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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은정 Feb 02. 2018

네게는 있고, 내게는 없는 것

교토 기요미즈데라


기요미즈데라(청수사) 같은 교토의 유명 관광지 주변을 걷다 보면 교복을 입은 학생 무리를 종종 보게 된다. 우리로 치면 수학여행쯤 되려나. 반 전체가 우르르 몰려다니기보다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그룹을 만들어 움직이는데 그 모습이 당차고 귀엽다. 관광지를 중심으로 운행하는 라쿠버스의 뒷좌석 역시 대개는 아이들 차지다. 가만 보면 이마에 맺힌 땀을 훑어 내며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거나 유리창에 머리를 콩 박고서 까무룩 잠들어 있다.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의 차림은 하나같이 수수했다. 내가 초등학생 때나 쓰던 검은색 똑딱핀과 무릎 아래를 덮은 펑퍼짐한 교복 치마(유행은 아니겠지?), 엉덩이 근처까지 축 처진 커다란 백팩, 틴트는커녕 립밤 하나 바르지 않은 듯한 말간 얼굴, 멋 없이 빡빡 민 머리까지. 한 10년쯤 앞선 과거에서 온 게 아닐까 싶은 착각마저 든다. 


한번은 횡단보도의 초록 신호를 기다리던 중 교복 무리에 둘러싸였다. 눈동자를 슬그머니 굴리며 아이들을 관찰하던 나는 느닷없이 슬프기도 또 애틋하기도 한 감정에 휩싸였다. 서른이 넘고 나서야 나는 조금씩 내 주변을 관리할 줄 알게 됐다. 사사로운 오해와 다툼을 일으킬 만한 행동을 조심할 줄 알았고, 무엇보다더 이상 우정에 연연하지 않게 됐다. 베스트프렌드나 소울메이트 대신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의 응원과 조언을 나누는 친구들 몇을 두는 편이 좋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인간관계를 화단의 장미처럼 가꾸려 든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곤 했다.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의 파도를 감당하기에 나는 너무 지친 것일까 혹은 두려운것일까. 열일곱 살의 내게는 있고 지금의 내게는 없는 그것을 되찾고 싶은 마음은 독일까, 약일까. 






기요미즈데라의 입구 앞에서 수학여행 단체 사진을 찍던 학생들이 떠나고 나 역시 고다이지를 향해 자리를 옮겼다.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목탑인 호칸지 오중탑法観寺五重塔과 니넨자카二年坂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슬로 제트 카페'를 가 볼 계획이었다. 전망 좋은 장소이니만큼 사람들로 북적이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공간은 의외로 한산했다. 하물며 한발짝 뒤로 물러나 바라본 니넨자카의 풍경은 그 안에 섞여 있을때보다 한결 편안하게 느껴졌다. 어깨를 부딪치지 않기 위해 애쓰느라 무심히 지나쳤던 행인 한 명 한명의 사연을 상상할 여유마저 생긴다. 


얼마간의 간격을 두고 서 있는 것. 때로는 그 적당한 거리감이 상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나는 그 길로 이시베코지石塀小路의 호젓한 돌담길을 따라 나홀로 산책에 나섰다. 




<교토 산책자를 위한 공간>



이치카와야코히

도예가인 할아버지의 거처이자 공방이었던 200년된 마치야를 카페로 개조했다. 실내로 들어서면 까마득히 높은 천장과 건물을 받치는 든든한 골격, 지붕 아래 듬직하게 서 있는 로스팅 기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제철 과일이 듬뿍 들어간 샌드위치 '키세츠노후르츠산도'로 유명한 곳이지만 이곳에서 놓치지 말고 즐겨야 할 메뉴는 다름 아닌 커피. 융드립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주인 이치카와 씨는 교토의 명물 카페 이노다 커피Inoda coffee에서 15년간 근무한 실력자다. 이곳에서는 오카와리 커피おかわりコーヒー, 즉 리필 커피를 주문할 수 있다. 호젓한 분위기의 공간에서 오래도록 머물다 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가와이 간지로 키네칸

공예 운동가이자 수집가 야나기 무네요시와 함께 민예 운동을 벌인 도예가 가와이 간지로의 기념관. 근대에 제작된 가구와 민예품에 관심이 많다면 기대 이상의 만족을 얻을 수 있다. 가와이 간지로의 작업장 겸 주거 공간이었던 마치야 내부는 검소하지만 품위가 넘친다. 일상 속 평범한 물건의 미적 가치를 발견하는 일에 앞장 선 그의 공간답게 질박한 그릇과 항아리, 의자, 소반이 집안 곳곳 눈에 띈다. 안쪽의 정원과 다실을 지나면 가와이 간지로가 실제로 사용한 대형 계단식 가마를 볼 수 있다. 더 이상 불을 때지 않는 죽은 가마이지만 그 크기와 아우라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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