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내 가족과 비슷한 사람들을 알아보게 된다. 나는 오늘도 길에서, 한 중년의 부부가 고성방가로 대낮에 싸우는 걸 목격한다. 부인이 붉어진 얼굴에 갈라진 목소리로 삿대질을 해댄다. 옆동에 살고 있는 이웃인데, 내가 본 삼 년 내내 저 모습 그대로이다. 특히 저 아주머니는 사계절 내내 전화통을 붙들고 집주위를 배회하며 하소연과 성을 내고 있었다. 남편에게 온갖 쌍욕을 하며 '나가 죽어라'등의 폭언을 날리고, 무엇을 그리 잘못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자녀들에게도 똑같은 모습이었다. 저대로 살면정신병이 올 거 같은 가족 분위기였고, 그녀는 도대체 어디서저런 힘이 나서,매일'드라마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그런데 저런 가족분위기가 고대로 닮았던 게 우리 가족이었다. 사춘기시절과 20대 내내 저 꼴이었고, 하루도 드라마가 안 쓰인 날이 없을 정도였다. 지금 와서 떠올려보면, 거기가 지옥이고 아수라판이며 정신병동이었다. 거기서 하루하루 심장이 쪼그라들듯 피가 마르게되는 나와 달리, 나머지 가족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아니, 오히려 싸움판 갈등판에서 에너지를 축적하는 듯해 보였다. 그들이 흡수한 것은 갈등에서의 에너지였을까..,의문이다.
그들은 늘 드라마를 일으키며, 거기서 힘을 얻는다 마치 뱀파이어같이.
내가 여행업 쪽에서 근무할 때 겪은 '드라마퀸' 경험담이다. 신생여행업체였는데, 두 달 정도가교육기간으로 같은 교육생들을 열댓 명이 있었다. 이주정도 지내보니 30대 후반의 여자 동기생이 나에게 유독 친근감을 보이며 다가왔다. 그녀는 같은 강사 경력이었기에 기존의 경험들을 얘기하며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때까지는 특이한 건 잘 몰랐고, 유난히 친근감을 표시하고 사소한 먹을 것들, 이를테면 사탕이나 음료수 같은 걸 잘 챙겨주는 발랄한 사람이라고만 여겼다. 다들 교육생이라, 어색하고 아직 일도 서투르고 실수라도 할까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낯설고 새로운 환경이라 그녀의 급속한 다가옴이 반갑게 느껴졌던 것 같다. 같은 교육생이자 동기라는 반가움에 나는 어떤 수상함도 못 느끼고 받아주는 형태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한 건 그리 멀지 않은 시기였다. 고된 실습과 교육을 오전 내내 받고, 반가운 점심시간이 왔다. 나는 내 옆자리인 그녀와 둘이 근처의 식당을 갔고 주문을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이전 경력에 대한 동질감으로 학원에서 일하던 경험담을 나눴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는 이상한 말을 '콕'찔러하는 것이었다.
"oo 씨같이 중학생 가르치던 거랑 고등 입시생은 수준이 다르지..., 중등부는 아무나 할 수 있는데.."
'헉, 내가 지금 몰 들은 거지..'(잠시 머뭇머뭇거렸다)
그런 내게 그녀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잽싸게 말을 던졌다.
"몇십 명 가르치는 학원이랑, 전문 강사랑 같아? 호호호. 너무 몰 잘 모른다,아이고..."
