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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지 Oct 21. 2024

언니의 죽음은 짙은 녹음

민아 - 1



눈뜨기보다 차라리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아침이 있다. 너무 외로울 때,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다고 실감할 때 특히 그렇다.


그러고 나면 반대로 오기가 생긴다. 이렇게 죽으면 아무도 모르잖아. 그건 싫어.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든 살아 보자고 다짐한다. 죽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모든 사람이 다 정말로 죽고 싶어서 죽음을 얘기하지는 않는다. 이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렇게는 말고, 더 제대로 살고 싶어서 그러기도 한다.


깨끗하게 리셋하고 새로 시작해 보고 싶은 마음에 충동적으로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버리는 사람도 있다. 내가 그렇듯이.


사실, 더 잘 살고 싶다는 뜻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또 마음 한구석에서 미안함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명백히, 대상이 있는 미안함이다.


언니는 죽고 싶지 않아했으니까. 너무나 살고 싶어했고, 마지막까지도 나와 함께 겨울이 지나면 나들이를 가자고 약속했으니까.

그런데 내가 이런 생각을 해 버리면, 언니에게 너무 미안하잖아….


박수희.

언니의 이름이다. 친언니는 아니다.


수희 언니는, 내가 열세 살일 때 이 세상에서 사라진 사람이다. 바로 그 병, 푸른곰팡이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건 내게 몹시 중요한 사실이다.


그리고 또 중요한 사실들이 있다.

수희 언니는 스물두 살의 나이까지도 아홉 살 어린 초등학생을 격 없이 대했던 사람이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늘 진심이 묻어나던 사람이다. 내게 언제나 다정하고 따뜻했던, 내 인생에서 단 하나뿐인 자매이다. 피가 섞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언니와 내 관계를 자매라고밖엔 할 수 없다.


‘박민아? 성이 나랑 같네.’


언니의 죽음은 짙은 녹음이다. 언니라는 나무를 내 삶에서 뿌리째 뽑아버리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을 그림자다. 매년 자라 더 크고 짙어지는 나무 그늘처럼, 매해 빈자리가 커지는 내 인생의 녹음이다. 조금 죄송하지만, 할아버지의 죽음보다도 더 그렇다. 할아버지는 결국 언젠가 돌아가실 거라고, 내가 예상한 순간보다 더 빨리 그때가 닥칠지도 모른다고 늘 마음의 준비를 해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니는 아니었다. 왜인지 모르게 난 언니가 평생 내 곁에 가까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직감은, 어떤 면에서는 제대로 들어맞은 셈이다.

죽었어도, 아니 죽었기에 오히려 더 선명하게 내 주위에 남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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