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동네친구네 함께 놀러 가면, 얼마 뒤 여동생과 그 친구만 방문을 잠그고 둘이서만 놀더라고..,
물론 나도 그 집에 있을 때였다.
내가 우리 가족의 이상함을 처음으로 인지한 것은 9살 때였다. 새 학교에 전학을 온 나는 나처럼 얼마뒤 전학 온 여자아이와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 아이는 늘 화사한 미소를 짓고 다정해서 난 그 친구가 너무 좋았다. 생각해 보니 내 주변에는 같이 자란 사촌형제와 친하게 지내던 동네친구들도 거의 남자애들이었는데, 여동생이 물론 있었지만 그 애는 가까우면서도 멀었다. 집에선 여동생이 엄마를 늘 독차지했고, 난 늘 무관심과 혼자된 쓸쓸함을 느꼈다. 그래서 나와 같은 동성의 여자친구가 생긴 게 난 너무 행복했다. 그 애의 집 식구는 어머니와 오빠 한 명이었는데, 어머니는 미용실을 하셨다. 작은 미용실 안쪽에는 쪽방이 있었고, 우리는 방과 후 항상 그 미용실에서 놀았다. 내가 미용실을 집에 가방만 내려놓고 매일 출근하다시피 간 까닭은, 내 친구의 어머니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는 내 친구와 쏙 닮은 환한 미소로 "oo야 왔니~어서 와라"하면서 요구르트를 주며 반겨주셨다. 우리는 소꿉놀이를 하듯 어머니의 미용실의 미용도구들을 들고 서로의 머리에 대보면서 미용실 놀이를 했고, 그러다 보면 그녀의 오빠도 항상 껴서 셋이 오누이처럼 아웅다웅하며 같이 밥을 먹고 게임을 했다. 그때 난 어려서 정확히 인지는 못했으나, 그 미용실 친구네 가족이 '진짜 가족'이란 느낌을 받았다. 우리 집은 몬가가 이상했고 가짜 같았다.
여긴 웃음도 있고 대화도 오가고, 엄마의 웃음이나 다정함도 있었다. 그전에는 가족은 다 우리 집 같은 줄만 알았다. 그래서 그녀의 어머니가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말하지 못한, 비밀스러운 그런 소망을 꿈꾸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불안이 생겼다. 내가 그 집에 자주 가는 걸 알고, 여동생이 따라가겠다고 날 쫓아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난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마음이 심히 불안해졌다.
내 동생은 언제나 내가 사귀는 친구가 생기면 거길 끼려고 했다. 그리고 그 친구랑 철썩 붙어서 친해지더니 나보다 내 동생이 그들과 절친한 친구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이상하게 배재가 되는 식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항상 좋은 것들, 자기가 갖고 싶은 물건들을 다 독차지해야만 했다.그게 하나라도 자기께 되지 않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그럴 경우엔 거의 발작 같은몸부림을 치며 땅바닥에서 미친 듯이 울어대다 목이 쉬고 온몸을 부들부들해서, 곧 실신을 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 나도 엄마도 얼굴이 새하얘져서 동생이 원하는 게 무엇이든 줘버리고 포기했다. 나는 그런 상황이 너무나 익숙해서,내 거란 걸 욕심내 본 적이 없었다. 동생에게 그냥 양보하면 모두가 평안해졌다. 그러니, 나는 이 친구 또한 뺏길 것 같은 불안감이 마구 몰려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정확한 이유를 어린 나는 깨닫지 못하고 그냥 기분이 이상하단 정도로만 인식했다. 그렇게 어디든 함께 붙어서 다니는 우릴 보고 사람들은 우애 좋은 '쌍둥이'로 여겼다. 나는 그 쌍둥이가 때론 얄미웠지만, 그래도 연약한 척하며 나에게 찰싹 붙을 땐, 나도 모르게 사르르 마음이 녹아서 그앨 미워할 수 없었다.
