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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chic Oct 24. 2022

일. 왜 튀르키예 인지는 저도 몰라요.

직항이 있길래 티켓을 끊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궁금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한국, 대한민국이라고 부르는데, 왜 외국에서는 코리아인가?'


고려로부터 유래됐다고 어디서 주워듣긴 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자국민이 부르는 이름으로 불러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은 여전히 떨쳐낼 수 없었다. 대체 나라의 이름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 것이며, 이 속에는 어떤 헤게모니가 스며들어 있는 것인가. 그러나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기에는 삶은 너무나 빡빡했기 때문에 사소한 궁금증 따위는 그러려니 무덤에 묻어둔 채 나는 결국 그저 그런 재미없는 어른이 되었다.


이 아련한 의구심을 다시 기억하게 된 것은 2022년 6월, 스스로 불려지고 싶은 이름으로 국호를 변경한 나라를 직접 목격하고 난 이후다. 이 나라는 모두 알다시피 튀르키예(구 터키)다. 국호의 변경은 우크라이나가 자신들의 수도가 러시아어인 키예프로 불려지는 것을 우크라이나어인 키이우로 대대적으로 수정한 것이 시작점이 되었다고 한다. 튀르키예는 튀르크 인들의 땅이라는 뜻으로 튀르키예 국민들은 본인의 국가를 예전부터 튀르키예라고 불렀다. 터키는 서구 열강이 붙여준 이름으로 칠면조나 겁쟁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내가 튀르키예 국민이었더라도 정말 싫었을 것 같다. 


아무튼, 과거에 나에게 튀르키예(구 터키)는 요즘 MZ세대 사이에서 '내 이름 내가 짓겠어!'의 기조로 유행이라는 개명에 성공한 나라 혹은 포르투갈로 혼자 여행을 갔을 때, 잠시 환승했던 나라 정도였다.(아 백종원 씨와 소유진 씨가 신혼여행을 갔다 온 곳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음.. 왜?...) 그런데 왜! 나는 카이막을 별로 먹고 싶어 하지도 않았으면서, 별로 관심도 없었던 튀르키예로 19일씩이나 여행을 갔다 온 것인가. 


그 시작은 직항이었다. 비행기 티켓을 끊을 당시, 나는 너덜거렸다. 다니던 회사가 망했고, 퇴사를 했다. 만사가 귀찮았고, 누구를 만나기도 싫었고, 매일 떠오르는 해를 보면 진절머리가 났다. 뭐가 좋다고 매일 저렇게 떠오르는지. 하루 빨리 지구가 망하길 마음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8차로 고속도로에 떨어져 이십만 번 정도 타이어에 밟힌 거적때기 같은 나는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는데, 그런 씹던 껌 같던 나를 흔들어 깨운 것은 남편 상정이었다. 바쁜 본인의 업무, 바쁜 아내의 업무 때문에 그는 일 년 치 휴가를 못쓰고 있었는데, 9월이 다가오자 도저히 못 참겠던지 그는 '누더기 홍식아. 그래도 우리 어디 좀 가자!'라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아우 귀찮아. 그렇지만 뼈 빠져라 일만 하고 그럴싸한 휴가 한 번 못 가본 나의 반려자의 물기 어린 슬픈 눈동자를 보니 침대에 납작 붙어 있기만 할 수는 없었다.(나는 틈틈이 동생과 제주도 3박4일이니 강릉 워케이션이니 잘 돌아다니긴 했다.) 그의 남은 휴가는 15개. 추석 까지 합치니 쉴 수 있는 날은 약 19일. 나는 백수. 기간은 대략 19일이면 되려나. 귀찮아서 적금 안 들고 파킹만 해놓은 그동안의 월급들과 퇴직금과 신용카드가 있으니 당장 빚은 안 져도 되겠네. 그래 뭐. 멍해진 뇌로 대충 견적을 때리고 나서 나는 남편에게 내 생각을 얘기해주었다. '그래 어디 가도 되겠네. 어디 가서 뭐할까?' 그의 순진한 눈동자는 다시 나를 향했다. 그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시간이 많은 백수의 몫이란다.'


뇌는 부정을 모른다고 했다. 뭐? 백수라도 여행 계획 짜기 싫다. 짜지 말아야지. 생각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자마자 뇌는 쉼 없이 여행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디가 좋을까. 인플레이션이 심하다는데 남미는 어렵겠지. 아, 코로나 검사로 너무 힘들지 않으면 좋겠는데. 비행기 오래 타는 것도 질색이고. 바람 빠진 풍선 같았던 나는 여행이라는 두 글자로 아주 조금 공기가 채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여행지는 '직항'이라는 두 글자에서 엄숙하게 결정되었다. 튀르키예. 아시아나 직항. 갈 때는 11시간 올 때는 9시간. 입국 시 코로나 검사 없음. 킹 달러 현상으로 리라 환율 폭락. 그래 내가 목격한 최초 개명 국 튀르키예로 가자. 한 달이 이렇게 빠른데, 19일 뭐 금방 지나가겠지.


나와 남편 상정의 튀르키예 여행은 이렇게 연습장 속 낙서처럼 시작됐다. 무의욕, 무기력으로 너덜거리는 (무식욕은 아니었음) 거의 금치산자 상태인 나를 꾸역꾸역 동여 메고, 매일 뇌가 끓는 격무에 튀르키예의 ㅌ도 모르는 남편 상정의 손을 부여잡고 떠난 아시아와 유럽 중간에 위치한 아나톨리아 반도의 튀르키예. 기대 없이 떠난 그곳에서 나는 세차게 울고, 힘껏 웃고, 크게 위로받았다.


이 매거진은 2022년 9월 10일부터 29일까지 우리 부부의 튀르키예 여행기를 담고 있다. 남기지 않은 기억은 결국 잊혀진다고 했다. 여행이 끝난 지 약 한 달. 여행의 분진이 가라앉고, 맑은 시야가 확보된 2022년 늦가을. 내가 가장 엉망이었을 때 머물렀던 튀르키예에 대한 기억과 감정으로 이 하얀 공백을 채워보려고 한다. 고맙고 사랑스러운 나의 튀르키예. 잊지말아야지.

우리의 19일 간 튀르키예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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