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편리함을 위해 누군가의 편안함이 희생되는 것은 아닐지
스웨덴 생활에 익숙해지고 내 주변을 둘러싼 것들 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스웨덴과 우리나라가 가진 차이점 또한 보이기 시작했다. 그 차이점이란 작게는 도로와 건물의 모습부터 크게는 사람들과 두 사회가 가진 문화에 이르기까지 많은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중 나에게 가장 먼저 와 닿았던 것은 삶의 속도였다. 스웨덴은 내가 겪어온 것보다 삶의 속도가 느렸다. 한국보다 삶의 속도가 빠른 나라는 몇 안 될지도 모른다. 고요함과 여유를 좋아하는 그들은 은행에서 일 처리가 늦다고 답답해하거나 아이를 데리러 갈 때 시간에 쫓겨 발걸음을 재촉하는 일이 드물었다. 단지 서로 멀찍이 떨어진 채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린다거나 세무서에서 번호표를 뽑고 ‘내 차례가 언제쯤 오려나’라고 생각하며 차분히 기다릴 뿐이었다.
서울은 도시 곳곳에 ‘빨리빨리’가 습관처럼 배어 있다. 그래서 음식 배달이나 행정 업무, 서비스 같은 것들이 순식간에 처리됐다. 빠른 서비스 덕분에 편리한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나 역시 그와 같은 속도로 누군가를 만족시켜야 했기 때문에 서울의 속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맡은 일을 잘해야 한다는 압박은 덤으로 따라왔다. 하루를 마치는 퇴근길에 종종 ‘내가 점심으로 뭘 먹었지?’를 기억해내지 못한 채 집에 와서 저녁밥을 먹은 일이 허다할 정도였다.
배달이 안 되는 음식점들, 예약을 안 하면 허탕을 칠 수도 있는 행정 기관, 주말 저녁이면 칼 같이 문을 닫는 상점들. 한국의 빠른 속도에 익숙해 있던 나는 이곳에 와서 ‘도대체 왜 이렇게 일 처리가 느린지’, ‘주말 저녁에 왜 이렇게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는지’ 알 수 없어 꽤 긴 시간 동안 답답해했다. 한국 같았으면 왜 이렇게 느리냐며 항의를 했을 법한 일들도 여기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거나 ‘그게 큰 문제인가?’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기존 방식 그대로 스웨덴에서도 살아간다면 내가 되레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이렇듯 한 사회 안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문화가 다른 사회에서는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건 내게 흥미로운 일이었다.
스웨덴에서는 여러 가지가 느렸지만 우리 부부를 제일 애태웠던 건 통장 개설이었다. 스웨덴에 오고 통장을 만들기까지 근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순수하게 은행에 가서 통장 개설을 신청하고 발급을 받기까지는 일주일 정도 걸렸다. 다른 나라도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인 생활에 가장 필요한 통장 개설을 그 자리에서 바로 할 수 없어서 답답했다. 행정 기관을 방문할 때도 비슷했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그 날 상담을 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예약 없이 방문할 수 있는 곳이어도 대부분 민원인이 많고 일 처리 속도는 당연히 빠르지 않았다. 때문에 번호표를 뽑고 또 한나절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우리 부부가 만난 담당 공무원들은 업무 스트레스가 적은 지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그들 특유의 여유로운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상담을 마치고 필요한 서류를 작성한 후 이제 끝났겠다 싶었는데 일은 바로 해결되지 않았다. 상담을 마치니 담당자가 “집에 가서 기다리세요. 몇 주 후에 민원에 대한 결정문이 우편으로 갈 거예요”라는 말을 전했다. 그렇게 또 집에 와서 기다려야 했다. 한국에서는 당일에 해결되는 일, 바로 발급받을 수 있는 서류들이 스웨덴에서는 며칠, 심지어 몇 주가 걸렸다.
