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스웨덴이었을까?
아내의 스웨덴
처음, 스웨덴
교환학생으로 처음 스웨덴에 갔다. 당시 스웨덴은 미지의 세계 그 자체였다. 성평등, 복지 등 대부분 사람들이 스웨덴에 대해 자연스레 떠올릴 단어조차 내게는 생소할 정도였다. 나라 이름부터 어색한 먼 북쪽 땅에 내가 언제 한 번 살아보겠느냐 했던 것이 당시 내가 스웨덴에 온 유일한 이유였다. 유럽 자체가 처음이었던 내게 스웨덴은 교환학생이란 기회가 없다면 여행조차 가볼 일 없는 나라였다. 그런 생각을 품고 준비 없이 간 스웨덴. 스웨덴에서 살아가는 날보다 유럽 이곳저곳을 유랑하던 날들이 더 많았다. 교환학생 생활이 끝나고 나서는 한국에 돌아가 주변 친구들에게, 구직 자기소개서에 스웨덴 전문가인 양 떠들어대기도 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나는 진짜 스웨덴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스웨덴은 좀 춥고 어두운 나라였지, 하는 어렴풋하고 오래된 기억으로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시간을 이기는 것은 인연이었다. 내게는 바쁘게 사는 와중에도 틈틈이 스웨덴을 잊지 않게 해준 친구들이 있었다. 교환학생 때 기숙사 같은 층에 살며 친해진 친구 오스카는 가장 오래된 스웨덴 친구였다. 오스카는 내게 철마다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어왔고 크리스마스처럼 특별한 날에는 먼 한국까지 선물을 보내주었으며 한국으로 여행 와서 나의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지금도 엄마는 가끔 오스카의 안부를 묻는다. 유럽에 가본 적 없었던 엄마에게 스웨덴이란 나라는 딸의 착한 친구 오스카의 고향으로 기억되는 것 같았다.
달려왔던 삶을 조금 내려놓고 천천히 걷고 싶었다
교환학생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대학생에서 취업준비생으로, 인턴으로, 또 직장인으로 상황이 바뀌며 끊임없이 뭔가를 시도했고 또 좌절했다. 졸업만 하면, 취업만 하면, 퇴사만 하면… 그렇게 나는 현재보다 미래를 생각하고 견디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렇게 살다 보니 사람들이 말하는 좋은 ‘스펙’이 만들어졌고 내 삶의 성실한 ‘증명’이 되었다. 하지만 한참을 지나고 돌아보니, 그 좋은 스펙 안에 진짜 내가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뭔가를 끊임없이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한 줄 한 줄의 경력을 되새겨보면 ‘거기서 내가 뭘 했더라?’ 하는 것은 전혀 떠오르지가 않았다. 스펙은 각각의 자기소개서 안에서 매번 전혀 다르게 묘사됐고 전혀 다른 감동을 지어내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쫓기는 기분으로 살지는 않겠지’ 하는 기대를 했다. PD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매주 촌각을 다투는 방송 시간을 맞추는 데 모든 감각을 썼다. 촬영하고 편집하는 3, 4일간은 쪽잠을 자야 했다. 채워지는 건 없고 내 안의 모든 것이 빠져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친한 선배들은 4년이나 견뎠는데 아깝지 않느냐고, 조금만 더 버텨보라고 말했다. 새로운 꿈을 꿀 게 아니라 쌓아놓은 것을 잘 이용해 살아가는 게 현명한 것이라는 조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진심 어린 말은 외면하기 힘들었다.
어차피 내 인생, 내 선택
중요한 건 결국 내 자신의 판단이고 결정이었다. 그간 가장 두려웠던 점은 월급이 나오는 안정적인 생활을 그만두면 후회할 것 같은 마음이었다.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퇴사 후에 하고 싶은 공부가 분명했지만 그 길에 들어설 용기를 내는 것이 어려웠다. 소속 없는 삶을 감당할 마음의 준비와 달려 나갈 트랙이 확실하게 보이지 않는 선택을 하는 데만 해도 몇 년이 걸렸다.
그럴 때마다 나의 용기를 다시 북돋아준 사람이 당시 남자 친구, 지금의 남편이었다. 나와 전혀 다른 성격에 교사라는 공통분모 없는 직업을 가진 남편은 ‘달랐기에’ 내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상대였다. 남편은 항상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의 선택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어떤 방향을 제시해 주기보다는 내가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시선들 때문에 스스로 결정을 접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다독여 주었다. 때로는 누군가가 내 고민에 대한 답을 명쾌하게 말해주길 바란 적도 많았다. 하지만 남편은 다른 사람이 조언하는 대로 따라간다면 후회할 것이라 말했다. 가끔 그런 남편이 냉정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 내 스스로 선택했기에 고민했던 퇴사도 미련이 없었고, 현재의 삶에도 후회가 없는 것 같다.
