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선 스타벅스를 찾기 힘들다.
(정말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앞으로는 더 자주, 또 다양한 글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는 스타벅스를 자주 가지는 않는다. 한국에 있을 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큰 공간보다는 작은 공간을 선호해서, 또 미국에서 들여온 커피 체인점이라는 점 때문에 스타벅스를 즐겨 찾지 않았다. 하지만 스웨덴에 살면서는, 일단 스타벅스가 '없어서' 아예 갈 수가 없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많아도 가지 않았던 스타벅스를 스웨덴에서 굳이 찾아보게 된 건 정말 스타벅스가 '없어서'이다. 일단 내가 살고 있는 학생도시 룬드에는 스타벅스가 없다. 룬드는 인구 8만의 작은 도시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사실 그렇다고 치기에는 로컬 커피 체인들이 너무 많긴 하다) 룬드에서 기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스웨덴 제3의 도시, 인구 말뫼(Malmö)는 큰 도시이니(스톡홀름의 인구는 94만 명) 스타벅스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말뫼에는 스타벅스가 있(었)다!
말뫼 중앙역에 있던 말뫼 유일의 스타벅스. 사실 이곳에서 커피를 사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지날 때마다 은근히 반가웠다. 전부터 자주 가지도 않았고 한국 브랜드도 아니지만 나도 모르는 새 괜히 친근한 마음이 생겼었나 보다. 그런데 어느 날 이곳, 말뫼 유일의 스타벅스는 간판이 사라지고 가게도 없어졌다.
장사도 아주 파리를 날리는 것 같지는 않았고 사람들도 구글에 긍정적인 리뷰를 많이 남겼던데 경영의 압박이 심했는지, 생각만큼 장사가 잘 안됐는지 스타벅스는 망했고 그 자리엔 현재 펍이 들어와 있다. 장사가 안되면 가게가 문을 닫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우리가 신기하게 생각했던 점은 '스웨덴에는 왜 스타벅스 매장 수가 적고 심지어 몇 개 되지도 않는 가게가 문을 닫았을까?'였다.
우리나라에서 자주 또 쉽게 접할 수 있는 국제적 커피 체인인 스타벅스. 2016년 12월에 1000호점을 돌파한 뒤 2017년 8월 기준으로 전국 1083개, 서울에만 400개가 넘는 스타벅스 지점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하철역 출구 근처랄지 사람이 많은 번화가엔 어김없이 스타벅스를 발견할 수 있다. 다른 경쟁 브랜드들도 많지만 스타벅스는 사업 전략을 잘 세워서인지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커피 체인으로 자리매김했고 사람들에게 각인된 이미지 또한 세련되고 긍정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인구와 면적, 인구 밀도에서 완전히 다른 면을 가진 스웨덴과 한국을 단순 비교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국제적 커피 체인 브랜드가 두 나라에서 얼마나 자리 잡았을지 궁금하기에 스웨덴의 스타벅스 매장 수를 찾아보았다.
스웨덴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의 수는 총 16개이다. (2017년 기준, *출처: https://www.statista.com)
수도인 스톡홀름에 7개의 매장이 있고 Arlanda 공항을 제외한 몇 개 도시들에 1~2개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과 스웨덴의 스타벅스 매장 수를 비교해보면 1083개 vs 16개(전국 기준), 443개 vs 7개(수도 기준). 아무리 인구 차이가 있기로서니 숫자로만 비교해보면 차이가 엄청나다. '스웨덴에선 커피를 잘 마시나?/ 커피숍을 잘 안 가나?/ 체인점을 싫어하나?/ 미국 브랜드를 싫어하나?' 오만가지 질문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선 1000호점이 생겼다는데 스웨덴에선 '왜 스타벅스가 장사가 잘 안되지?'라는 의문이 생긴다. 나만 궁금한 것이 아닌지 사람들 사이에는 '스웨덴에서 스타벅스가 인기를 끌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몇 가지 가설들이 있었다.
스웨덴에는 유명한 커피 체인 브랜드인 Espresso House가 있다. 에스프레소 하우스는 1996년, 우리가 살고 있는 스웨덴 룬드에서 첫 매장을 열었고 현재는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등에서 2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는 북유럽의 대표적 카페 체인이다. 스웨덴을 돌아다니다 보면 우리나라의 스타벅스처럼 에스프레소 하우스를 정말 자주 볼 수 있다. 종종 스웨덴 친구들과 스타벅스 vs 에스프레소 하우스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스웨덴 친구들은 에스프레소 하우스를 더 많이 선호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유는 개인마다 다양하겠지만 인테리어가 더 세련되고 가구가 고급스러우며 편안한 분위기가 있어서(에스프레소 하우스의 인테리어는 진갈색의 목재와 녹색식물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에스프레소 하우스를 간다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에스프레소 하우스가 제공하는 서비스(시즌 메뉴, 다양한 디저트와 스낵 메뉴들, 멤버십, 커피 관련 상품 판매 등)가 스타벅스에 비해 부족한 점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에스프레소 하우스만큼 많진 않지만 1994년 스톡홀름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커피 체인 Wayne's Coffee, 공정무역 커피, 콜라 등을 처음 들여오기 시작한 Barista도 있다. 이런 카페 브랜드들은 스타벅스가 스웨덴에 들어오기 전부터 사업을 시작하고 매장 수를 늘려 갔기 때문에 뒤늦게 스웨덴 시장에 뛰어든 스타벅스는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설이 있다.
