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부터 11월까지
파릇한 대학생 시절, 여느 대학생들이 그렇듯 나도 해외 배낭 여행을 꿈꿨다.
여행에는 돈이 많이 들테니.. 부모님께 손 벌리기 싫어 대학생이 된 후부터 용돈은 자체적으로 해결했던 나는, 방학 때마다 틈틈히 돈을 모았다. 과외도 2개씩 일주일에 3-4번을 뛰었고, 시청에서 한 달 동안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모은 돈은... 어쩌다보니 등록금에 보탬이 되었다. 씁쓸했지만, 별 수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샀던 세계지도는 고이고이 접어 버렸다.
배낭 여행도 가기 힘든데 어학연수나 교환학생은 뭐, 생각 조차 없었다.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오픽 점수를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내게, 이모가 도움의 손길을 건네왔다. "네가 사치부리지 않고 열심히 살아서 주는 선물이야." 그리고 스물 네살, 막학기를 앞두고 휴학을 지르고, 동생과 나는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왜 하필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지금은 워킹홀리데이가 가능한 나라가 다양해졌지만, 2012년에는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호주 또는 캐나다를 두고 고민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비자가 빨리 나오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과 나는 목적지를 캐나다, 토론토로 정했다.
1. 사용하는 언어가 미국식 영어에 가깝다는 것이 좋았고, 2. 성수기 비수기가 확실한 휴양지와 달리, 토론토는 캐나다에서 제일 큰 도시라 일자리가 다양하고 꾸준한 편이다. (동생과 나는 가난한 워홀러라 일자리가 중요한 고려 요소였다. 대부분의 워홀러들이 그럴 것.) 3. 또 미국과 가까워서 여행하기에도 좋겠다 싶었다.
- 실제로 토론토는 일자리가 다양한 편이었다.
한인타운도 핀치(Finch), 블루어(Bloor) 두 군데나 있고, 도심 속은 가게가 많아 영어가 좀 된다면 스타벅스 파트너 또는 서버나 바텐더 자리를 구할 수 있다. 도심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농장을 찾기도 수월하고, 영어가 조금 부족해도 팀홀튼 같은 프랜차이즈에서 샌드위치 메이커나 캐셔 등으로 일하기 좋다. 한인타운에도 일자리가 있긴 하지만, 별로 추천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2편에서 썰풀까 한다. 물론 2012년의 일이라,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 여행하기에도 좋다.
나는 몬트리올과 뉴욕을 여행했고, 동생은 뉴욕과 토론토 ~ 벤쿠버 ~ 토론토를 찍는 횡단여행을 떠났다. 동생은 오로라를 보기 위해 옐로나이프 여행도 계획했지만, 자금 사정으로 인해ㅠㅠ 아쉽게도 무산되었다.
스물네살, 토론토에 있던 그 시간들. 나는 그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캐나다에 막 도착한 5월, 나는 틈틈히 그 곳 구석구석을 걸어다녔다. 그 당시 걷고 있던 그 거리, 사람들, 이국적인 팻말과 건물들, 한국과는 전혀 다른 쨍쩅한 햇빛까지...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 모든 것들이 그리워질 거라는 걸,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평범한 일상 중 한 장면인 거리와 풍경들이 그렇게 사무치게 소중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바라던 '외국에서의 삶'이었기 때문일까.
매일 1km 이상 걸은 덕분인지, 그 땐 몸매도 예뻤고(...) 건강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하고 난 뒤, 퇴근 길에 한국과 다른 청명한 공기를 마시면 정신까지 맑아지는 것 같았다. 거대한 푸른 나무, 곳곳에 있는 크고 작은 정원들은 확실히 사람들의 삶과 마인드를 여유롭게 만든다. 도심 속 활기참과 열정, 다양한 인종과 언어, 놀라울 만큼 높은 시민의식, 다양한 커뮤니티, 일과 삶의 균형과 대자연... 캐나다 워킹홀리데이여서 경험할 수 있었던 것들이다.
동생이랑 같이 떠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여건상 나는 동생과 함께 캐나다로 떠났다. 혼자면 자유로우나 타지에서 의지할 곳이 적어 외롭고, 둘이면 든든하지만 다양한 면에서 양보와 배려가 필요했다. 특히,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고, 대학 때도 이모네 집이나 기숙사 생활, 혹은 자취를 했던 터라 많이 떨어져있다가 동생과 함께 지내는 게 힘들었다. 그래도 가족은 역시 가족, 자매는 역시 자매. 타지에서 의지할 곳은 서로뿐이었다.
