달에 사람을 보내고, 태양계 바깥으로 탐사선을 내보내기까지 항공우주사를 집대성한 곳이다. 비행기, 로켓, 우주선이 실물 크기로 전시되어 있어서 어린이(와 나 같은 어른)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다만 시내에 위치한 공간적 제약 때문에, 콩코드 여객기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 호 같이 크기가 큰 전시물은 시 외곽의 우드바-하지 센터에 별도로 전시하고 있으니 참고하자. 사실 그곳까지 가보고 싶었으나 '나는 진성 항공 덕후가 아니다'를 마음속에 세 번 되뇌며 꾹 참았다. 물론 후회하고 있다.


   스냅챗으로 여자 친구에게 거대한 로켓 사진을 보내며 '내 [검열삭제] 같지?'라는 메시지를 덧붙인 블레이크의 어메리칸 마인드 다음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폴로 프로그램 관련 전시였다. 달에 사람을 보내겠다고 담대하게 연설하는 케네디의 모습과 실물 크기의 달 착륙선 '이글' 모형, 그리고 실제로 만져볼 수 있는 월석(月石)까지. 약간 유인우주탐사 덕후 기질이 있는 나에게는 가슴이 콩닥콩닥한 시간이었다. 특히 '이글' 모형 옆으로는 달 착륙선 조종사의 시점에서 착륙 과정을 시뮬레이션 해볼 수 있는 코너가 있었는데, 무사히 착륙했음을 알리는 "Eagle has landed"라는 무전 소리는 언제 들어도 벅찬 느낌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돈 많이 벌어서 스페이스엑스(SpaceX) 주식 왕창 사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Pedro Szekely via flickr


   항공우주박물관 외에도 내셔널 몰에는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등 세계 수준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를 재밌게 봤다면 자연사박물관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전시물이 살아 움직이진 않지만 멈추어 있어도 여전히 흥미롭고 즐거운 관람이다. 참고로 <박물관이 살아있다>의 배경은 뉴욕 자연사박물관이지만, 개인적으로 뉴욕보다 이곳이 더 규모도 크고 관람하기에 더 재밌었다. 내셔널 갤러리는 로댕, 터너, 렘브란트, 몬드리안, 백남준 등 고전과 현대를 아울러 세계적인 작품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미국 미술관들도 생각보다 유럽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어서 미 동부의 몇몇 미술관(MoMA, 보스턴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등)만 둘러보아도 '교과서에 나오는' 화가의 그림은 한 번씩 다 볼 수 있었다.


   내셔널 몰에 위치한 박물관과 그 소장품을 보며 미국이 최근 수십 년 간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하며 어떻게 기술 진보를 이끌어 왔으며, 얼마나 많은 문화적 자산을 흡수해왔는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한때 영국, 프랑스 등 제국주의 열강이 그랬던 것처럼. 맹목적인 미국 추종은 물론 경계해야겠지만, 강대국의 역사와 자부심을 관찰하고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인가 생각해 볼 수 있는 하루였다.



Cover image: Wally Gobetz via flickr


이 승 곤 : Seunggon LEE

―가늘고 길게 여행과 사진,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든 배우는 사람"이라는 은사님 말씀이 아깝지 않도록 살고 싶습니다.

FACEBOOK : INSTAGRAM :

rupert112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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