가족의 문제 발견은 동생과의 관계에서부터 시작이었다. 동생과 나는 커가면서, 대화라는 게 정상적으로 되지가 않았다. 무엇이든 1분만 얘기하면, 이상한 기싸움이 돼버리는 식이었고 내 의도는 항상 오해나 곡해가 되었고, 그 끝은 그녀의 억울함이나 비난 지난 일에 대한 잘못을 끄집어 내 입을 막는 식이 되었다. 결국은 고성이 나오고,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며 사과를 받았다. 그녀는 나를 바보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드는데 선수였다. 모든 시작은 아주 사소한 계기였고, 별것도 아닌 일로 시작이 되었다. 난 성인이 된 후로 막연히 원인을 모른 채, '우리는 대화가 참 힘들고 어렵다'라고만 여겼다. 그녀가 지나치게 예의나 타인에 대한 배려, 공중 도덕성이 강해서 나를 고치려고 하나보다...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점점 몬 얘기를 해도 그녀는 공격으로 받아들이거나 도와주려고 한 말 한마디에도 '네가 뭘 아냐'라는 식의 대꾸를 수시로 하곤 했고, 그건 더 나아가 나와 관련된 지인이나 친구 모두에게 해당되었다. 가까운 친구 몇에게만 이런 고민을 어쩌다 얘기하면, 동생이 나를 많이 무시하는 것 같다, 오해가 심한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렇게 억지로 잊어보려 하면서 그녀와의 관계를 '좋게 좋게' 생각하려 애썼다. 어쩌다 보면 그녀의 장점이나 날 도와준 상황들이 있어서, 딱 잘라서 잘잘못을 따지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또 오래간만에 만나면 반갑고 애틋한 마음이 들어서 잘해보려고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결혼과 내 독립 이후, 10년여를 애써보고 싸우고 또 포기하고, 또 노력하고 잊어보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정신이 번쩍 든 계기는, 일 년 전 또 그런 사소한 걸로 말싸움을 하고 헤어졌는데 그 뒤, 만나자마자 "언니 저번에 그일 다들 언니가 잘못했다고 하지? 내 친구들은 다 이상하데.. 언니가.., " 라며 내 의사를 재확인하는 것이었다. 근 일 년간 우리 가족이 뭔가가 잘못됐다는 걸 인지하고, 아빠에 대해서 성격적 문제가 있다고 결론 내렸기에 나름의 학습을 해왔던 터였다. 그래도 동생은 아빠와 닮긴 했어도 그 정도로 심각하게 여기진 않았다. 그건 너무 심한 생각이고 전문가도 아닌 나의 오판일 수 있다고 판단을 보류해 왔다. 그 뒤로 이어지는 그녀의 확인 사살과 나에게 잘못을 인정하라는 태도에 기가 막혔다. 그녀의 그런 말들은 늘 자기의 주장이 모든 사람의 보편적 의견이며, 자기 지인들의 공통된 주장이라고 말했다. 거의 나를 자기 뜻에 '복종'하길원하는 것 같았다. 그게 아무리 사소한 의견 차이고, 생각일지라도 그녀는 자기가 늘 정당하다는 듯 내가 문제이며 '이상한 사고'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내가 어린 시절처럼 따지기 귀찮아서 그런가 보다 져주려 들면, 그런 주장은 더욱 힘을 받아 재차 내가 항복했는지를 따지고 드는 것이었다.
그들은 망상의 세계 속에 산다 자기 것을 빼앗길까 늘 두려워하고, 독점하려 공격하는 식이다.
그러더니 더 나아가, 자신의 남편도 날 이상하게 여긴다고 말했다고 전했으며, 내 잘못임을 인정하라는 식이었다. 나는 그녀의 친구나 지인, 남편에게 사실을 확인이라도 해야 하나 싶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이런 식으로 물고 늘어져봐야 얻는 게 없었다. 그래서 어릴 때처럼 포기하고 '네 친구들은 그런가 보지..'하고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그녀는 만족스럽지 않은지 좀 더 강한 확인사살로 날 굴복시키려고 했다. 이제 더 이상은 나도 참을 수가 없어졌다. 그녀는 우리 곁에 자신의 아들이 있는 것까지 이용하고 있었다. 조카를 싸움에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피하는 내 마음을 이용하는 거였다. 늘 이런 같은 패턴이었다.
