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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Feb 28. 2019

저마다의 독서법을 존중하며

끌리는 대로 읽는다!

글을 잘 쓰려면 평소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요?”     


글쓰기 강연을 하러 가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다. 방송작가로서 나는 “편식 없이 두루두루 읽으세요”라고 답한다. 평소 정기적으로 서점에 가서 어떤 책들이 베스트셀러인지 살펴보는 편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베스트셀러가 반드시 좋은 책을 뜻하진 않는 것 같다. 독자의 선택이 아니라 왠지 마케팅에 힘입어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른 것으로 보이는 책도 간혹 있다. 그래도 베스트셀러의 경향을 살피면 트렌드, 대중의 고민이나 취향, 욕구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회의 관심사를 포착해 작품을 만들고 글을 써야 하는 작가들에게는 유용한 팁을 제공한다.


나는 만화책이나 그림책도 열심히 보는 편이다.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TV 프로그램을 만들 때 글을 쓰면서 영상화시키는 훈련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서 그림이나 사진집이 도움이 된다. 간결하고 함축적인 글을 쓰고 감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시집, 이야기 구조를 익히기 위해서는 소설과 같은 문학 장르의 책들도 꾸준히 읽는다.

때에 따라서는 맡게 되는 방송 주제에 따라 읽는 책이 달라지기도 한다. 역사 다큐멘터리를 맡았다면 역사서들을, 음악프로그램을 맡았다면 대중 가요사나 팝 역사에 관한 책들을 가까이하며 연구한다. 방송작가의 책상 위에 놓인 책들만 봐도 어떤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항상 책을 가지고 다니는 나를 보고 지인들은 매번 그 책들을 완독 하는지, 바쁜 일상 중 책 읽을 시간이 나는지 질문하기도 한다.


나는 독서하는 시간을 따로 정해두지 않는다. 시시때때로 읽을 뿐이다."     


평소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편인데 일상의 흐름에 따라 읽는 책의 갈래가 다르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 카페에서 한 시간 정도 독서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집중력이 최고치일 때라 주로 지식을 쌓기 위한 책을 선택한다. 출근해서 업무를 보고 난 후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는 소설이나 시, 수필집을 즐겨 읽는다. 집으로 돌아와 나의 작업실이라 할 수 있는 서재에 앉으면, 작가와 연구자로서의 소양을 기르기 위해 전공 분야인 미디어 관련 책이나 글쓰기 책을 펼쳐 든다.


내가 책을 고르는 또 하나의 기준은 ‘무게’다. 평소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만물상처럼 가방에 갖가지 물건을 들고 다녀야 안심이 되는 성격이라 이동이 잦은 날에는 얇고 가벼운 책을 집는다. 내용이 단편적이거나 간결하게 구성된 편이어서 10분, 20분의 짧은 시간 동안 읽더라도 이해하는 데에 무리가 없다. 사무실이나 집에서는 상대적으로 두꺼운 책들을 읽게 된다. 분량이 길어 흐름을 끊지 않고 읽어야 이해가 쉬운 책들이 대부분이므로 몰입할 수 있는 환경에서 책을 펼친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지하철에서 새로 산 에세이집을 읽고 있었다. 20분쯤 가야 하는데 운 좋게 앉을자리가 생겨 내심 즐거워하며 책 읽기에 몰입했다. 책을 읽다 작가의 한 문장이 훅하고 가슴에 들어왔다. ‘어쩜 나하고 이렇게 비슷한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지’라고 공감하며 그 문장에 밑줄을 쭉 그었다. 그리고 내가 느낀 점과 (원고 집필을 위해) 연달아 떠오른 아이디어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간략하게 메모하던 중이었다. 옆자리에서 내가 책 읽는 모습을 힐끗 쳐다보시던 어르신이 말을 걸었다.     


“저기, 책 읽는 거 좋아하나 봐요? 지하철에서 책 읽는 거 보니 반갑네. 근데 말이야, 책을 왜 그리 험하게 봐요? 젊은 사람이 책을 아끼고 사랑해야지. 우리 집에 가면 한쪽 벽면이 다 책이야. 그런데 나나 우리 아이들은 워낙 책을 정갈하게 봐서 다 새 책 같아. 이왕이면 책을 좀 더 소중히 다루면 좋을 텐데.”


“아, 네”라고 소심하게 답하고 얼른 시선을 책으로 떨어뜨렸다. 다시 책 읽기에 몰입하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여전히 한 손에 펜을 들고 책을 읽는 나를 어르신은 이제 대놓고 쳐다보고 계셨기 때문이다. 결국 꿀 같았던 앉은자리를 포기하고 도망가듯 다른 칸으로 옮겨서야 읽던 구절을 마저 읽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낙서도 모자라 그 페이지를 접고 그림까지 그려 넣으면서.


나는 책을 꽤 험하게 보는 편이다. 거실 테이블에는 나의 책과 남편의 책이 뒤섞여 있는데 누구의 것인지 금방 구별할 수 있다. 남편은 지하철에서 만난 어르신처럼 책을 아끼는 마음이 커서, 소중히 다루고 싶은 책들은 비닐로 표지를 덧씌운다. 책 내지를 접거나 흘기듯 낙서를 해놓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혹시 줄을 그어야 할 일이 있으면 자를 가져와 문장 아래에 정확히 대고 선을 긋는다. 반면, 나의 책은 위에서 설명한 그대로다. 한술 더 떠서 나는 책의 끝부분인 면지 혹은 여백의 페이지로 구성된 맨 뒷장에 이 책을 선택한 동기와 읽고 난 후의 만족감, 책에서 배울 점 또는 작가에 관한 생각 등을 쓰기도 한다.


책을 다 읽고 덮으며 드는 날 것의 감정과 생각을 그 책의 제일 끝부분에 생생히 새겨 놓는 나만의 거친 독서록이라고나 할까."


물론 모든 책에 감상평을 써놓는 것은 아니다. 주로 공감이나 깨달음을 준 책에 펜을 든다. 누군가 나의 서재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고르라는 미션을 준다면 내겐 그리 어렵지 않을 듯하다. 책이 구겨져 있고, 낙서가 많고 심지어 책 마지막 장을 나의 필체로 가득 채워놓았다면 분명 감명 깊게 읽은 책이다.


가끔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고 싶어 펼쳐볼 때가 있다. 책의 내용과 함께 깨알같이 써놓은 메모를 읽으면 ‘그땐 내가 이런 고민을 했구나’, ‘이런 아이디어를 써놓다니’와 같이 과거의 나를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런 독서 습관의 단점도 있다. 중고서점에 책을 팔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책을 되팔아 재테크를 할 생각이 아닌 이상, 책을 계속 험하게 다룰 수밖에 없을 것이다. 책을 쓴 작가와 대화를 나누고 내가 글 속에 온전히 빠져들게 하는 독서 습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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