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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은정 May 20. 2020

귀여운 우동

언젠가 한번쯤은 베스트셀러를 터트려 보고 싶다


화면 가득 김이 뿌옇게 차오르는 장면에서 채널을 돌리던 손가락이 멈췄다. 일본 가가와현의 명물 사누키 우동을 소개하는 여행 프로그램이었다.  


이내 장면은 미야가와 제면소로 옮겨갔다. 족타 반죽으로 뽑은 우동이 유명한 식당이다. 좁고 허름한 실내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편에선 트레이닝복을 입은 여성이 목에 타월을 건 채 반죽을 꾹꾹 밟고 있다. 직사각형의 작업대에 오른 모습이 꼭 링 위의 진지한 선수같다. 뒤이어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제면소 주인인 미야가와 할머니. 하얗게 센 곱슬머리의 한쪽 귀퉁이를 사과 꼭지처럼 찡긋 묶은 그에게 제작진이 묻는다. 


“발로 반죽을 밟으면 정성이 들어가나요?”


반죽은 물과 밀가루를 치대 글루텐을 생성하는 과정이다. 단백질 성분인 글루텐이 발달할수록 면발에 탄력이 붙는데, 중국에서는 이를 ‘면근’이라 부른다. 밀가루 근육이라는 뜻이다. 쫄깃한 식감의 우동은 잘 단련된 밀가루 근육을 가졌다.이곳 미야가와 제면소 역시 차진 면발을 뽑기 위해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발을 사용한다. 오직 우동을 먹기 위해 가가와현까지 애써 찾아온 손님의 기대에 힘껏 부응하겠다
는 듯이. 오늘의 날씨와 습도를 고려한 반죽의 미세한 변화, 밟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반영된 정성이 우동에 스며 있을 것이라는 기대 말이다. 


제작진의 싱거운 질문과 달리 돌아온 대답은 강렬했다. 

“귀여우니까요. 품을 들이는 만큼 우동이 귀여워지잖아요. 내 입장에서는 자식같은 것이니까요.” 


스스로도 그 말이 재밌었는지 미야가와 할머니는 웃음을 터트렸다. 카메라를 든 제작진도 나도 모두 웃음이 터졌다. 명랑하고 호쾌한 기운이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그리고 힘이 있었다. 그저 가볍게 웃고 넘길 말은 아니었다. 어느 한 분야의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갖는 의연함, 지고지순한 사랑이 밴 대답이었다. 나는 그 장면이 담긴 방영분을 유튜브에서 찾아 캡처한 뒤 노트북 바탕화면에 저장해 두었다. 그러고는 정성을 다한 결과가 일본 최고의 우동이 아닌, 기껏해야 귀여운 우동이길 바라는 마음에 대해 가끔 생각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과가 허무하게 느껴지던 때였다. 



하루 평균 예닐곱 시간쯤 작업을 한다. 물론 내내 글만 쓰는 것은 아니다. 매끼니와 간식을 챙겨 먹는 틈틈이 마켓컬리의 장바구니를 채우고, 고양이와 사냥 놀이를 하고, 화장실에서 SNS를 들여다 본다. 가족 행사나 모임을 위한 장소를 물색하거나 미팅차 서울을 오가는 시간도 여기 포함된다. 원고 작업은 그 사이사이 더디게 진행된다. 작업 속도가 느린 건 비단 시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종일 매달렸음에도 겨우 A4 반장 분량의 글만 간신히 건지는 날이 다반사다. 심지어 아무런 수확없이 하루를 정리 할 때도 있다. 이런 날에는 보람보다 딴짓만 했다는 자책감이 앞선다. 


실제로는 그럴 리 없는데, 가끔은 기분이 사실을 압도한다. 


며칠에 걸쳐 한 편의 글이 완성됐더라도 홀가분한 감정은 아직 저 멀리 있다. 내 앞에 놓인 결과물이 ‘토고’이기 때문이다. 《소설가의 일》에서 소설가 김연수가 ‘토할 것 같은 초고’를 줄여서 그렇게 썼다. 토고는 밀가루와 물, 소금을 대강 섞어놓은 1차 반죽과 사뭇 비슷하다. 아직 찰기가 돌기 전의 1차 반죽처럼 토고는 이야기가 단단하게 결속되어 있지 않다. 문장과 문장 사이가 성기고 흐름도 부자연스럽다. 어쩌 겨우봉합해 둔 결론을 풀어헤쳐야 할지도 모른다. 가장 절망스러운 건 원고를 완성한 순간에야 지금껏 공들여 쓴 글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는 점이다.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나는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을 경험한 다. 모른다는 고백이 더는 부끄럽지 않을 때, 동시에 모른다는 말이 갖는 무거운 책임 또한 의식할 때 어렴풋 성장한 자신을 발견한다. 만약 누군가 내 글에서 어떤 진솔함을 감지했다면 그건 쉽게 판단하거나 정답인 양 자신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여전히 나는 섣불리 결론짓고 후회하는 실수를 반복한다. 하지만 괜찮다. 실수를 알아차렸다면 지우고 다시 쓰면 되니까. 그렇게 생각을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다 보 면 마음의 근육이 단련된다. 끈기가 생긴다. 심지어 무엇도 쓰지 못한 날에도 이 모든 과정이 일어난다. 보람은 성취의 크기를 가리지 않는다. 


언젠가 한 번쯤은 베스트셀러를 터트려 보고 싶다. 새로운 책이 출간 될 때마다 나는 그런 욕망을 남몰래 품는다.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을 쓰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것만 같다거나, 열심히 달린 것 같은데 실은 제자리였다는 낙담이 밀려들 때도. 속물처럼 보일까 봐 혼자서 그런 상상을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뭐가 좋은지조차 잘 모르면서 망상에 빠진다. 그건 마치 바닥을 보이는 통장 잔고를 확인한 뒤 편의점에서 자동 로또를 구입하는 심정과 비슷하다.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내심 토요일을 애타게 기다린다. 나는 돈 잘버는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일까.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내가 바라는 현실적인 소망은 따로 있다. 책이 지속적으로 판매되는 것이다. ‘더 이상 찾는 독자가 없으니 절판하겠습니다’라는 출판사의 비보 대신 중쇄 소식을 듣고 싶다. 여전히 새로운 기획을 제안받는 작가로 살아남고 싶다. 분기마다 입금된 인세를 확인하며 아직 괜찮다는 무사함을 느끼고 싶다. 많이 벌지 않더라도 꾸준히 벌고 싶다. 성인 둘, 고양이 하나가 무탈할 수 있을 만큼, 우리를 책임질 수 있을 정도라면 족하다. 돈을 잘 번다는 건 내게 그런 의미다. 


그리고 잊히지 않고 싶다. 막상 쓰고 보니 이보다 비현실적인 소망이 또 있나 싶다. 하지만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은 써야 한다. 토고가 초고가 될 때까지, 완성된 글이 이름 모를 독자의 마음에 가닿을수 있도록. 어제와 다름없이 반죽을 치대는 미야가와 할머니처럼 일본 최고의 우동 대신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귀여운 우동을 대접하겠다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지우고 다시 쓰는 끈기만이 초고를 완성시킬 테니까. 올해의 베스트셀러가 글쓰기의 목표가 될 순 없을 테니까. 




도서 <저는 이 정도가 좋아요>의 본문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전문은 종이책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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