나는 요리를 참 못했는데, 동생은 로컬 마켓에서 낯선 식재료로 요리하는 걸 즐겨했다. 대신 나는 청소를 꼼꼼하게 하는 편이었고... 그게 참 서로 고마워하고, 배려해주면 좋은데. '나만 맨날 요리하잖아' '나만 맨날 청소하잖아'가 되면서 힘들었다. 서로에게 '나만 더 열심히 해서 손해본다'라는 생각이 쌓이고, 그게 자주 폭발했다. 아무래도 낯선 외지에서 복작복작 살아가는 데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거겠지.
다행히 우린 척지지(?) 않고, 좀 더 철 든 지금은 서로에게 큰 버팀목이 되고 있다. ^^ (동생아, 보고있니?)
English School of Canada!
처음 3개월, 나와 동생은 서로 다른 어학원을 다녔다. 어차피 함께 지내게 될테니, 학원은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경험을 해보자! 로 뜻을 모았다. 또, 동생과 나의 '캐나다에서 어학원을 다니는 목적'은 조금 달랐다. 동생은 '경험', 나는 '언어'.. 자연스레 나는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커리큘럼을 찾아보고 학원을 결정했고, 동생은 쉬운 레벨의 그룹을 얼마나 지원하는지, 액티비티는 얼마나 다양한지 등을 살폈다.
동생과 함께 왔는데, 다른 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하면 다들 의아해하더라. 장단점이 있겠지만, 그 전략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서로의 친구들을 소개받기도 하고, 각 학원의 액티비티를 고루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 내 일본인 친구 사야는, 내 동생을 굉장히 좋아했다. (보고싶어, 사야!)
따뜻한 5월, 외국 친구들을 사귀고, 조금씩 영어 문장 만들기에 익숙해졌다. 2-3개 국어를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생각했었는데... 어느덧 나도, 하고 싶은 말을 머리로 떠올리고, 그것이 입 밖으로 나오는 데에 시간이 짧아져갔다.
그리고 준비해 온 돈이 떨어져가면서, 일자리 구하기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월세와 학원비의 지출 단위가 크기 때문에.. 나는 학원을 마치기 1달 전부터 이력서를 썼다. 일부는 유학원의 도움을 받기도 하던데, 나는 쬠 그랬다. (유학원을 잘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학생을 돈으로 보는 것 같아 나는 몇 번 다니다가 끊었다. ^^;) 오히려 어학원 선생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선생님과 친해지면 쉬는 시간에 이력서를 잠깐 봐주거나, 아니면 메일로 보내달라고도 했다. 이후에는 펜팔친구★가 되어 좋았다. 그 밖에 면접 TIP도 쏠쏠하게 받았다.
짧은 나의 경험상 워킹 홀리데이를 떠날 때, 초반에 어학원을 짧게나마 다녀보는 것을 추천한다. 1. 적응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고, 2. 언어도 확실히 늘릴 수 있고, 3. 이력서나 면접 코칭, 일자리가 많은 지역이나 현지 구인 사이트 정보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4. 그리고 누군가 도와주고 응원해준다는 사실이, 작은 것 같지만 정말 정말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동생과 나는 일자리 때문에 한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는데, 학원 친구들과 선생님이 자기 일처럼 생각해주고 응원해줬던 게 정말 큰 힘이 되더라. 일자리를 구했을 때, 내 일처럼 기뻐해줬던 그들의 진심이, 지금 생각해도 눈물나게 고맙다.
외국인 친구들 외에도, 친한 한국 친구들도 사귀었다. 간혹 외국인 친구만을 사귀길 고집하는 한국인들도 있었는데, 그러나 저러나 내겐 다들 소중한 친구들이 되었다. 문화적인 배경이 같다는 점이 꽤 끈끈한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더라. 외국에 살아보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들, 경험들이다.
특히,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도 아직까지 인연이 닿고 있고, 만나면 캐나다 이야기를 풀어내며 함께 그리워하고, 같은 장소와 기억을 공유할 수 있어 참 좋다. 멀리 부산에서 내 결혼식에 온 장호, 먼 부여에서 하는 초롱언니의 결혼식에 간 나... 모두 고맙고 고맙다. 언제쯤 우린 또 다시 모일 수 있을까.
-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