그녀는 여전히 웃으며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을 이었고, 그게 마치 농담이라도 되는 듯한 태도였다. 분명히 기분이 나빴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몇 주간 보던 그녀의 친밀한 태도와 지금 상황이 너무도 달라 '인지부조화'같은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모라고 대처할 말을 금세 찾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그러자 그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새로운 일에 대한 화제로 바꾸는 것이었다. 모라고 내가 알맞은 대꾸를 하기도 전에 말이다. 한쪽으로는 씰룩거리며, 비웃음 비슷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그저 이어서 화제를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모라 콕 집어서 말로 표현하기는 모 하지만 '쎄함'을 느낀 것이었다. 기분이 나빴지만 이미 지나간 상황이라 모라고 반박의 말을 하기도 어려웠다. 다른 교육생들은 우리가 부쩍 친해졌다고 '단짝'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그 일 이후로도 그녀의 작은 '간식'공세는 이어졌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그녀의 그런 '이중성'이나 이상함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고, 나도 아직 가깝지 않은 다른 이들에게 그녀에 대해 함부로 얘기를 전할 수도 없었다. 나는 이미 그녀의 정체를 좀 눈치채고 있었기에, 사무적인 얘기 외에는 깊은 얘기를 하지 않았고, 두 달여를 꽤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다행이랄까 두 달이 흐르고, 여기저기서 그녀와 트러블이 있는 사람들이 우수수수 쏟아지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문제들이 다 그녀와 일하는 사람들에게 터졌다. 나는 그사이, 그녀 외의 다른 동기들과 친해졌고 상사나 강사들과도 친분이 생겼다. 이젠 옆자리도 아니기에, 그녀와 억지로 대화를 나누거나 참을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를 자기 밑으로 여기는 듯했고, 친한 사이인 척 붙으려 하거나 속 보이는 칭찬을 종종하며, 절친인 것처럼 행동했다. 그녀는 행동패턴이 '모욕'을 주면서도 가까이 두려 하고, 팀으로 할 일에도 본인이 상사처럼 지시를 내리고 가르쳤다. 7~8년 전이라, 그때는 '나르시시스트'란 말을 들어보지 못했고, 성격 장애에 대한 지식도 일반화되지 않은 때였다. 세 달이 지나자, 모두가 그녀를 피했고 같이 일하기 꺼려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의 팀의 재간둥이 같은 이미지였고, 모두와 잘 지내는 유형이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그녀를 꺼려하는 걸, 그는 이해하지 못했고 그 트러블메이커를 안쓰럽게 여기는 듯했다. 마치 우리가 팀인데 이유 없이 그녀를 따돌리는 것처럼 보는 듯했다.
그녀가 만드는 무수한 이간질, 깎아내림, 공격성을 그는 보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그만이 유일하게 감싸주고 다가가고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호의를 베풀었다. 그녀는 6개월쯤 되자, 팀의 시한폭탄 같은 존재가 되었고, 이제는 감추려 해도 그 성격이 가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나는 그녀와 한번 심한 언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모두에게 기록이 보이는 웹사이트 직원공간에, 동료인 내가 큰 잘못을 해서 그로 인해 고객이 피해를 봤고 자신이 그 실수를 메꾸느라 힘들었다며 재교육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고발글을 썼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온갖 욕이 절로 나왔지만, 가까스로 분노를 참고 '도대체 왜 없는 사실을 만들어서, 모두가 보는 곳에 써놨냐!'라고 따졌다. 그러자, 그녀는 사과는커녕 비웃음으로 자기만 믿는 거짓을 진짜처럼 일일이 대며 가르치듯이 말하는게 아닌가. 그야말로, 앞뒤 정황과 기록이 없었다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될뻔했다. 그녀의 그 얼굴은 정말 뻔뻔하고 당당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사실을 말한다고'여기는 것 같았다. 그 점이 나는 제일 이상했다.