도시의 많은 가게들 역시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에 익숙했던 소비자라면 불편함을 느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가게들의 폐점 시간이 이르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저녁 7~8시, 주말에는 오후 3~5시가 되면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일요일에는 아예 열지 않는 가게들도 꽤 있었다. 룬드는 학생들이 많은 도시여서 그런지 6~8월, 석 달 동안 이어지는 긴 여름방학에는 몇몇 가게들도 여름휴가라며 문을 닫았다. 물론 학생 도시가 아닌 스톡홀름에서도 2, 3주간 여름휴가를 떠난다며 가게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에선 명절이나 공휴일에 오히려 더 바빠서 손님을 맞으려고 주인과 아르바이트생들은 쉬지 못하고 문을 여는 가게들이 굉장히 많은데 스웨덴은 너무 달랐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속도로 인해 일하는 사람들이 숨을 쉴 수 있는 것 같다. 노동자는 시간에 덜 쫓기게 되고 장사하는 사람도 가족과 함께 오붓하게 저녁을 먹을 수 있을 테니까. 소비자가 조금 불편하고 느려지는 대신 노동자는 그만큼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소비자가 좀 더 편리한 서비스를 누리기 위해선 누군가가 좀 더 빨리 그리고 늦게까지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밤늦게 편의점에 맥주를 사러 간다면 그 시간에 일하는 직원이 있어야 하고 행정 업무가 그 자리에서 바로 처리되기 위해선 직원이 더 빠르게 일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나는 느린 일 처리와 이른 폐점 시간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편리를 위해서 다른 사람의 편안이 희생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 사람들의 수고를 잘 알고, 그들을 향한 감사와 배려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스웨덴 마트에서 우리는 종종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계산대 벨트 위에 물건을 올려둘 때 아무렇게나 쌓아두지 않고 일렬로 알맞게 정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물건들을 바코드가 보이는 방향으로 올려뒀다. 물건들이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서서 계산대를 통과하는 모습은 귀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은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있었을까? 모든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모습을 여러 번 목격하자 궁금해졌다.
그건 마트 직원이 계산을 할 때 좀 더 편하게 물건 가격을 찍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었다. 만약 물건을 뭉쳐서 쌓아두면 계산을 하는 직원은 물건들을 하나씩 집어 가격을 찍어야 할 것이다. 거기에 더해 바코드가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물건을 올려두면 계산을 하는 직원은 물건을 다시 요리조리 돌려 바코드를 찾고 가격을 찍어야 한다. 그 수고를 덜어주고자 스웨덴 사람들은 계산대 위에 물건을 올려둘 때 차례대로 그리고 바코드가 보이는 방향으로 올려두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트 입구나 계산대 어디에도 ‘계산대 위에 물건을 하나씩 올려주세요’, ‘물건 바코드가 보이는 방향으로 물건을 올려주세요’와 같은 안내는 쓰여 있지 않았다. 바코드가 보이지 않게 물건을 올려두거나 물건을 뭉쳐서 올려뒀다고 해서 지적하거나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것은 단지 일부 사람들의 자발적인 행동일 뿐이었다.
한국에서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은 들을 때면 나는 늘 불편했다. 휴대폰이 고장 나서 서비스센터에 갔을 때 너무 친절한 직원들의 응대에 한편으론 기분이 좋았지만 그 친절에 어찌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기도 했었다. 아주 예전에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을 땐, 무릎을 꿇고 내 옆에서 주문을 받는 직원을 보고서 대접받는다는 느낌보다 굳이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너무 부담스러운 서비스에 마음 한구석이 자꾸 걸렸다.
철저한 고객 중심 주의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 고객과 직원 사이에는 수직적인 관계가 만들어지고 소위 말하는 ‘갑질’이 생기기도 한다. 수직적인 관계 속에서 직원은 때로 고객의 폭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부당한 대우에도 웃으며 응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객 중심 주의가 직원 중심 주의로 바뀐다고 해도 부당한 대우의 대상이 고객으로 변할 뿐 크게 달라질 건 없다.
감정 노동, 과잉 친절처럼 한쪽이 일방적으로 허리를 숙여야 하는 관계는 스웨덴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가거나 행정 기관에서 상담을 받을 때에도 고객인 나와 상대방 직원은 서비스를 주고받을 뿐 그 이상의 친절도 그 이하의 무례도 존재하지 않았다. 누구든 소비자가 될 수 있고 누구든 노동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서비스를 고객이 응당 누려야 할 권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가게는 손님의 편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직원은 항상 친절하게 고객을 응대하면 고객은 그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돈으로 지불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서비스 안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항상 친절한 얼굴과 표정으로 고객을 대하는 직원들도 우리와 같은 권리와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