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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속가능 스튜디오 Oct 09. 2018

이방인의 시선으로 보는 스웨덴

외국인으로서 스웨덴에 살며 바라본 스웨덴 사회의 이면


무조건 ‘여긴 헬조선이다’ 할 수 있을까? 

한국과 다른 스웨덴 사회를 보면서, 각자 살아온 문화를 무시하고 ‘역시 한국은 헬조선이야’ 말하는 건 섣부른 판단이다. 스웨덴과 한국 두 나라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차이점도 아주 많다. 따라서 모든 조건을 동일 선상에 고 비교할 수는 없다. 두 나라의 지역적 특성과 자연환경, 문화의 차이가 역사가 흐르며 차곡차곡 쌓이면서 지금처럼 굉장히 다른 두 나라의 모습을 만들어낸 것이니까.


스웨덴이 지금처럼 복지 천국이라고 불리는 데는 역사와 정치적 힘이 세지 않았나 싶다. 스웨덴 사회 민주 노동당은 19세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영향력 있는 정당이다. 이 정당은 1910년대부터 지금까지 몇 번의 선거를 제외하고는 줄곧 제1당이었고 총리도 여러 차례 배출했다. 사회민주주의, 자유, 평등, 연대를 외치는 그들은 장기적으로 집권하면서 다양한 복지 정책을 만들고 실행했다. 이렇게 국민적 지지가 높은 사민당이 100년 가까이 안정적으로 복지 정책을 펼침으로써 스웨덴은 자연스럽게 지금처럼 세계에서 손꼽히는 복지국가가 될 수 있었다.


스웨덴 사회민주당

한국은 전쟁이 끝나고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경제적 발전을 이뤘다. 그러나 복지라는 말이 화두로 떠오르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IMF 외환 위기 이후 고용과 생활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보편적 복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복지의 역사가 짧다 보니 여러 가지 논란이 많고 정책적으로도 혼란스러운 상태다.


스웨덴에 살며 종종 ‘역시 스웨덴이야, 한국은 안돼’라는 식으로 말하는 한국인들을 만났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했다. 나 또한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 아쉬운 부분들이 많다고 느끼니까. 그렇지만 때로는 ‘걸어온 길이 다른 스웨덴과 한국을 비교하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한다. 스웨덴 사회에도 그 나름의 고충과 문제점이 많고 스웨덴에 비해 한국이 더 하고 있는 것도 많다.


가끔 우리가 너무 쉽게 한국을 ‘헬조선’이라 표현한다는 생각이 든다. 스웨덴 친구들한테 이곳의 장단점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넌지시 물어보면 쉽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부분 깊게 고민하고 대답했다(며칠이나 걸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환경, 건축, 교육, 의료 등 친구들이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어서 다양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자기가 사는 곳이 지금보다 더 좋아졌으면 하는 마음은 똑같은 것 같았다. 친구들은 스웨덴의 장점만큼 많은 단점을 이야기해줬고 그래서 나도 스웨덴의 이면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공통적으로 스웨덴이 정부 차원에서 기본적인 복지를 보장하고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해준다는 믿음은 있었지만, 정권이 바뀌고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으며 스웨덴만의 복지가 변질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상속세, 증여세, 부유세 폐지와 낮아지는 법인세로 인한 부의 불평등에 대해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부의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웨덴과 한국이 같은 고민을 갖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에 비교해 높은 소득세에 대해 이야기하는 친구가 적었던 이유는 그만큼 복지 혜택이 많기 때문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개인이 지는 부담이 적고(학생수당, 양육비 등 실생활에 필요한 비용) 나라에서 복지를 일정 부분 책임지기에, 안정된 삶을 보장해준다는 것이 스웨덴의 가장 큰 장점인 듯했다.


스웨덴 사람들 또한 주택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는, 스웨덴의 춥고 긴 겨울 동안 햇빛이 드는 시간이 적어 기분이 우울해진다는 친구들이 많았고, 스톡홀름에 사는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주택난은 서울과 다를 바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게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한 사회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어 좋았고 동시에 스웨덴이 모든 면에서 ‘이상향’으로만 정의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스웨덴이 완벽한 나라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노력하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그들의 자신감을 느꼈다. 그들을 보며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한 것 아닐까 생각했다.



