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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정과 열정사이 Nov 08. 2024

가장 교묘한 학대자

피해자의 얼굴을 한 가해자

다른 엄마들과 다르게, 그녀는 딸인 내게 어떤 장점이나 좋은 게 있다는 걸 믿지 못하는 듯 보였다.


내게 친구가 있다는 것이나 약속이 있다는 것조차, 그녀에겐 믿지 못할 사실이었다. 그래서 난 수없이 이런 말을 들었다. "가?!~네가 무슨(친구가 있어?)"이런 식의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그건 더 나아가서, 과거 기억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20대 때 나는 약속이 많았고, 주에 5일은 친구들 지인들 모임으로 바쁘게 보낸 편이었다. 어느 날 가족들이 티비를 보는데, 과거 월드컵 경기 응원장면이 나왔다. 신나게 응원하는 관람석과 길거리 응원단이 보이자 예전 추억이 떠올라서 "아 저땐 진짜, 다들 밖에서 신나게 응원했는데~!"라고 말하자, "네가 무슨 응원을 해. 넌 집에 박혀있었겠지..."라고 비웃으며 답하는 게 아닌가. 살짝 당황하고, 착각했나 싶어서 '아닌데? 나 친구들하고 경기장 갔는데..'라고만 대답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무시당한 기분이 들었었다. 항상 엄마는 기억이 다르고, 내 이미지는 나쁜 쪽이고, 내가 잘한 일에도 늘 '별게 아닌 취급'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엄마가 잘못 기억했나?'싶다가도, 그 말의 속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엄마의 말대로면, 나는 친구도 하나 없고, 불쌍하고, 아무도 날 좋게 평가하지 않는 그런 '모자란 사람' 그 자체였다. 이러니 나는 그녀가 도대체 나를 좋아하긴 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그냥 관심이 없어서인지 늘 아리송송한 것이었다.

어린 시절 피해자였던 아이가 커서는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내가 마지막까지도 가족을 끊어내지 못하고 고민하고 망설이고 때론 타협하고 용서하고 잘 지내보자고 수년을 끌어왔던 것은, 물론 가족이기도 했지만 엄마를 피해자로 여겨서 정을 끊질 못했던 게 가장 컸다. 물론, 그녀는 학대가정에서 착취를 당하며 살았고, 그보다 더 한 남자와 결혼을 한 안타깝기 그지없는 피해자였다. 그런 그녀를 나는 어려서부터 늘 '구해줘야 할 사람'으로 여겼던 것 같다. 그러나 지난 시절 내가 착각했던 것은 나의 모친이 가장 큰 피해자라는 믿음이었다. 많은 이들 중에 나와 같은 이들이 많은 듯하다. 그래서 가족을 떠나지 못하고, 연을 이어가면서 평생을 고통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고통스러운 시간 동안 처절히 깨달은 건, 그녀도 그들과 한패였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마음으로 인정하기가 너무나 괴로워서, 자꾸 스스로를 타협을 해왔던 것이었다. 왜냐면 '피해자'라고 여긴 엄마를 나를 괴롭힌 상대로 탈바꿈해 보는 게 말도 안 되는 일 같았다. 그러기에는 그녀는 너무 착하고 연약하고 불쌍한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타인을 매우 신경 쓰고, 오히려 손해를 보고 이용도 잘 당했고, 늘 누군가를 두려워하고 쩔쩔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 인생을 발목 잡은 게 그녀의 그런 가련한 피해자의 모습 때문이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올해 초, 이런 나와 비슷한 사연들을 유튜브 영상에서 많이 찾아보았다. 아직 심리상담을 받기엔, 걸리는 것도 많고 시간과 비용도 써야 해서 일단 내 힘으로 해볼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자는 마음에서였다. 어떤 엄마를 미워하는 딸에 대한 영상에 달린 댓글들이 무수히 많았는데, 베스트 댓글들이 아주 볼만했다. 그 댓글 사연은 눈물 없이 읽기 힘든 그런 학대에 대한 고백도 있었고, 어떤 이는 나이가 60이 넘어서도 노모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 기억나는 것은 명백히 엄마가 딸을 경제적으로 이용하고 있고(오랜 기간) 아빠의 빚을 떠안고 있는 여성이었는데, 그래도 그녀의 부모는 일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그 딸에게만 의존하고 있었다. 아빠는 거기다 알코올중독에 도박까지 하고 있었는데 딸을 거의 '현금지급기'로 쓰고 있었다. 그녀가 아무리 엄마에게 아빠와 이혼을 하고 갈라서라, 자신이 엄마의 노후는 보살피겠다고 해도 그 엄마는 아빠가 불쌍하다며 이혼을 못한다는 사연이었다. 그리고 더욱 가슴 아픈 건, 그런 엄마가 너무 가엾어서 딸도 가족을 못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기마저 떠나면, 그 가족은 누가 먹여 살리며, 아빠의 빚은 누가 감당하며, 그럼 자신의 엄마는 어떻게 되겠냐는 말을 하며 이걸 '가족'이란 숙명으로 어쩔 수 없는 내 팔자라고 말을 하는 게 아닌가. 난 그녀가 너무 안쓰럽지만 왜 '끊어내질 못할까....'라는 탄식이 나왔다. 다행히도, 그녀의 사연에 모든 이가 나와 비슷한 심정으로 조언들과 현실적인 충고를 해주고 있었다.(이게 유튜*의 선역할인 것 같다) 그 답변 중에 '옳타구나!'하고 추천했던 건,

