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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속가능 스튜디오 Oct 16. 2018

아프면 쉬어야지

한국의 치료와 스웨덴의 휴식, 우리에겐 둘 다 필요하다


고열과 함께 달리기 신기록을 세웠던 날

학창 시절, 내게는 아무리 아파도 학교는 빠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뿌리 박혀 있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학교에 간 건 지금 생각해봐도 놀라운 성실함이었다. 분명 아팠던 날도 있었다. 그래도 꾹 참고 끙끙대며 기어코 학교에 갔고 종종 조퇴는 했을지언정 결석은 하지 않았다. 내 컨디션이 자기 의지에 달려 있다는 믿음이 강해졌던 건 초등학교 4학년 때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그때는 전날 저녁부터 감기 기운이 있어서 어지럽고 열이 났다. 다음 날 침에도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지만 감기 때문에 학교에 안 간다는 건 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감기약을 먹고 학교에 갔다. 약 기운 때문에 몽롱한 상태로 겨우 수업을 들었는데 하필이면 그날 50m 달리기 평가가 있었다. 체육 시간에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달리기는 힘들 것 같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는데, 선생님은 오히려 바람을 맞으면서 달리고 나면 감기가 좀 가라앉을 수도 있을 거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달리기 출발선에 섰고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열심히 달렸다. 결승선을 통과하자 선생님께선 저번 기록을 경신했다고 알려주셨다. 그러면서 참고 열심히 달리니 좋은 기록이 나오지 않았냐고 하시며 나를 칭찬하셨다. 그때 그 기억이 너무나 강해서 후에 몸이 아프다 해도 웬만하면 꼭 출석했고 심지어 다쳐서 다리가 부러진 다음 날에도 목발을 짚고 학교에 가서 공부했다. 내가 받은 개근상의 개수가 늘어갈 때마다 성실하면 다 된다는 나의 믿음도 쌓였다.


그 믿음은 교사가 된 이후에도 계속됐다. 나는 아이들과 한 교실에 있으면서 감기를 늘 달고 살았는데, 아무래도 좁은 공간 안에서 많은 사람이 함께 지내다 보니 환절기는 물론이고 아이들 사이에서 감기가 유행하기 시작하면 며칠 뒤에 나도 꼭 감기에 걸렸다. 일하면서 병에 걸리거나 몸 상태가 최악이었던 적은 없었지만 하루 쉬면 나을 몸살에 걸렸을 때도 결국 출근해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이렇게 무리를 했던 건 우리 교실 아이들은 내가 꼭 돌봐야 한다는 일종의 책임감과 학창 시절부터 시작된 근면성실함, ‘감기 때문에 학교 결근하겠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분명 어두워질 교감선생님의 표정 때문이었다. 이런 각오 아닌 각오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도 같았다. 내가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응급실에 갈 정도로 아프지 않은 이상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출근했고, 정규 수업이 다 끝난 후에야 조퇴했다. 교사가 아파서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스웨덴어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나오지 않은 이유

스웨덴에서 ‘콤북스KOMVUX(스웨덴의 성인교육기관)’에 다니며 스웨덴어를 배웠다. 우리 스웨덴어 선생님은 안돈이라는 이름의 남자 선생님이었다. 안돈은 유쾌하고 유머감각이 뛰어나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았고 나에게도 스웨덴어를 즐겁게 공부할 수 있게 동기 부여를 해준 고마운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업 시작 시간이 됐는데도 선생님이 교실에 오지 않았다. 선생님이 왜 안 나왔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아파서 결근했다고 하는 것이다. 수업 취소라는 말에 예정에 없던 여유가 생겨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미리 알려주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날 이후 선생님은 휴가를 이틀 더 썼다. 덕분에 나는 사흘간 짧은 방학을 얻어 자유를 누리면서도 ‘선생님이 이렇게 오래 쉬어도 되나?’ 싶었다. 나흘째 되는 날, 안돈 선생님은 다시 출근했는데 그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수업을 시작했다. 선생님은 미안하다는 말 대신 그동안 자신이 왜 수업에 못 나왔는지 이유를 설명했다.