스웨덴에서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

우리는 스웨덴에서 외국인이다.

어딜 가나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는 것은 어렵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이곳에 녹아들어 잘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스웨덴식 생활방식을 이해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외국인으로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스웨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실제로 최근 들어 스웨덴의 이민자 수가 급증한 만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스웨덴 사회에 잘 통합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과 토론의 장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스웨덴으로 이민 가는 것이 다른 나라보다 더 수월하다고 말한다. 노골적인 인종차별이 적고 의사소통도 영어로 할 수 있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며 취업을 도와주는 기관도 잘 갖춰져 있어 이민에는 친화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스웨덴에서는 그 과정이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 주변 친구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스웨덴에서 학교에 다니지 않았거나 스웨덴어로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지 않은 사람들은 본인의 원래 전공과 경력에 딱 맞는 회사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스웨덴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잘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의사소통하기엔 무리가 없고 친구 사귀기도 비교적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취업을 할 때는 스웨덴어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꽤 중요한 요소가 된다. 취업 성공률을 높이려면 스웨덴어를 적어도 8개월에서 1년 이상은 배운 뒤에 직장을 찾아야 하는데 낯선 언어는 부담으로 작용해서 어렵게만 느껴진다. 


취업 상담 기관은 존재만으로도 이민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긴 하지만 기관에서 추천하는 일자리는 보통 스웨덴 사회에서 부족한 직업군이다. 스웨덴에서 고등교육을 받지 않은 경우, 자신의 전공을 살려 취업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외국인 직원의 채용을 많이 진행해온 글로벌 기업이나 규모가 큰 기업이 아닌 곳은 외국인을 채용하기 위해 이민청에서 일종의 허가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이 허가증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들뿐더러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급하게 인력이 필요한 소규모 회사들은 이런 재정적, 시간적 비용을 감당하며 외국인을 고용하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취업 기관에서 추천하는 직업은 주로 교사, 간호사였다. 교사, 간호사는 스웨덴에서 부족한 직업군에 속하는데 사실 두 직업 모두 어느 정도 이상의 교육이 필요해서 경력이 없으면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없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스웨덴에서도 외국인이 직장을 구하고 자리를 잡는 데에는 그만큼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신경 써야 할 것도 많다. 물론 차분히 준비해서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을 보면 그 회사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아 그런 노력들이 헛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교사가 부족한 스웨덴. 스웨덴 교육부에서는 사람들이 교직에 지원하도록 홍보하고 있다


취업 이야기에서 벗어나 인간관계를 들여다보면 이 또한 우리와 굉장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웨덴에 사는 한국 사람들에게서 자주 듣는 이야기 중 하나는 스웨덴 사람과 친해지려고 노력할 때면 항상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스웨덴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았다.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친절하게 대답해주지만, 그 이상 더 가까운 친구로 지내기는 쉽지 않다고 말이다. 스웨덴 사람들의 개인주의적 성향 때문에 은연중에 타인과 거리를 두는 것 같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들은 개인의 공간, 개인의 선택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따라서 남에 대한 지나친 간섭 또한 경계한다. 내가 살면서 경험한 일들만 돌이켜보아도 누구든 내가 도움이 필요해 보일 때 다가와 기꺼이 도와주지만 그 이상으로 교류를 맺기 위해서는 내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차이를 외국인에 대한 차별로 인식하고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외국인에게 일부러 거리를 둔다고 말하는 스웨덴 사람은 내 주변엔 없었다. 하지만 단기간에 가까워지기 힘든 스웨덴 사람들의 거리 두기는 타국에 살면서 더 큰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외국인들에겐 냉정함으로 비칠 때도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이방인으로서 타지에 사는 건 큰 도전이다.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상상했던 것과 실제 삶은 너무나 다르다. 이민 친화적인 스웨덴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 부부에게도 “돌아오지 마라”, “스웨덴에 살지 한국에 왜 오려고?”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쩌면 별 뜻 없이 한 말이겠지만 우리는 그 선택의 무게를 알기에 웃으며 넘기기 힘들 때도 종종 있었다. 스웨덴이 마음 편히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평생 살았던 고국을 떠나는 건 그와는 또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아닐까?



조수영, 이성원 지음 <헤이스웨덴: 완벽하지 않지만 적당히 행복한 스웨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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