'본인 어머니가 불쌍한 건 알면서, 왜 자신이 더 불쌍한 건 모르냐'며 어머니는 이미 선택을 하신 거다. 안쓰러워도 그건 어머니의 인생이고, 아빠를 불쌍하다는 엄마와 엄마가 불쌍해서 못 떠나는 본인이(그 딸) 똑같다는 것이었다. 그걸 빨리 깨닫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라는 충고였다. 그걸 여러 차례 보면서, 난 생각이 절로 많아졌다. 몬가 나에게 해당하는 말 같기도 했다. 물론 나는 그 사연의 여성만큼 경제적인 것으로 착취를 당하진 않았다. 하지만, 현실을 보기보단 자꾸 '좋게'타협을 하려 했고, 모친이 피해자라 믿는 생각 때문에 평생을 가족들에게 감정, 정신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끊지를 못하고 있었다. 사연 속 딸이 착각하는 것만큼이나 나도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당연한 의심도 들었다.

그들은 교묘한 방식으로 공격한다.
 회피와 깎아내림, 죄책감으로 조종하기
작은일에 분노폭발이 특징.

사실 그간, 우리 가족의 문제점을 깨닫고 그들과 거리를 두고도, 마지막까지 엄마는 예외였다.  엄마를 선한 역할, 피해자로만 보는데 익숙했다. 아무리 많은 증거가 하나하나 드러나도 그저 미숙한 엄마, 몰 잘 몰랐었다는 핑계로 수없이 그녀를 대신 합리화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사연 속 딸처럼 착각을 깨야 한다고 느꼈다. 그녀는 늘 나를 보호해주지 않고 오히려 동생과 아빠에게 협조했으며, 뭘 해도' 니 탓이야, 네가 잘못해서 그래'라는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해왔다. 나는 항상 엄마의 속마음을 알지 못했고, 나를 좋아하는 건지 미워하는 건지 파악이 안 됐다. 그건 그녀의 늘 애매모호하고 순수한 표정, 뒤늦게 불리하면 '내가 몰 몰랐다'는 식의 핑계들, 내 고통이나 감정에 철저히 무관심한 태도 때문이었다. 그리고 최근 사건까지도 확신하지 못했다. 최근에서야, 내가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는 걸 이해했다. 그녀는 얼마 전 꽤 큰 목돈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그 방식이 너무나 괴상했다. 처음엔 투자 얘기처럼 하더니, 당연한 걸 묻는데, 버럭버럭 소리치며 "엄마를 못 믿냐!!'라고 분노를 했고, 나중에 네가 나이 들어서 도움 안 받을 같냐고 따지더니, 가족보다 돈만 중요한 애로 몰고갔다.