선생님에겐 어린 자녀들이 있고, 종종 아프거나 감기에 걸린다고 했다. 많이 아플 때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대신 집에서 쉬게 한다고. 그럴 때면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보호자가 한 명은 집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엊그제 아이가 아팠을 땐 회사에 나간 아내 대신 자기가 병가를 쓰고 집에서 아이를 돌봤다고 했다. 아내와 번갈아 가면서 병가를 쓰곤 하는데 이번엔 자기 차례였다고. 이유를 들으니 납득이 갔다. 한편으로는 맞벌이 부부가 병가를 이렇게 자유롭고 길게 쓸 수 있는 것, 현실적으로 복리후생이 잘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무리하지 않는’ 스웨덴 사람들을 보고 나도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아이가 아플 땐 어쩌지 생각해보았다 (출처: www.pexels.com) 

우리 부부는 아직 아이가 없지만 만약 아이가 감기몸살로 아프다고 상상해봤다. 우리가 맞벌이하는 상황이라면 둘 중 한 명은 집에 남아 아이를 보살펴야 할 텐데 ‘아이가 아파서 병가를 쓰겠다’고 윗사람에게 말하는 건 정말 눈치 보이는 일일 것이다. 아이가 아프다고 부모가 며칠 동안 병가를 쓰는 게 한국에서 가능하기나 할까?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회사에 못 나가게 되면 동료들에게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지는 않을까? 일과 아이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은 매우 무겁고 힘들 것이다. 내가 아파도 마음대로 쉬기가 어려울 때가 있는데 하물며 아이가 아플 땐 어떻게 보살펴야 하나 걱정부터 하는 우리의 모습이 슬프게 느껴졌다.



느리고 불편한 것 같지만 효율적인 스웨덴식 처방

스웨덴에 살며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갈 일이 있었다. 스웨덴 병원에 처음 갔을 땐 신기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게시판에 붙어 있는 한 안내문을 발견했다. ‘감기 예방 수칙’이었는데 한국과 달랐던 점이 있었다. 감기에 걸린 환자에게 보건소나 병원에 가지 말라고 안내하는 부분이었다.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는 대신 집에 머물고 보건소에 전화해서 감기 치료 방법을 상담하라고 했다. 이유인즉슨 감기 환자가 병원에 간다거나 외출하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감기를 옮길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인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픈 사람을 두고 병원에 가지 말라고 하는 건 그간 내 상식으로는 한 번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국과 스웨덴의 의료 서비스는 다른 면이 많았다. 그래서 스웨덴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이런 ‘다름’에서 오는 불편함을 종종 겪는다고 했다. 병원에 가려면 며칠 전에 미리 약속을 잡아야 한다거나 갑자기 아파서 응급실에 갔는데 6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던 사람의 경험담, 아이가 열이 나서 병원에 갔는데 아주 심한 고열은 아니니 그냥 집에서 쉬라고 권유받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어떤 친구는 감기로 병원에 갔더니 별로 심하지 않으니 집에서 푹 쉬면서 따뜻한 차를 많이 마시라는 이야기만 들었다고 했다. 엉덩이 주사 한 방과 감기약을 기대했던 친구는 아무것도 안 해준 병원에 조금 황당해하며 집에 돌아와야 했다. 이런 부분에서는 다들 빠르고 편리한 한국의 의료 서비스를 그리워하는 모습이었다.

