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학사전-세대
"집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다리이며, 시간을 담는 그릇이다. 할아버지의 흔적, 아버지의 숨결, 그리고 아들의 꿈이 한 지붕 아래 공존한다."
- 존 러스킨, 『건축의 일곱 등불』
사람들은 대부분 집을 현재형으로 바라본다. 지금 여기, 이 순간에 기능하는 공간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시간의 층위가 만들어진 측정할 수 없는 거대한 환경이다. 한 집 안에 여러 세대의 삶이 겹쳐져 있고, 그 겹침이 집에 가늠할 수 없는 깊이를 부여한다.
한국에서 집은 세대를 잇는 공간이 아니라 세대마다 새로 만들고 사고파는 소비재가 되었다. 오래된 아파트와 주택들은 재건축 대상이 되고, 집은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팔아서 현금화하는 자산이 되었다. 세대 간의 연속성이 끊어지고, 각자도생의 주거 문화가 자리 잡았다.
유럽의 오래된 주택가를 여행할 때면 참 인상적이었다. 몇 백 년 된 집에서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집은 여러 세대를 거쳐 가족에게 전해진다. 집의 외관은 보존하되 내부는 현대적으로 개조해서 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방식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런 문화를 가질 수 없다. 어차피 모두 재개발할 거라 생각하니까.
나는 종종 상상한다. 우리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 지금 집을 어떻게 기억할까? 거실 소파에서 뛰어놀던 기억, 부엌에서 나던 음식 냄새, 자기 방의 작은 책상. 이 모든 것들이 아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집은 그렇게 세대의 뿌리가 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집을 소유하기보다 경험하는 것으로 여긴다. 월세로 이 집 저 집을 옮겨 다니며 산다. 어쩌면 그것도 새로운 형태의 주거 문화일 수 있다. 하지만 세대를 잇는 집이 없다는 것은 뿌리가 없다는 것과 같지 않을까?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은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지지 않을까?
세대를 잇는다는 것은 단순히 집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다. 그 집에 담긴 가치관, 생활 방식, 가족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할머니가 부엌에서 요리하던 방식, 할아버지가 마루에 앉아 책 읽던 모습, 이런 일상의 기억들이 세대를 이어준다.
집은 세대를 담는 그릇이다. 한 세대의 삶이 끝나면 다음 세대가 이어받아 자신의 삶을 채워 넣는다. 그렇게 집은 계속 살아있다. 사람은 떠나도 집은 남고, 집이 남아있는 한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도 남는다.
다음 세대에게 어떤 집을 남겨주는 것이 좋은 것일까? 이제는 부동산 가치뿐만 아니라 정서적 의미와 가치가 담긴 우리의 집을 남겨야 할 필요가 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자연스레 독자생존의 길로 들어서고 있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돌아오고 싶은 집,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오고 싶은 집이 많이 남겨지면 좋겠다.
우리는 잠시 지금의 이 집을 빌려 쓰는 것이고, 내 아이들에게 또는 다음 세대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질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삶의 애정과 지혜도 함께 전해진다. 집은 그렇게 우리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