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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chic Aug 24. 2023

주는 밥을 먹으며 느낀 것들

먹고사는 문제는 단순한 게 아닙니다.

필리핀 어학연수의 최대 장점은 주는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밥시간에 맞춰서 식당으로 가기만 하면 손쉽게 식사를 챙겨 먹을 수 있다. 뭘 먹을지, 배달을 시킬지, 차려 먹을지, 나가서 먹을지 전혀 고민할 필요도 없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줄을 서기만 하면 된다. 너무나 손쉽고 편리하다. 단체 급식이니 무척 맛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맛도 그럭저럭 괜찮다. 나름 샐러드와 과일도 갖춰져 나와서 필요한 영양소를 챙기기에는 나쁘지 않다. 심지어 수요일 저녁에는 스페셜 디너가 제공된다. 필리핀 식문화 특유의 밥 중심의 탄수화물 식단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스스로 적절히 조절해서 먹으면 된다. 크게 문제가 될 부분은 아니다.


우리는 종종 '먹고사는 문제'라는 말을 하곤 한다. 의식주가 삶에 있어 모두 중요하지만 '먹고사는 문제'라는 표현까지 있는 것을 보면 사는 것은 왠지 먹는 것과 직결된 것 같다. 살기 위해선 일단 먹어야 한다. 무엇이라도. 전 직장 동료는 사람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살기 위해 먹는 사람과 먹기 위해 사는 사람.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자기는 후자라고 했다. 실제로 그녀는 점심시간마다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고, 퇴근시간마다 저녁에 무슨 메뉴를 먹을지를 고민하며 회사 밖으로 향했다. 먹을 생각에 반짝이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참 생기가 넘친다고 생각했다. 


그에 반해 나는 살기 위해 먹는 사람에 가까웠는데 주는 밥을 먹는 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식사에 대한 기대가 생겼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배가 고팠고, 접시에 담긴 음식을 쟁반에 옮기며 즐거웠다. 오전 8시부터 시간표에 맞춰 시작되는 단조로운 어학원 생활에서 식사 시간은 단비와 같았다. 어학원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각자가 속한 나라의 문화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중국인 가족들은 마치 집에서 먹는 것처럼 각자 반찬과 밥, 국을 맡아 큰 그릇에 크게 담아 식탁에 놓고 함께 먹었다. 수업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며 화기애애하게 식사하는 모습이 정겨웠다. 가족들이 나누는 식탁 속 대화에서 자그마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일본 친구들은 가져온 음식을 국물 한 방울까지 남기지 않고 싹싹 먹었다. 마치 가져온 음식에 책임을 다하듯이 천천히 모든 것을 다 먹었는데, 늘 잔반을 만드는 나는 그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배울 점이 많은 시간이었다.


가끔은 외식을 하거나 슈퍼에서 사 온 컵라면으로 끼니를 대신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식사를 어학원 식당에서 해결했다. 규칙적인 식사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만들어주었다. 군것질은 물론 야식도 먹지 않게 되었다. 속 안이 편안하니 잠도 잘 자게 되었고, 영어 공부에도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먹음에 걱정이 없어지자 삶의 의미가 더 커졌다. 먹는다는 행위가 삶의 미치는 영향은 컸다. 단정하게 먹으면서 규칙적으로 사는 삶에서 조용한 기쁨을 느꼈던 것 같다. 단 두 달간이었지만.


한국에 돌아온 지금, 먹는 문제는 다시 나의 화두로 떠올랐다. 매번 내가 차려먹어야 하는 밥상의 부담감도 있지만 식재료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 사 먹는 것과 만들어 먹는 것의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 튀르키예, 미국, 베트남, 필리핀을 다녀온 후 더욱 심각성을 느끼게 되었다. 한국의 마트 물가는 너무나 치명적이다. 사 먹지 못하면 해 먹어야 하는데, 해먹지도 못할 판이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먹음이 해결되지 못하니 사는 문제도 복잡하게 엉킨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모든 것은 균형의 문제일 텐데 어디서 균형이 깨진 걸까. 생산자에서부터 시작돼 소비자까지 이어지는 여정에서 부를 독식하려는 세력이 개입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한국의 척박한 자연이 만든 비극인 것일까.


덧.

오늘부터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한다고 한다. 어떤 한 국가의 문제라기보다는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인데 우리나라 정부도, 일본 정부도, IAEA도 너무나 안일하다. 오염수의 방류는 다시 먹는 문제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럼 우리가 사는 문제에도 영향을 받게 될 터인데 모두가 그냥 남일인 듯 여기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국가의 이권을 위해 분쟁하는 것은 이미 지나버린 패러다임인 것 같다. 이제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지구 전체가 노력을 해야 하는 골든 타임이다. 모든 인류가 먹고살기 위해서 이제는 그만 싸우고 진실을 바라봐야 한다. 이러다가는 전부 망한다.


주는밥 1. 스파게티 스페셜 디너. 매번 이렇게 나오는 건 아니다.
주는밥 2. 하이라이스였는지 카레였는지 가물가물. 오크라와 베이비콘이 맛있었다.
주는밥 3. 필리핀 음식 스페셜 디너. 옥수수가 들어간 국물이 맛있었다.
주는밥 4. 어느날 수요일 스페셜 디너. 매끼가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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