그녀는 지금 알게 된 걸로는 온갖 성격이상의 증후를 다 갖고 있고, '외현적 나르시시스트'에 가까워 보인다. 나는 여차저차 저런 유형에게는 한두 번은 당해도 곧바로 대처를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유난히 약했던 것은 드러나지 않은 타입의 좀 안 돼 보이는(선해 보이는)유형이었다. 그런 이들을 내가 잘 구분하지 못한 건, 나의 가족들과도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 이상함을 인지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들은 대놓고 자랑하거나 교만해 보이거나, 사람들에게 호통을 치거나 하지 않는다. 수년을 붙어서 친하게 지내도, 종종 드러나는 '싸함'은 기분이 나빴다가, 다시 가려지기에 일회적인 느낌으로 보기 쉽다. 아니면 나 자신의 오해로 취급된다. 하지만 이런 이들도 '나르시시스트의 성격 특징'을 분명히 가지고 있으며, 은밀하게 착취하고 만만한 이 한, 두 명에게만 그 본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가족들에게 철저히 당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이라는 믿음'과 평생에 걸친 가스라이팅 때문이었다. 나는 바로 앞에서 비웃음과 깎아내림, 소외를 당하면서도 뒤에서는 '그래도 가족이니깐.., 속으로는 날 챙겨서 그런 거겠지...'라는 굉장히 강력한 신념이 있었다는 걸 뒤늦게 발견했다. 그러니 앞에서 기분이 나빴고, 속이 상하더라도 눈이 가려지듯이 제대로 인식이 안되고, 별거 아닌 것처럼 스스로를 '가스라이팅'시켰다. 그리고 나의 기분 나쁨도 '내가 잘못 생각해서 그래... 내가 지나치게 오버하는 걸 거야' 라며 내 탓을 하며 그들의 말대로 생각을 점검하고 내 감정을 억누르는 습관이 있었다. 결국 그들의 세뇌대로 나 자신을 세뇌시키는 것이었다. 이렇기에 가정에서 가스라이팅, 정신적 세뇌가 된 아이들이 학대자들을 만나도 그 이상함을 '인지'를 못하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알아야 대처를 하고 피할 수가 있는데, 모르니 번번이 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더욱 심해지면, 그 가해자를 두둔하고 그를 위해 변명, 변호를 하는 자신을 볼 수가 있다. 이때는 이미 정신 지배받는 수준이고 '신념체계'가 그렇게 돌아가기에 주변에서 아무리 '아니라'라고 말해도, 그걸 믿질 못한다. 나의 모친도 그러했는데, 아빠가 그녀를 명백히 조종하고 착취를 하고 있는데 그 점을 지적하면, '내가 그렇게 생각해서 한 거야. 아빠가 시킨 게 아니야...'라며 주술에 당한 인형처럼, 흐리멍덩한 눈으로 주장하고 그를 옹호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면, 그가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지게 하고 자신을 발을 뺀 건데도..., 심할 때는 본인이 주 5일 일을 다하면서도, 말하기는 아빠가 일해서 벌었고, 자신이 돈을 얼마씩 타서 쓴다고 얘길 해서 나를 기겁하게 만든 적도 있었다. 일 하는 사람은 따로, 돈을 버는 이가 따로 있었고, 아빠는 생색내듯이 그녀가 번 돈으로 한 번씩 용돈처럼 주는 것이었다. 그 습관은 내가 10대일 때나 40이 될 때나 똑같았다. 그가 생활비를 전혀 주지 않아서, 한 번씩 가사에 필요한 식비에 자신이 애써 번돈임에도(애걸복걸해서)용돈을 겨우 타서 쓰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멀리서 다른 이가 보면, 마치 부리는 '주인과 노예' 같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와서 그게 그녀에겐 너무나 당연해 보였고, 의심의 여지조차 '반기'로 들렸던 것 같다. 아마 이것도, 그녀가 누군가가 꼭 의존할 대상이 필요하고, 종교를목숨처럼 여겼기에 '사고판단'이 흐려져서, 착취에 약한 사람이 되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는 겉으로신앙처럼 남편을 섬겼고, 그게 맞는 삶이라고 여겼던 것이었다. 거의 두 눈을 온통 가린 채, 믿고 싶은 대로 보는 세상이었다. '그런 사람은 없어, 그런 건 사랑이 아니야'라고 암만 말해줘도, 마치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의 마츠코처럼 그녀들은 두 눈을 감고 자신이 믿고 싶은 그 '구원과 사랑'의 환상 속으로 들어갔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삶에게 의미를 주기에..., 자식인 나는 그 모습에 끔찍함과 애통함과 분노, 더 나아가서는 혐오스러움을 느끼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