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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은정 Apr 03. 2018

중국집 배달원과 생텍쥐페리

여행책방 일단멈춤 소멸기


창 너머로 오토바이 소리가 가깝게 들려왔다. 매일 만나는 우체국 택배 아저씨인가 싶어 고개를 돌렸더니 웬 중국집 배달원이 책방 앞에 주차 중이다. 불법 주차 문제로 속앓이를 하던 터라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한마디 해야겠다 싶어 밖을 나서려는데 그가 먼저 책방으로 성큼 들어섰다. 내가 멈칫한 사이 배달원은 얼굴을 반쯤 가린 마스크를 벗으며 입을 열었다. 


“읽을 만한 책 좀 추천해주세요. 여기 서점 맞죠?”


 “아... 맞긴 한데...”

그제서야 상황 파악이 된 나는 이곳이 서점은 맞지만 여행서만 판매하는 곳이라 설명했다. 그는 별다른 대꾸 없이 제자리에 선 채 고개를 좌우로 옮기며 서가를 훑더니 어서 책을 추천해달라며 나를 재촉했다. 배달한 그릇을 찾으러 온 길에 잠시 들른 것이라 어서 돌아가야 한단다. 평소라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이어갔을 텐데 무슨 이유인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책은 어때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개나리색 표지의 책을 그가 집어 들었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였다.

 “『어린왕자』를 쓴 작가의 책이에요. 사막에 추락한 작가의 실화가 담긴 산문집인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책을 사겠다며 곧장 계산을 부탁했다. 바람처럼 등장해 바람처럼 사라진 그를 뒤로한 채 나는 혼자서 얼굴이 새빨개졌다. 뒤늦은 부끄러움이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뻗쳤다. 그가 책방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는 순간부터 안으로 들어와 말을 붙이기 전까지 나는, 중국집 배달원이 책을 살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계하는 마음이 더 컸다. 











2주 뒤 배달원을 책방에서 재회했다. 


염리동에 그릇을 회수하러 온 그는 지난번처럼 서둘러 책 추천을 요청했다. 이번에는 당황한 기색 없이 독립출판물부터 일반 단행본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을 펼쳐 보였다. 그는 흑백과 컬러로 각각 촬영된 『holi DAY』, 『holi NIGHT』 여행 사진집 시리즈에 관심을 보이며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두 권을 모두 구매했다. 또 와줘서 고맙다는 말은 미처 하지 못했다. 


이럴 땐 내가 좀 더 뻔뻔한 성격의 사람이라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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