스웨덴 대학병원 응급실 풍경


스웨덴에서 맹장 수술을 받다

한국 의료 서비스가 익숙했던 나이기에, 이런 느리고 불편한 스웨덴 병원 일화를 들으면서 이곳에선 되도록 아프지 말아야지 다짐했었다. 그런데 그 다짐이 무색하게 얼마 지나지 않아 맹장염에 걸려 수술을 받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큰 수술은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걱정을 많이 했었다. 낯선 병원, 영어로만 의사소통해야 하는 상황. 무엇보다 수술 후에 병원비는 얼마나 나올지가 제일 걱정이었다. 하지만 수술 과정은 한국과 똑같았다. 혈액 검사, 수술 안내 그리고 TV에서만 봤던 누워서 수술실로 들어가는 장면까지. 의사와 간호사가 스웨덴 사람이고 우리가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는 것만 달랐다.


다행히 맹장 수술은 별문제 없이 끝났다. 나는 수술 다음 날 점심쯤 퇴원했다. 수술을 마치고 2~3일 정도는 입원하겠거니 속으로 생각했었는데 의사는 내 예상보다 빨리 퇴원하라고(당일에도 퇴원이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어? 진짜 괜찮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아마 이 정도 수술은 빨리 퇴원해도 몸에 큰 무리가 없다는 게 스웨덴 의사들 생각인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수술이 끝나고 병실에 올라오자 간호사가 샌드위치와 포도 주스, 초콜릿을 가져다주었다. 수술하느라 배 많이 고팠을테니 밥 먹으라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문득 ‘한국에선 맹장 수술 후에 금식한다던데 나는 안 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맹장 수술 직후 받은 병원식, 정말 새롭다.

퇴원할 때 간호사는 병원엔 다시 안 와도 되고, 병원비는 나중에 고지서가 청구되면 그때 내라고 알려줬다. 병원비를 모두 내고 퇴원하는 한국과 또 다른 모습이었다. 퇴원하고 보름 뒤에 의료비 청구서가 집에 날아왔다. ‘올 것이 왔구나’ 싶어 떨리는 마음으로 봉투를 뜯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청구서가 잘못 온 거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편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병원비가 200크로나, 한국 돈으로 26,000원 정도밖에 안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이틀 치 입원 비용만 청구됐고 수술비 청구는 아예 없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청구서를 보낸 곳으로 전화를 해봤다. 담당 직원은 그 청구 금액이 맞으니 200크로나를 납부하면 된다고 했다. 그의 안내대로 나는 맹장 수술, 입원비로 200크로나만을 납부했다. 이후로 또 다른 의료비 청구서는 오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여전히 의료 시스템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정보를 찾아봤다.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면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구분 없이 똑같이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병원비를 낼 때 수술비는 따로 없고 진료비는 1년에 최대 1,100크로나(약 14만 원)까지만 낸다는 것, 의료 예산은 지방정부에서 지원한다는 것 등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받는 보편적인 치료와 건강을 위해 나라에서 많은 예산을 쓰며 책임지는 모습이었다. 나도 직접 겪게 되니 신기했다.


한국과 스웨덴 둘 다 경험해보니 두 나라의 어딘가 중간쯤 되는 지점이 있다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한국 사람이 보기엔 조금은 불편하고 느린 스웨덴식 처방. 감기 같은 작은 병이라도 필요한 상황에서는 적절한 약과 주사를 통해 더 효율적인 치료를 꾀할 수 있지 않을까? 반면 한국에선 병원에 가서 쉽게 주사를 맞고 빠르게 약을 받아올 수 있지만 정작 집에서 푹 쉬어야 할 때는 편히 병가를 쓰기 어렵다.


약을 먹고 빨리 나아서 일하러, 공부하러 가는 게 좋은 걸까, 자연스럽게 휴식을 취하면서 낫는 게 좋은 걸까? 우리는 ‘그냥 좀 쉬어’, ‘아무것도 하지 마’라고 말하는 몸의 신호를 무시한 채 소위 ‘약발’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본다. 감기처럼 가벼운 병이 찾아왔을 때, 우리 마음속에 병원과 약보다 휴식이 먼저 떠올랐으면 한다. 또한,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조수영, 이성원 지음 <헤이스웨덴: 완벽하지 않지만 적당히 행복한 스웨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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