스웨덴에 살면서 느낀 점은 그들에게 커피가 단순한 기호 식품이나 음료가 아닌 문화라는 점이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까닭은 일단 스웨덴 사람들의 1인당 커피 소비량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1인당 커피 소비량이 많은 국가들은 거의 북유럽 국가들이다. 추운 날씨, 긴 겨울 등의 영향 때문에 따뜻한 커피를 많이 소비하지 않나 싶다.)
또한 Fika(스웨덴식 티타임을 일컫는 말, Fika라는 말의 어원은 cafe를 뒤집어 말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문화를 오랜 시간 즐겨온 스웨덴 사람들이 카페보다는 집에서 익숙한 커피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스웨덴 사람들은 Fika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서 직장에서, 친구나 가족들과도 자주 피카를 한다. 근무 시간 중에 피카 시간이 있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끼리 피카를 할 땐 주로 커피와 달달한 과자를 먹으면서 함께 수다를 떠는데 이때 마시는 커피는 에스프레소 종류가 아니라 필터 커피이다. 피카는 주로 집에서 하기 때문에 에스프레소 기계보단 일반 커피 메이커를 많이 사용한다. 비단 집뿐 아니라 학교나 직장, 사람이 여럿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필터 커피를 내릴 수 있는 커피메이커가 있다. 실제로 내가 공부하는 학과에도 일반 커피메이커, 프렌치프레소, 모카포트 이렇게 세 개가 갖추어져 있다. 돈을 아끼려는 학생들은 카페를 가기보다 집이나 학교에서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신다. 또한 카페에 가도 기본 커피를 달라고 하면 아메리카노가 아닌 필터 커피를 준다. (아메리카노가 없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따라서 피카로 단련된 스웨덴 사람들의 입맛에는 필터 커피가 더 익숙하고 맛있기에 굳이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스타벅스 커피를 찾지 않는다는 가설도 있다. (스타벅스에도 필터 커피는 있지만.)
세 번째 이유는 좀 싱겁다. 스웨덴은 시장이 작고 타사 커피 브랜드와의 경쟁도 심하기 때문에 스타벅스가 스웨덴을 매력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후발 주자라는 불리함, 필터 커피에 익숙한 사람들의 입맛이라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시장이 크거나 잠재적인 수요층이 많다고 판단했다면 기를 쓰고 메뉴 개발을 하거나 마케팅, 투자를 하면서 사업을 확장하려고 했을 텐데 스웨덴의 커피 사업은 이미 다른 브랜드가 선점했고 시장도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에 스타벅스가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장하지 않는다는 가설이다.
커피 소비 대국인 스웨덴에서 스타벅스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참 흥미로워 여러 가설들을 찾아보았다. 위의 가설 이외에도 스웨덴 사람들이 체인점보다는 작은 로컬 가게들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그 말의 또 다른 근거는 스웨덴에서 KFC, 도미노 피자 등 다양한 글로벌 체인들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데에 있다. 우리 또한 여행 중에 익숙한 맛을 찾아 이런 글로벌 체인 브랜드를 찾을 때가 많은데 스웨덴에 유독 이런 체인들이 적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 척박한 곳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몇 개의 브랜드들이 있기에 '스웨덴 사람들이 글로벌 체인보다 로컬 가게를 더 좋아한다'는 가설은 제외했다.
스웨덴에서 강세를 보이는 글로벌 브랜드들은 맥도날드, 버거킹, 서브웨이이다. 인구 대비 맥도날드 매장 수를 나타내는 통계에선 스웨덴이 당당히 세계 8위를 차지하고 있다. 맥도날드뿐만 아니라 버거킹도 어딜 가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경영학도나 마케팅 전문가가 아니기에 정확한 결론은 못 내리지만 스타벅스의 예를 가지고 생각해본다면 '그 나라의 문화나 시장 환경에 따라 사업의 성공 가능성은 크게 달라진다. 그리고 그것은 막강한 국제적 브랜드의 힘을 뛰어넘기도 한다.'라는 당연한 결론을 내려볼 수 있을 것 같다. 스웨덴의 스타벅스가 힘을 쓰지 못하고 스웨덴 현지 커피 체인들에 밀리는 모습은 이런 상황을 잘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특히 서울에선 동네마다 다양한 체인점들이 많았고 나 또한 그런 가게들을 자주 이용했었는데(피자, 떡볶이, 햄버거, 커피, 편의점, 도시락 등등) 스웨덴은 프랜차이즈&체인점 천국인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른 모습과 문화를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어 흥미를 갖게 되었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땐, 내가 이용하는 가게가 체인점인지 아닌지를 크게 의식해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는 체인 브랜드가 워낙 다양하기도 하고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습관처럼 GS25에서 바나나 우유를 산다거나 맥도날드에서 프렌치프라이를 먹고 커피빈에서 카페라테를 마시는 생활을 했었다. 오히려 생활 반경 안에 체인점이 없는 게 이상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으레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간다거나 낯선 곳에 갔을 때, 반짝이는 체인점 브랜드의 간판을 보면 어둠을 밝히는 등대처럼 반갑기도 하고 '실패할 일은 없겠거니.'와 같은 안도의 마음을 가지고 한 번씩 들러보기도 했다. 글로벌 체인 브랜드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심리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렇게 온갖 프랜차이즈와 체인의 세례 속에 살던 우리는 스웨덴에 와서 처음으로 '결핍'이란 걸 경험했다. 하지만 스웨덴의 작은 도시 룬드에 살며 이런 '결핍'은 작은 로컬 맛집들을 찾는 '재미'로 채워졌다. 어쩌면 이 경험을 통해 어딜 가든 익숙한 체인점을 찾기보다 그 지역의 특징을 보여주는 작은 식당들을 찾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