나는 사실 파악을 위해, 당연한 질문 몇 가지만 했을 뿐인데 말이다. 그러다가 나중엔 머리가 아프고 쓰러질거같다며 울먹울먹 하는 것이었다. 나는 결국, 부모를 의심하는 가해자 '나쁜 년'이 되었고 그녀는 피해자가 돼버렸다. 막판엔 엄마가 전화 중에 갑자기 잘못될까, 두려워서 알겠다고 해버렸다. (그 뒤로, 수많은 일이 있었고 나는 가족, 특히 엄마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이런 많은 사건이 있음에도, 나는 그녀의 핑계를 어쩌면 믿고 싶었던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이중적인 모습과 애매모호한 상황은 늘 있어왔다. 예를 들자면, 내가 어렵사리 지금 겪는 힘든 사건을 말하거나 하면, 그녀는 묵묵부답으로 답을 안 하거나 다른 화제로 얘기를 재빨리 돌렸다. 내가 어떤 위로나 공감을 기대하고 한 말들에는 철저히  회피를 하거나 겨우 '응..'으로 답을 해서 무안하게 만들었다. 또는 제삼자가 내 옆에서 내 장점을 칭찬하거나, 내가 어떤 시험이나 응시에서 좋은 결과를 받았다고 말을 전하면, 이상하게 엄마는 딴청을 피우듯 못 듣거나 아니면 기뻐하는 내 얼굴을 보면서, "그런데.., 그것도 요새 시대엔 불리하다더라..." 부정적 의견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럼 난 곧바로 들뜬 기분이 팍 식고, '이게, 별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너무나 교묘하고 순간적이고, 쉽게 지나치기 쉬운 일이라 의심하는 게 나의 잘못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기까지, 의심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얼마 전 겪은 그런 '분노발작'에 가까운 화는 나를 몹시 두렵게 만들었는데 왜냐면, 이건 일반인들의 단순한 화나 분노가 아닌 거의 '발작'에 가까운 격노였기 때문이다. 발작을 하다가 나아가 실신을 것처럼 보이거나, 잘못될 같은 모습으로 가족들러서나 지금이나 겁박하고 공포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이런 분노조절장애 같은 모습은, 알고보니 심리조종자들에게서도 자주 보이는 패턴이었다. 갑작스러운 '큰소리'를 냅다 지른다거나, 발작이나 자해에 가까운 모습으로 공포심을 자극시키고 '위협'하는 제스처가 공통점이었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이 분노발작을 통제는커녕, 피해자를 자극시키고 꼼짝 못 하게 하려 사용한다고 한다. 마치 공작새가 상대를 위협하려고, 몸을 크게 부풀리는 것처럼


내게는, 강한 신념체계평생에 걸쳐 심어져 있었다. '엄마니깐 날 사랑하겠지 속으론..'이런 믿음이었다. 그런데 엄마에겐 어떤 관심이나 반응 자체가 없었고, 늘 나는 안 보이는 사람처럼 무관심했으며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무시와 평가절하를 당하고 있었다. 최근에서야 점차 '내가 보고 느낀 게 사실 맞는 거구나'라는 걸 깨닫고 있다. 엄마보다는 타인인 남의 집 아주머니나 학교 선생님이나, 음식점 아주머니나 먼 친척들이 나에게 더 따뜻했다는 걸. 그녀는 우리 집에 올 때마다, 현관에서부터 커진 눈으로 모든 걸 점검하고, 지적하기 바빴다. 나는 그게 그저 보통 엄마들의 잔소리, 집안일에 대한 걱정이겠거니 여기려 했다. 하지만, 일반적 잔소리라 쳐도, 그녀는 모든 걸 현미경처럼 보고 '트집'잡는 사람이었고, 나는 완벽하지 못한 채, 부끄럽고 검사받는 기분이었다.


 난 이제야, 오래전부터 엄마의 지인들이 내 앞에서 '(왜 그렇게 말했지)... 애가 멀쩡한데..'라고 의아해하던 반응이 이해가 갔다. 그녀는 아마, 내 걱정이란 것을 수도 없이 그들에게 했을 것이고, 그건 '내 부족한 점, 단점에 대한 흉이었으리라. 그래서 그 지인들은 하나같이 나를 엄마를 걱정시키는 부족하고, 장점이라곤 없는 그런 딸로 안타깝게 들었다는 걸..., 이제는 나도 인정을 해야겠다. 그녀는 나를 사랑한 게 아니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한 것도 아니다. 그저 나 하나를 '부족한 애'로 찍어놔야 성이 차는 것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자기감정을 모르고, 회피하는 유아적인 사람이기에, 친딸을 싫어하고 차별하는 자신을 인정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엄마를 엄마로 보지 않고, 제삼자 타인으로 보아야만 그 실체가 낱낱이 밝혀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밝혀진 사실은 뼈아픈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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