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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정과 열정사이 Nov 13. 2024

쌍둥이 판타지를 가진이들

 간접적으로 조종하고 그대로 따라한다

엄마는 자주 자신의 감정이나 느끼는 감각을 내 것으로 바꿔서 말했다. "네가 외로울까 봐, 너 무서워하잖아, 네가 힘들어 하니까.. "라고 말하며 전화를 하곤 했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땐 그녀의 감정이 내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우린 한 몸 같고, 하나의 감정을 느끼고, 그녀의 것은 내것인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세계'였다


이런 일은 너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예를 들면, 창문이 열린 방안에 같이 있을 때 "너가 추울텐데.."

그러면, 나는 '내가 추운가...'라고 생각해 보고, 그런 것도 같아서 창문을 닫았다. 또는 그녀와 전화 통화 할 때마다 '네가oo 할까 봐, 네가 필요하니깐...' 그 뒤에 자신의 요구나 필요등을 말하곤 하는 것이었다. 마치 내가 먼저 요구했었던 것처럼. 그럼 난 약간 '멍'해지곤 했고, 현실감각을 살짝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러나 수십 년이나 이어져온 일이라, 그리 이상하게 느끼진 않았고 이게 엄마의 은밀한 의사소통 방식으로 여겼고, 그저 말로 꺼내기 어렵거나 직접적인 요구를 못해서 그런 거려니 넘겼던 것 같다. 이런 소통방식이 좀 이상하다고 의심을 품은 건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았다. 엄마나 여동생과 같이 있을 땐, 자주 이런 일이 일어났고 난 당연한 듯 주문을 받은 인형처럼 일어나서 창문을 닫거나 음식메뉴를 주문하거나 겉옷을 입는 자동반응이 일어났다.

"간접적인 조종으로, 침묵과 미묘한 불편함으로 신호를 준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직접적으로 몬가를 요구하거나 표현한 적이 없었다. 그저 내가 알아서 이해하고 예상하고 그들의 말하지 않은 속마음을 캐치해서 알아서 편안하게 해주는 식이었고, 무슨 마법 같은 텔레파시라도 익힌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내가 이런 것에  능숙해진 이유는 우리 가족의 평생에 걸쳐온 의사소통 방식이었고, 그저 생존하기 위해 하나하나 익히고 맞추고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리라. 이 모습을 제삼자가 처음부터 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면, 그들은 직접적으로 말로 표현한 적이 없는데 상대방(나)이 알아서 텔레파시를 받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좀 더 깊게 본 이들은, 무언의 조종을 당한 인형 같다고 느끼고 기이하게 볼 것이다. 우리 가족의 모습은 타인들에겐 이해할 수 없는 소통방식이나 이것은 우리에겐 너무 당연하고 익숙한 방식이었다. 이것을 최고로 잘 쓰는 이는 아빠였다. 아빠의 은밀하고 간접적인 요구방식은 늘 엄마나 나 동생에게 향했고, 우린 겉으론 그저 그가 민망할까 봐, 그의 체면을 살려주는 식으로만 받아들였다. 그들은 이런 요구를 하고 늘 몇 초간 침묵을 지키거나, 미묘한 불편한 공기를 느끼게 만들었다. 늘 말꼬리를 점점 흘리는 투로 하수인인 엄마에게 말을 흘리는 식이었다. 그러면, 엄마는 그 침묵의 명령을 알아듣고 고대로 나에게 전달하는 식이었다. 이런 미묘한 조종은 가족들에게 고대로 학습이 되고, 우리 가족은 누구나 이런 화법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기 이르렀다. 그리고 그 요구를 알아들은 상대에게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해 준다니 참 다행이다(너 참 똑똑하다)'는 칭찬으로 절정이 되었다. 이러니 내가 사회생활에서 서비스업이나 교육, 상담 쪽에서 거의 자유자재로 내 특기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난 상대의 미묘한 간격, 요구, 숨겨진 속뜻을 알아내는 데 거의 천재적이었다. 다른 이들은 그런 불편한 침묵이나 요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허다했고, 나는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듣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프지만, 이러니 심리 조종자들의 우선 타깃이 되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불편함이나 요구를 너무 잘 알아서 케어해 주고 편안하게 해 주니 말이다.


