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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은정 Feb 16. 2018

바람과 나란히 달리기

교토 시치쿠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면 핸드드립 커피를 내린다. 맛을 즐기려는 목적보다 그저 행위를 즐기는 쪽에 가깝다. 전기포트의 물이 끓는 동안 드리퍼와 서버, 잔을 정돈하고 종이필터에 원두가루를 덜어 담는 단순한 과정을 하나씩 거치다 보면 실타래처럼 얽혀 있던 머릿속이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 든다. 나선형으로 떨어지는 물줄기에 원두가 봉긋 부풀고 가라앉길 반복하는 사이 마음도 덩달아 차분해진다. 긴 호흡으로 달리던 하루에 쉼표를 찍는 시간이다.






핸드드립 커피를 내릴 수 없는 여행 중에는 버스가 쉼표 역할을 대신했다. 아무런 해프닝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심상한 주택가를 거니는 게 지루해지거나,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어스름한 대낮에는 주저 없이 버스에 올라탔다. 그때마다 먼 여정을 떠나는 듯한 기대감과 버스 뒷자석의 안락함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이제부터는 창밖을 내다보기만 하면 될 뿐이다. 이토록 합법적인 멍 때림의 시간이라니. 창틈으로 스미는차가운 공기가 두 볼에 닿을때면 마치 바람과 나란히 달리는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착각이 일었다.


달리는 버스 안은 짧은 소동극이 벌어지는 이동식 무대와도 같았다. 버스가 설 때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정류장명을 방송해주던 운전기사의 사소한 실수에 그 자리의 모두가 꺄르르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처럼. 버스 안 승객들은 관객이자 주인공이 된다. 내려야 할 정류장을 묻는 외지인의 질문에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도로명을 곱씹던 할머니의 모습은 또 어찌나 다정하던지. 교토 사람들은 동서/남북 방향으로 뻗은 도로명과 순서를 암기하기 위한 노래를 배운다는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교토의 북서쪽 시치쿠 지역이었다.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든 풍경은 늠름한 산등성이. 동쪽 히가시야마가 마을을 완만히 품에 안은 느낌이라면 북쪽의 산맥은 곧은 자세로 도시를 응시하는 듯한 당당함이 배어 있다.


소바 전문점 오가와의 오픈을 기다리는 사이 근처에 있는 서커스 커피를 방문했다. 로스팅 중인 매장 안은공기중에 녹아든 원두의 달고 고소한 향으로 가득차 있었다.여러 차례 시향 끝에 마스터의 조언을 받아 선택한 것은 동티모르산 원두. 어서 집으로 돌아가 봉긋 부풀어오르는 원두의 나긋한 움직임을 응시하고 싶어졌다. 물론 커피를 내리는 동안 교토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곤욕을 치러야겠지만.




<교토 산책자를 위한 공간>



오가와

테이블이 단 네 개뿐인 단출한 소바 전문점. 알고 보면 미슐랭 원스타를 받은 유명 식당이다.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메뉴는 체에 밭쳐 나온 면발을 츠유에 찍어 먹는 '자루 소바'와 간 무를 더한 '오로시카라미다이콘 소바'다. 국물이 있는 온소바를 원한다면 '가케 소바'를 주문하면 된다. 오돌톨한 질감이 살아 있는 면발은 군마현에서 생산된 무농약 메밀을 맷돌로 제분해 치댄 것이라고. 여름마다 즐겨 먹던 매끈한 면발의 소바와 비교하면 그 향이 짙고 고소하다. 소바 맛만큼이나 인상적인건 손님을 응대하는 여주인의 꼿꼿한 자세와 단아한 표정. 식당에 대한 자부심과 겸손함이 동시에느껴진다.





키사키야

직접 수리하고 가꾼 고민가를 터전 삼아 자신이 좋아하는일을 해 나가는 부부의 공간. 매장의 오른편에는 남편의 핸드메이드 가죽공예품이, 왼쪽에는 아내가 만든 마크로비오틱 스위츠가 고루 진열되어 있다. 구움과자와 타르트, 그래놀라 등에는 유제품과 계란이 들어가지 않으며 무농약 식재료를 고집하고 있다. 건강한 맛의 디저트라니 형용모순 같지만 고소함이 강조된 쿠키는 따뜻한 커피와 함께 즐기기에부족함이 없다. 키사키야의 커피는 이웃 상점인 서커스 커피의 원두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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