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책방 일단멈춤 소멸기
시작에 관한 이야기는 늘 어렵다. 때로 어떤 결정은 논리적인 인과관계를 따르는 대신 팡 터지는 폭죽처럼 별안간 일어난다. 책방을 열기로 한 결심 역시 마찬가지였다.
언제 터질지 모를 폭죽에 불을 붙인 건 직장 동료 혜미 씨의 깜짝 발표였다. 가구 디자인을 전공한 그녀는 취재차 만난 또래 프리랜서 디자이너들로부터 적지 않은 자극을 받은 듯했다. 지체 없이 작업실을 구하더니 적성에 맞지 않는 에디터 짓은 관두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 계획이란다.
그녀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던 나로서는 그 선택이 놀랍고 대단해 보였다. 순간 머릿속에 섬광이 스쳤다. ‘어쩌면 나도’라는 설렘은 ‘어째서 나는’이라는 의심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언제까지 나는 대안 없는 선택을 반복하게 되는 것일까. 다른 잡지사로 이직하더라도 가혹한 근무 환경과 스트레스, 글에 대한 갈증은 계속될 게 뻔했다. 이직은 더 이상 차선이 될 수 없었다.
대학 생활의 전부였던 학보사 기자를 시작으로 방송국 막내 작가, 인터넷 서점 웹진 관리 아르바이트, 출판 편집자, 매거진 에디터에 이르기까지 나의 20대는 글 주변을 맴도는 시간이었다. 내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생계를 유지하며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는 가장 근사치의 직업을 찾아 헤매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있었지만 선뜻 회사를 그만둘 엄두가 나지 않았다. 최소한 10년 차 에디터 정도의 이력을 갖춰야 프리랜서 작가 명함을 달 수 있지 않을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기준을 스스로 세우며 결정을 유예했다. 낮은 담장 아래에서 바깥세상을 힐끗 훔쳐보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안전했고 동시에 적잖은 위안을 주었다.
하물며 회사를 나와 가게를 꾸린다는 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삶의 범위를 한참 넘어서는 일이었다. 그러다 문득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만큼 나의 지난 시간을 포용할 수 있는 장소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라면 책을 만들고, 글을 쓰는 작업 모두 실현 가능해 보였다.
회사라는 담장은 넘었지만 안개 낀 도로를 질주할 자신이 없는 나는, 책방이라는 안전망 속에서 미래를 도모해보기로 했다. 허무맹랑한 계획처럼 들린다 해도 어쩌겠는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것이 얼마나 그럴싸한 계획인지 타인을 설득할 필요는 없다.
한 달 뒤 혜미 씨와 나는 같은 날, 동시에 사직서를 냈다.
회사 대표와 우리 두 사람 사이를 감돌던 그날의 묘한 공기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퇴사 이후 이직이 아닌 독립을 선택한 나를 두고 주변에서는 한결같이 ‘용기’에 관해 이야기했다. 너의 용기 있는 결정을 응원한다는 격려의 메시지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물론 그 메시지 속에는 미처 말하지 못한 우려와 안타까움도 담겨 있었을 테다. 모든 걱정거리는 용기라는 멋진 포장지로 적당히 감춰졌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항변했다.
‘아니, 용기라니 그럴 리가요.’
내가 발휘한 용기란, 결국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폴짝 점프한 정도였다.
삶이 한 단계 더 나아가길 기대할 때, 아래에서 위로의 상승이 아니라 오른쪽 혹은 왼쪽의 어딘가여도 괜찮지 않을까. 여기엔 전진도 후퇴도 없다. 높고 먼 방향으로 점프하는 것만이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가주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