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에이잔 전찻길
에이잔 전차를 타고 온천 여행을 떠났다. 데마치야나기역에서 종점 구라마역에 있는 산속 온천까지는 불과 30여 분. 한 량짜리 전차가 교토 북부의 주택가와 삼거리를 요리조리 통과하며 철로 위를 달렸다.이따금 객차 안은 짙은 녹색으로 물들었는데, 삼나무 숲에 에워 싸인 좁은 기찻길을 스쳐 지나는 찰나였다.
샤워를 마친 뒤 노천탕이 있는 밖으로 나서기 전 잠시 숨을 골랐다. 느닷없는 고백 하나를 하자면 이날은내 생애 첫 야외 목욕이었다. 두근거림과 함께 밖을 나서자마자 맨살 위로 쏟아지는 햇살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볕이 앉는 자리마다 살갗이 간질거린다. 노천탕은 생각보다 아담한 규모였다. 하나뿐인 탕에는 할머니와 손녀로 보이는 두 사람이 가장 좋은 전망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몸을 담근 채 고개를 들면 푸른 하늘과 삼나무 가장 꼭대기의 여린 잎들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서늘한 산바람이 젖은 피부에 닿을 때마다 온몸 구석구석 행복이 뻗쳤다.
시내로 돌아가기 위해 데마치야나기행 에이잔전차에 올라탔을 땐 이미 저녁 가까운 무렵이었다. 덜컹이는객차의 리듬에 맞춰 몸이 작게 들썩이자 졸음이 밀려왔다. 길게 하품을 늘어트리며 기관사 어깨 너머의 풍경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다음 역은 슈가쿠인역.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고 문득 이곳에서 내려야겠다는 충동이 일었다.어째서 지금껏 철로를 따라 걸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작은 호기심이 이끄는 방향으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댕댕- 먼 데서 들려오는 북소리처럼 전차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가 울릴 때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주민들에겐 생활의 일부인 한 량짜리 전차가 내겐 미지의 무엇. 과거로부터 전송된 편지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수시로 건널목에 멈춰서 전차를 구경하느라 이치조지역에 도착했을 때엔 해가 뉘엿뉘엿 저문 뒤였다. 이곳에 온 건 교토의 유명 서점 게이분샤 이치조지점을 가기 위해서였다. 5년 전 처음 게이분샤를 방문한 날은 꽤 귀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역 앞의 편의점 직원에게 서점 가는 길을 물었는데 의사소통이 뜻대로 되지 않자 그가 편의점을 버려둔 채 나를 근처까지 데려다준 것이다.
추억에 젖어 서점 주변을 서성거리는 사이 서너대의 자전거가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며 동시에 내 앞을 지나쳤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각. 불현듯 익숙한 살냄새가 배어 있는 나의 작은 방이 그리워졌다. 이대로 전차에 올라타 도착한 곳이 서울 어딘가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헛헛한 생각에 빠진 채 오랜만에 재회하는 서점을 향해 터덜터덜 걸었다.
교토 산책자를 위한 공간
치이사이헤야
사람들의 시선에서 한 발짝 떨어진 건물 2층. 창 너머로 전해지는 아늑한 기운에 속절없이 물들 것만 같은 잡화점이다. 나무로 만든 조리도구와 도자 그릇, 뜨개로 짠 인형과 브로치, 라탄 바구니, 리넨 천가방 등 진열된 제품의 대부분은 슴슴한 무채색을 띠고 있다. 좋아하는 물건을 하나씩 방에 모으듯 제작자의 온기가 담긴 물건을 들여 놓았다고 한다. 도드라지기보다 뭉근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쪽이 취향이라면 이 공간이 마음에 들지도 모르겠다. 주기적으로 열리는 공예 작가 전시 일정은 웹사이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아카츠키코히
‘PC 사용 금지’를 부탁하는 입간판의 문구 덕분에 지금의 순간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곳. 커피숍 직원으로 함께 근무하며 인연을 맺은 부부가 이제는 각자의 특기를 살려 자신들의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제과학교를 나온 부인은 케이크를, 오랫동안 카페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남편은 커피를 담당한다.교토의 유명 로스터리 위켄더스 커피와 노르웨이를 기반으로한 카페 푸글렌Fuglen의 원두를 사용하는 이곳에선 핸드드립커피와 에스프레소 메뉴를 함께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