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학사전-작업실
"작업실은 영혼의 거처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자신과 마주한다."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군대를 제대하고 처음 독립한 집에서 처음으로 방 하나를 독립적인 작업실로 만들었다. 창가에 놓은 책상과 제도 책상, 그리고 낮고 긴 책장이 전부였지만 그곳은 온전히 나만의 세계였다. 그곳에서 나는 학생도, 전문가도, 누군가의 아들도 아닌 그저 '나'가 될 수 있었다. 도면을 그리고, 스케치를 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그 시간들이 진짜 나를 만들어갔다. 작업실은 단순히 일하는 공간이 아니라 자아를 구축하는 실험실이었다.
작업실과 서재는 다르다. 서재가 책과 함께 사색하는 곳이라면, 작업실은 손으로 무언가를 창조하는 곳이다. 건축가에게는 제도판과 모형 재료가, 화가에게는 이젤과 물감이, 작가에게는 원고지나 컴퓨터가 놓인 곳. 작업실은 생각이 구체적인 형태로 변하는 마법의 공간이다.
대학 시절 건축 스튜디오는 또 다른 형태의 작업실이었다.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도면을 그리고 모형을 만들었다. 각자의 책상은 각자의 세계였다. 누군가는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에서 작업했고, 누군가는 혼돈의 테이블 위에서 모형을 만들었다. 그 다양성이 서로에게 엄청난 자극제가 되었다.
작업실에는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몇 시간이 몇 분처럼 느껴지고, 어느새 해가 지고 밤이 온다. 이 몰입의 경험이야말로 작업실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작업실 밖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깊은 집중의 순간이다. 그래서 나의 작업실엔 긴 책상과 더불어 좌우가 막힌 도서실 책상 두 개가 더 놓여있다.
외국에서 예술가들 작업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암스테르담의 건축가 아틀리에, 런던의 디자이너 서재, 베니스의 예술가 스튜디오. 모두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주인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공간이라는 것. 작업실을 보면 그 사람의 본질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시간이 흘러 제도판은 노트북과 커다란 모니터로 바뀌었고, 줄지어 있는 낮은 책장 곁에 프린터와 플로터가 놓였다. 검색 한 번이면 되는 인터넷과 클릭하면 나오는 프린터가 있지만, 나는 여전히 물리적 작업을 고집한다.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는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작업실은 또한 성장의 공간이다. 몇 년 전 책장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스케치북을 오랜만에 펼쳐 보았다. 서툰 손놀림으로 그린 초기 드로잉들. 부끄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뿌듯했다. 내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작업실은 그렇게 시간을 기록한다.
작업실은 나를 만드는 세계다. 그곳에서 나는 끊임없이 분해되고 재조립된다.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고, 조금씩 나아진다. 작업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것이다. 작업실은 단순한 방이 아니라 나의 정체성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