나는 30대 초반까지도 이런 사람들에게 시달리곤 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날 발견하면 특유의 눈알이 반짝이고 서로 앞다퉈 달려들듯이 당겨져 오는 것이었다. 나는 남에게 일어나는 일은 전문가이상으로 빠르게 파악하면서,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백명정도 한 팀이었던 회사에선, 수년 후 깨닫고 보니 내 주변 친한 세 명이 '심리 조종자'인 적도 있었다. 그들은 선량한 내 말을 잘 들어주는 모습으로 또는 안쓰러운 피해자로 접근한다. 그러니 대부분 티가 나는 '외현적 나르시시스트'에 비교해 백배는 구분이 어렵다. 누군가를 구해줘야 할 '구원자'의 환상을 가진 이들에게 자석처럼 끌어올 것이다. 그들은 정말 안쓰럽고 피해자의 얼굴을 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나는 이전 회사에서, 아버지를 잃은 지 얼마 안 된 동료와 급속도로 친해진 적이 있었다. 나는 첨에 그녀가 묵묵히 내 얘기를 잘 들어주고, 다양한 경험이 많아 솔직한 성향의 사람으로 착각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묵직한 자신의 가정사 같은 비밀을 드러냈고, 치부 같은 비밀이나 안쓰러움을 자아낼 사연도 척척 말을 해줬다. 그 점이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일종의 힌트가 되는 점이었다. 너무 쉽게 자신의 치부나 불행을 드러낸 다는 점이. 그건, 일종의 처음의 이미지 세팅에 가까웠다. 거기에 넘어간 나는 그녀의 안쓰러운 부친상 소식을 듣고, 인간적으로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몇 달간 급속도로 친해졌고, 거리낌 없이 내 공간이나 현재 관계나 고민등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막 대놓고 자랑이나 교만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나는 그 이미지에 단단히 속아 넘어간 것이었다. 몇 달 뒤 우리는 여행을 같이 계획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실상은 같이 계획했다고 여겼는데,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녀를 편하게 해주고 싶고, 위로해 주고 싶었던 맘에 숙소나 경비나 일정이나 연락 담당은 오로지 내가 처리했다. 거기까진 나도 내가 추진한 여행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가서 일정 내내 내가 그녀의 가이드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숙소 연락, 교통편, 여행지나 일정 선택과 식당정보를 알아보는 것도 내 몫이 되었다. 그래도 고마워라도 하면, 좋게 넘어갈 텐데 그녀는 언젠가부터 잦은 짜증과 당연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즐거워야 할 여행의 순간이 부담과 사소한 비난과 지적질을 당하고 있었다. 물론 매 순간이 그랬으면 바로 싸우거나 알아챘을 것이다. 어떤 순간엔 좋은 장면들도 있었기에, 단순한 의사소통 문제나 불만정도로 느꼈다. 하지만, 난 여행 내내 그녀의 가이드이자 컴플레인 담당을 하는 직원이 돼있었다. 본인은 아무것도 손까닥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내가 몬가 이상함을 느낀 건 '미묘한 깎아내림과 경계 침범'의 장면들에서였다. 그녀는 내 소지품에 관심이 많았는데, 내가 뿌리는 향수를 몇 번 빌려주며 '편하게 써'라고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방에 방향제처럼 뿌리기 시작했고, 그녀의 옷과 침대맡, 신발에도 마구 쓰기 시작했다.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내가 이미 했던 말이 있어서 모라 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그러더니 어떤 날은, '패키지로 여길 왔으면... 이런 일은 없을 텐데... 좀 더 알아보지 그랬어'라고 날 책망하기도 했다. 내가 여행 전에, 차량 예약 어플을 좀 깔라고 말했음에도 그녀는 일도 관심도 두지 않아서 일어난 일인데도 말이다. 내가 바쁘게 '우버'를 잡고,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하며 돈 흥정을 하고 있는데, 그녀는 팔짱을 끼고 마치 집사를 대하듯이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비아냥거림은 여행이 가면 갈수록 흔하게 나왔고, 나는 잦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이게 왜 다 내일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손까딱 하는 일이 그저 휴양지에서 마사지받을 때, 직원에게 지시를 할 때뿐이었다.

그들은 호의를 베풀면, 호구취급을 한다.
자신이 당연히 누릴 권리로 여긴다.