그녀의 그런 이해할 수 없는 대화방식은 한두 해만 그런 게 아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엄마와 나, 동생이 셋이서 대화를 하다가 조금이라도 내가 대화 화제를 잡으면, 곧바로 날 공격하는 말을 던지고, 비웃으며 자기가 대화를 차지했다. 그게 어떤 주제건 누구에 관한 얘기건 상관없었다. 심지어 내가 엄마가 한 얘기에 반응으로 대꾸를 해도 그랬고, 나온 대화의 주인공을 조금이라도 칭찬을 해도 공격을 했다. 그 당시에는 왜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난 내 자랑도 아닌, 친척이나 누군가의 장점이라고 칭찬 한마디를 던진 것뿐인데..., 바로 무안을 주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그 즉시 얼음이 되고, 대화는 온전히 그녀의 것이 되었다. 모든 이의 관심도, 대화의 화제도 다 그녀의 것이 되어야만 하는 것처럼. 마치 내가 그녀의 것을 빼앗은 것처럼.
그렇게 이 '이상가족'은 각개격파 하듯이, 한 명 한 명의 심각함을 발견하고 그 증거를 찾고, 내 생각을 확인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 미신의 세계, '망상의 세계'속에 살고 있는 이들의 신념은 너무나 강해서 자신의 망상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타인을, 주변의 가족을 공격하고 굴복시키려 든다. 그게 아주 사소한 식당 음식주문이나 좋아하는 취미를 정하는 것이라도 그렇다. 그리고 자신이 정상임을 너무나 확신한 나머지, 상대방을 '비정상'으로 만드는 데서 그 심각함을 난 인정 했다. 그래서 나르시시스트가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가족은 절대로 정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숙주를 전염시키듯 그 가족은 그 한 명에 의해 전염이 된다. 정상의 사고방식을 가진 가족 중 일부는 그들이 떠넘기는 온갖 수치심과 비난과 죄책감으로 오염이 되고, '내가 잘못 생각하는 건가..'라는 의문을 품다가 결국엔 다수에 굴복된다. 그러면 문제의 숙주 당사자는 정상으로 살 수가 있는 것이다. 나머지들은 병들더라도..,이게 절대 과장이 아님을, 조금이라도 나르시시스트 집단이나 지인으로 엮여본 사람을 알 것이다. 그래서 '정신과'에 이런 말도 있는 것이다.
'병자'인 사람은 정신과에 안 오고,
그들에게 당한 이만 이만 정신과에 방문한다고..
이런 식의 가스라이팅, 세뇌에 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녀의 가족들과 차를 타고 오면서였다. 그녀와 조카, 그녀의 남편은 오래 걸리는 장시간 운전에서 무슨 놀이 같은 걸 시작했다. 처음엔 끝말잇기나 속담 맞추기였다가, 나중엔 알 수 없는 게임을 하는데, 두 명이 한 명을 '쪽'주고 없는 이처럼 무시하며 바보로 만드는(소외시키는) 그런 게임이었다. 그 게임이 지속되자, 그녀의 어린 아들은 엄마에게 부탁을 하듯이 물었다.
"엄마, 아빠가 좀 불쌍한 거 같은데..,끼워주면 안 돼?"
애원하듯이 그는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치~이, 재밌었는데. 당신 아들 덕분에 내가 봐준다ㅎ"라며 유쾌하게 게임의 벌을 풀어줬다. 그걸 지켜보던 나는 내내 그 게임이 불편하고, 왜 이런 걸 재밌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저 한 명을 고립시키고 망신주는 의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셋은 워낙에 익숙하게 하던 놀이여서 그런지,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 걸로 보였다. 나는 차에서 내리며 찝찝함을 느꼈고, 속으로 '이런 걸 학교에서 누군가 주도하면 한 명이 왕따가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가족은 워낙에 끈끈했고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기에 내가 괜한 문제를 일으키기 싫어서, 아무 말 없이 내렸고 그 찝찝한 기분을 털어냈다. 나의 세계에는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들의세계'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