남편의 스웨덴
내 삶의 이정표는 무엇일까
아내가 유학을 결정하고 내가 동행하기로 하면서 내 첫 유럽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내는 대학생 시절에 스웨덴으로 교환학생을 한 번 갔다 온 경험이 있어서 스웨덴을 낯설어하지 않았다. 나는 교환학생도 어학연수 경험도 없었기 때문에 해외에서 장기적으로 생활하는 것 자체가 설렘과 기대로 다가왔다.
떠나기 전엔 기대와 설렘만큼이나 많은 고민과 물음이 있었다. 대학원에서 환경 분야를 공부하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정하고 온 아내와 달리 나는 아무것도 정한 게 없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학교와 학생들, 교육이라는 한 가지 분야만 생각하고 지냈기 때문이었다.
출국 날짜는 점점 다가왔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영어 공부를 안 한 터라 영어실력도 초급 수준이었고 스웨덴어는 평생 들어본 적도 없었다. 말도 안 통하고 문화조차 생소한 스웨덴에서 잘 살 수 있을까? 걱정이 점점 커졌다.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들은 그저 나를 부러운 눈길로 바라봤고 다른 지인들은 “2년 동안 너는 거기서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텐데 그냥 한국에서 돈 벌면서 아내 유학 생활 뒷바라지하는 건 어때?”라며 조언과 충고를 해주기도 했다.
이런저런 말들이 오갔지만 나의 결정은 ‘아내와 함께하는 스웨덴에서의 생활’이었다. 스웨덴 생활이 곧 신혼 생활이기도 했으니까. 다행스럽게 우리는 스웨덴에서 평화롭고 조화로운 삶을 꾸려갔다. 아내는 대학에 다니며 공부에 매진했고 나는 ‘콤북스(KOMVUX: 스웨덴의 성인교육기관)’에 다니며 스웨덴어를 배우고 각종 집안일을 하는 동시에 우리 부부의 스웨덴 생활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일상을 보냈다.
스웨덴으로 같이 갈 것인지 한국에 있을 것인지를 고민할 때, 눈에 보이는 목표보다는 내적인 목표에 집중하기로 했었다. 내면을 살찌우고 우리 부부를 성장시킬 수 있는 것들. 비록 명확한 성과가 보이지 않아 다른 사람들의 눈에 왜 간 걸까 싶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나의 스웨덴행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게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고 말로 풀어내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지인들이 왜 스웨덴에 가게 되었는지 물어보면 자세히 이야기하지 못했다. 이제야 잘 정리해볼 수 있는, 스웨덴행에 대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는 너무 팍팍한 현실
스웨덴에 살며 많은 한국인 유학생들을 만났다. 그들 대부분이 입을 모아 이곳에서 직장을 구해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것처럼 한국의 팍팍한 현실과 부조리함 때문이었다. 나의 경우도 그랬다. 내가 10여 년 전에 겪었던 입시 경쟁이 지금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꿈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없다. 대학 졸업, 취업만 한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회사에서는 장시간 노동과 야근,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있다. ‘적당한’ 때가 되어 결혼으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으면 더욱 지친다. 양육에 친화적이지 않은 한국의 보육 정책, 육아휴직을 쓰기 어려운 기업 문화, 가정의 경제적 부담, 경력이 단절되는 엄마들…. 세상은 편리한 방향으로 빠르게 변해가지만 어쩐지 우리의 삶은 점점 팍팍해지는 것 같다.
교사로서 매일 학생들을 마주하고 가르치면서도, 한국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두렵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점점 공감하게 되었다. 우리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매일 열심히 공부하고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결론 내리는 사회적 인식도 답답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의 내면은 겉모습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연봉과 집 평수, 소유한 자동차가 안부 인사였고 그걸로 사람을 판단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봤다. 그런 이야기들에 지칠 즈음, 스웨덴에 살면서 온전히 내 시간을 누리게 되어서 기뻤다. 스웨덴에 살며 우리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어떠한 기준으로 살아갈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초등학교 교사의 일상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초등학교 교사의 일상은 대체로 규칙적이다. 3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므로 모든 일정이 3월을 기준으로 시작된다. 3월, 학생들과의 첫 만남은 언제나 바쁘고 정신없다. 새 학기의 설렘이 잦아드는 5월에는 체육 대회, 가정의 달 행사들이 있다. 그리고 날씨가 더워지면서 여름방학 시즌이 온다. 2학기는 1학기보다 시간이 훨씬 짧게 느껴진다. 8월 말에 개학을 하고, 조금 있으면 추석 연휴가 있다. 그 이후에 학예회나 수학여행 등의 행사를 치르고 11월을 맞이하며, 이어지는 겨울방학까지 보내면 새해 1월, 신학기를 준비하는 2월이 다시 돌아온다.
이런 일상이 쌓여 금세 7년이 되었다. 익숙한 한편, 이 일상이 정말 나에게 당연한 일인지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일상 너머로 시야를 넓히고 싶었던 순간에 스웨덴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또한 스웨덴 특유의 사회 제도와 문화, 삶을 대하는 태도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문화가 아예 다른 환경에서 생활한다면 나를 알고 더 넓은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의 삶을 바라보면 실제 스웨덴 사회의 모습을 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스웨덴 생활을 통해 얻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우리 부부의 삶에 영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