그래도 큰돈을 들여 같이 온 해외 휴양지인 만큼 나는 여행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번번이 모라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쉽게 이해해주려고 했다. '그녀가 부친상의 슬픔을 느끼고 있으니.., 이해해 주자'라는 변명을 스스로에게 한 탓이었다. 나중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녀는 일도 슬퍼 보이지 않았고, 자신이 받는 모든 호의를 당연한 권리로 누리고 있었다. 그런 기대를 채워주느라, 나는 휴양지에서 내내 휴대폰을 들고 검색하거나 전화하며 예약하고 장소를 찾느라 바쁘기 그지없는데도, 그녀는 여유만만한 모습이었다. 이런'호구'가 없었다. 그녀와의 마지막 기억은 여행을 돌아와서였다. 친한 셋이 한 술자리에서 계산을 할 때였다. 그녀가 결제를 한 번에 했고, 나머지 둘은 현금으로 나눠서 주었는데 액수가 딱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몇백 원을 덜 주게 되었는데, 그걸 가지고 그녀는 자신이 손해를 본 것처럼 '아이고..., 이런 돈계산은 정확히 해줘야지 모야, 호홋"하면서 나에게 눈치를 주는 것이었다. 나와 다른 일행은 순간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찝찝한 기분으로 헤어지고 나는 연속되는 이상한 기분에, 그녀와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얼마뒤 나는 이직을 했는데, 들리는 지인들의 얘기에 다시 한번 기함을 토했다. 그녀가 후에 그 여행을 얘기하며, '나 때문에 본인이 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아냐며' 불만을 토로하며 내 험담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이미 연락을 끊었지만, 뒤늦게 억울함을 느꼈다. 이성을 되찾고 그녀와의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상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들은 복사한 듯 상대를 따라 한다, 마치 쌍둥이처럼

내가 왜 진작에 눈치채지 못했는지가 어이가 없었다. 그중에도 기억에 남는 것은, 자신의 치부를 너무 쉽게 처음에 밝히는 것과 미묘하게 날 따라 하는 점이었다. 그녀는 내 향수, 신발, 가방이나 어느 날은 내가 입은 옷을 고대로 복사한 옷을(본인이 평상시 스타일이 아님에도) 입고 오는 것이었다. 차라리 내 앞에서 이 옷이 예쁘다, 어디서 산 건지 물었으면 '맘에 들었나 보다'라고 여길 텐데, 일언반구 말도 없이 일주일 뒤에 같은 옷과 신발을 신고 온 것이었다. 내 취향조차 복사한 듯 따라 했다. 그리고, 미묘하지만 세 명이서 친한 그룹에서 내 앞에선 없는 a를 미묘하게 깎아내리면서 나를 비교적 띄어주는 식의 칭찬을 했다. (물론 그 a앞에선, 나를 깎아내렸을 것이다) 그녀와 친한 모든 그룹이 그랬다. 항상 셋이었고 둘이 있을 땐 자리에 없는 사람의 뒷얘기가 나왔다. 물론, 대놓고 욕을 아니었고, 있었던 일을 자연스레 말하면서 '본인이 도와주느라 불편했다. 약간, 이런 점이 이해가 안 가서 자신이 충고를 해줬다거나' 하는 살짝 깎아내리는 식의 얘기였다. 있을 수 있는 얘기고, '대놓고'욕이 아니기에 의심이 안 되는 대화 패턴이었다. 그런데 본인은 이후로 가치가 올라가고, a는 살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포인트가 중요한 점이었다. 게다가, 대화에 나온 당사자가 뒤에 들어도,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언제든 발뺌있고, 들은 이가 잘못 해석한 거라고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이런 대화패턴은 우리 가족에게서도 항상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우리 셋은 무언가를 대화를 했는데, 나는 항상 거의 듣는 포지션이었고, 그들의 대화는 항상 주변 지인들이었다. 표면적으로 그냥 안부, 걱정, 사소한 일화였지만 나는 항상 관심이 없는 일이었고, 그런 대화는 수시간 이어졌다. 한 번씩 무슨 얘기를 그리 오래 했나 하지만, 나는 정작 말한 게 없고 그 둘만 대화가 계속 이어지는 식이었으며, 화제는 항상 그들의 주변인이었고, 지인의 가족, 지인의 친구 등이었다. 그래서 나의 모친은 그들의 지인, 가족에 대한 것 세세히 다 알고 있었지만, 나에 대해선 아는 게 전무했다. 근데 그런 대화는 계속되었고, 나는 늘 듣고만 있었다. 이상하게도, 내가 아는 주제나 지인은 없었고, 내가 말을 시작하는 법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대화는 늘 소외감을 느끼게 했다. 내가 말할 새를 주지 않는다는 게 좀 더 '진실'에 가까웠다. 나는 왜 말할 새가 없었을까. 따져보니, 그들 사이에 끼려면, 늘 듣는'청자'라는 역할만 주어졌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늘 듣고, 감탄사만 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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