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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은정 May 21. 2020

'하기'와 '하지 않기' 사이에서

저는 이 정도가 좋아요


책방을 오픈한 뒤 보통의 직장인에서 사장님으로 진화하는 동안 나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은 자신에게 꾸준히 실망하곤 했다. 안다고 여겼지만 실은 몰랐거나 안다고 착각한 경우가 유독 많았다.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엉겁결에 안다고 했던 기억은 어디에 숨겨두었을까. 어떤 자각은 선명하게 아팠지만 덕분에 매일 뭐라도 하나씩 배워나갔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요령이 늘었다. 손님을 응대하는 표정과 자세가 한결 편안해졌고,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능청스레 답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선택의 문제에서만큼은 늘 초보자였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평소 혼자 일하는 기쁨을 한껏 누리면서도 그때만큼은 어쩔 수 없이 동료의 존 재가 절실해졌다. ‘근자감’이 아닌 동료의 객관적인 의견이 내 생각에 힘을 실어주었으면, 때로는 그 동료가 “문제없어” 라고 대차게 응원해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물리적 공간만 없을 뿐 1인 사업체와 다름없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시험대에 오르듯 하루가 멀다 하고 선택의 기로에 서지만 매번 자신이 없다.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다가올 1년 혹은 가까운 미래의 운명이 좌우된다 생각하면 더더욱 간이 쪼그라든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나는 ‘하기’ 쪽으로 마음을 기울이려 노력한다. 도무지 성미에 맞지 않는 제안이라도 커리어의 반경을 넓히는 데 일조한다면, 사사로운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다면 되도록 사양하지 않는다. 덕분에 생전 처음 유튜브 채널에도 출연하고, 한강 둔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북토크를 하는 다시 없을 추억이 생겼다. 


때로는 ‘하지 않기’를 고민하는 순간과도 맞닥트린다. 경우는 다양하다. 기획도 좋고 보람도 있겠으나 심적 부담이 클 때, 내가 지향하는 가치관과 어긋나는 클라이언트일 때, 수입 안정화에는 도움이 될 테지만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소진될 가능성이 높은 제안일 때 나는 갈등에 빠진다. 열정 페이 문제로 시시비비가 있던 단체의 강사 섭외에 응하지 않은 것, 공중파 프로그램에 출연해 세일즈할 수 있는 기회를 떠나보낸 것도 모두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단칼에 결정을 내렸던 것은 아니다. 답이 이미 정해져 있음에도 선뜻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세상의 눈치, 세상의 눈치를 보는 나의 눈치를 보느라. 혹여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내 고민의 합당성을 따져보느라 결정을 회피하고 유예하길 반복했다. 그런 와중에 어떻게 너 내키는 대로만 사느냐는 주위의 충고는 어찌나 힘이 세던지. 그럼에도 다행인 건 이토록 갈팡질팡하는 자신이 못내 답답 할때 힘이 되어 줄 믿는 구석이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일본 교토에서 만난 이상한 상점들이다. 



교토를 여행하는 동안 관광 명소 대신 생활의 씀씀이가 느껴지는 동네 골목을 걸어다녔다. 이미 여러 차례와본 도시이기도 했거니와 자신만의 운영 철학을 가진 곳들이 구석 구석 숨어 있어서다. 야외 주차장의 가장 안쪽 구석에 차린 카페라든가 고타츠가 놓인 다다미방에서 손님을 맞는 서점 같은. 머무는 동안 노트북 사용을 금지하는 카페가 있는가 하면, 일부러 그런 것처럼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간판을 단 가정식 식당도 있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나는 영화 <안경>에 등장하는 민박집 ‘하마다’를 떠올렸다. 이곳 주인 역시 거의 눈에 띄지 않게 간판을 달아두었기 때문이다. 


“큰 간판을 내걸면 손님이 잔뜩 올 테니 이 정도가 좋아요.” 


세상에는 각자의 ‘이 정도’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에게서 풍기던 태연한 말투와 태도를 떠올리면 왠지 안심이 된다. 아마도 내가 발견하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무엇, 하지만 간절히 찾길 바랐을지도 모를 그 무엇을 저들에게서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확신이 행동을 이끌어내는 게 아니라 행동이 확신을 불러오며, 끝내는 그 확신이 설득력을 가지리라는 믿음. 설령 그 설득이 실패할지언정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순 없다는 사실을 이상한 상점의 주인들에게서 보았던 게 아닐까. 우리가 무언가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그것이 포기나 체념이 아닌 또 다른 가능성을 향한 선택일 뿐이라는 것도. 


그러니 성장은 반드시 무언가를 더 해내야만 이루어지는 게 아닐 것이다. ‘하기’와 ‘하지 않기’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스스로 서 있을 때, 외부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질서를 세울 때, 그렇게 인생을 의도할 수 있을 때 내 안의 ‘근자감’도 함께 자라나리라 믿는다. 그러고는 의연히 말하는 것이다. 


저는 이 정도가 좋아요. 



도서 <저는 이 정도가 좋아요>의 본문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전문은 종이책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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