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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은정 Feb 09. 2018

일요일을 위한 여행

교토 데마치야나기역


휴가 중에 맞는 일요일에는 모호한 구석이 있다. 평일과 휴일의 구분이 없으니 주말의 정체성이 희미해지고 만다. 화요일과 일요일은 엄연히 다른 온도를 띤다고 여기는 나로서는 그것이 영 못마땅했다. 매일이 주말과 다름없는 여행 중일지언정 ‘진짜 일요일’에는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는 대신 침대에서 한 시간쯤 더 뒹굴거리거나, 촘촘히 짠 계획을 뒤로 미룬 채 하루 한 가지 일만 해내고 싶다. 그런 핑계로 오늘은 다다스모리糺の森를 느긋이 산책하기로 했다. 시간표를 텅 비워 둔 채 여백 많은 하루를 보낼 생각이다. 






시모가모 신사의 붉은 도리이를 지나 푸른 기운을 뿜는 숲 다다스노모리로 발을 디뎠다. 2천 년 전 울창한 원시림이었던 땅은 신을 모시고, 여가를 즐기는 평온한 안식처가 되어 있었다. 평균 수령이 600년 남짓된 나무들의 존재감은 실로 엄청났다. 무성한 잎에 가려 하늘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이파리 사이로 간신히 스며 나온 햇살은 땅 위에 가느다란 그림자 길을 만들어냈다. 다다스노모리를 걷는다는 건 수백 년 전의 공기를 동시에 호흡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저 혼자 감격한 나는 평소보다 깊게 숨을 들고 마셨다. 


매년 8월 숲은 거대한 책방이 된다. 일본 최대 규모의 중고책 축제 ‘시모가모 노료 후루혼 마츠리下鴨納涼古本まつり’가 이곳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간사이 지방 일대에서 모여드는 책만 80만 부에 이른다고 하니 그야말로 서가의 대이동이다. 한때 여행책방을 운영했을 만큼 책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교토의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책을 고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광경을 상상하자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미간이 절로 찌푸려진다. 수풀로 우거진 다다스노모리 안의 기온이 바깥보다 2~3도쯤 낮다는 과학적 사실이 그나마 위로가 됐다. 


숲을 빠져나온 뒤 당연하다는 듯 가모가와 델타를 향해 발이 움직였다. 가모강賀茂川과 다카노강高野川의 두 물줄기가 합류하는 지점인 이곳은 섬처럼 생긴 삼각주가 강 한가운데 놓여 있는 독특한 장소다. 가모가와 델타는 얼핏 자연이 만들어 낸 천연 놀이동산 같았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하나 같이 추억 놀이에 빠진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거북 모양의 징검다리를 폴짝폴짝 건너거나 물수제비 뜨기 시합을 겨룬다. 


삼각주가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앉은 나는 나카가와 고무키텐에서 사온 팽 오쇼콜라를 꺼내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무릎 위로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손가락 끝으로 꾹꾹 누르며 "아, 좋다" 하고 중얼거리게 되는, 그런 일요일 오후가 흘러가고 있다. 








<교토 산책자를 위한 공간>



팩토리 카페 코센

학교를 연상시키는 복도를 지나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어젖히면 로스팅 기계의 부산한 소음과 원두 향이 가장먼저 손님을 맞는다. 어쩐지 신뢰가 드는 첫인상. 알고보니 팩토리 카페 코센의 운영과 로스팅을 맡고 있는 오오야 커피ooya coffee는 일본의 커피 애호가 사이에서 유명한 로스터리라고 한다. 메뉴판 상단의 세계지도에는 그날 취급하는 원두의 산지와 로스팅 정도가 친절히 기재되어 있으며, 따뜻한 커피를 주문할 경우 산뜻한 맛과진한 맛 중 고를 수 있다. 독특하게도 카페의 가장 안쪽에는 소규모 자전거 공방이 별다른 구획 없이 능청스럽게자리를 잡고있다.





야마쇼쿠온

교토의 비건 식당 플랜트 랩Plant LAB과 가마쿠라의 아웃도어숍 야마토미치山と道가 함께 운영하는 식당 겸 쇼룸. 산을 걷고, 음식을 음미하고, 음악을 즐기는 마음을 소중히 여기고 싶은 운영자의 바람이 공간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메뉴는 남인도 정식과 네팔 달밧 두 종류. 남인도 정식에 제공되는 두 종류의 카레는 향신료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부담 없이 도전할 수 있는 가벼운 맛이다. 요리에 쓰인 식재료는 모두 교토산 채소. 오가닉 커피, 소이라테, 마살라 차이 등 비건 음료와 디저트가 준비되어 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매장에 진열된 야마토미치의 아웃도어 제품과 유기농 식재료를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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