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입주기

날벼락이란 게 바로 이런 것.

by 이향

체질상 마감 시간이 주어지는 일은 딱 질색이다.

뭐든 내가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짜인 일정 안에서 하나씩 차근히 진행하지 않으면 불안증세가 도지고 만다.


그 불안증세의 주된 증상 몇 가지.

명치가 아파오면서 소화가 되지 않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면서 화장실을 가야만 하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계속되는 화장실행으로 속은 쬐여가면서 점점 불편해지고, 먹는 족족 화장실을 가야 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이 상황이 지속되게 되면 결국에는 오른쪽 가슴이 뻐근하게 아파오면서 마치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과 같은 증상이 발현된다. 시간이 다가오면 그 증상이 점점 더 심해짐은 물론이다.


지난 6월 초 살고 있는 집주인으로부터 60일 안에 당장 집을 비워달란 요구의 연락을 받은 이후, 불안증세가 시작되었지만, 상황은 내 몸의 아우성을 들어줄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당장 이사 갈 집을 알아봐야 하고, 예상밖의 지출에 대한 계산을 꼼꼼히 따져야 하고, 그 무엇보다 15년간 살아온 집의 살림살이를 그대로 싸서 옮길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누구나 한 곳에 오래 머물면 짐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쯤은 누구나 아는 상식. 하지만, 짐을 정리하는 시간들은 버리는 것에 인색했던 나의 게으름과 무지함을 원망하고 또 원망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어찌 그리 많이 사서 쟁였는지, 그 많은 물건을 도대체 어쩌자고 구입한 것인지 끝도 없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밤마다 새벽 2-3시까지 박스를 싸고 또 싸고, 버릴 것들은 옆으로 미뤄놓고 도네이션 해야 할 것들을 따로 챙기고, 일생일대 이런 고행 이벤트가 따로 없었다.


나보다 더 버리지 못하는 게 지병인(ㅎㅎ), 함께 사는 둘째 아들은 나보다 상황이 더 심각했다. 분명히 지금보다 좁은 집으로 이사 갈 것이 분명한 일임에도, 어느 것 하나 버리지 못하겠다고 밤잠을 자지 않고 조몰락거리면서 짐을 싸는 아들과의 매일밤 언쟁도 나를 스트레스받게 하는 요인중 하나였음은 물론이다.

KakaoTalk_20250725_164324617.jpg 꼬물꼬물... 조물조물.. 반백년은 걸릴 아들의 이삿짐 싸기

그렇게 이사를 위한 준비는 시작되었고 믿을 수 없지만 결국은 끝이 났다. 뭐든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고 해법을 손에 쥘 수 있게 되는 법이라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자신이 없었었다. 그럼에도 한 달여 기간 동안 집을 구하고, 밤새 짐을 싸고, 이삿짐센터와 예약을 하고, 어마어마한 짐을 버리고 옮기고 풀고를 끝내 해내었다.


그 많은 시간은 오롯이 내손으로 해낸 일들이다. 작은 아들이 본인의 짐을 챙기는 수고를 하긴 했지만, 또래에 비해 말도 안 되게 몸이 작은 아들의 체력과 역량은 한계가 있는 법. 누구의 도움도 없이, 접시 한 장, 커피 머그컵 하나도 모두 내 손으로 직접 싸고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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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느라 진을 빼는 나를 위해 회사동료가 멋진 점심을 사주었다.

장하다 마징가 아줌마.

또 한 번 장한일을 해내었다.

나이 환갑 넘어 나 스스로가 믿지 못할 만큼 힘을 쓰고, 나 스스로를 밀어붙여 일을 마무리했다.

그래서 기록해 볼까 한다.


많이 고통스러웠지만 장한 나를 기억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