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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Nov 01. 2020

바라본다, 천천히 그리고 주위 깊게

관찰력

나 자신을 소재로 글쓰기를 할 때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르가 에세이다. 에세이 또는 수필은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을 일컫는다. 정해진 틀 없이 어떤 내용이라도 포용 가능한 그야말로 자유로운 글이다.

     

이런 설명에도 글쓰기 모임을 열고 첫 시간부터 에세이를 써보자는 제안을 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타인에게 읽힐 만한 근사한 체험을 한 적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그렇다면 에세이는 특별한 경함과 기억이 있는 사람들만 쓸 수 있는 것일까?


노벨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는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는 말했다.


 “작가에게는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경험과 관찰력, 상상력인데 그 셋 중에서 둘, 때로는 한 가지만 있으면 비록 다른 것이 약해도 보완할 수 있다.”    


 20년간 글밥을 먹으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이 명언에 살을 붙이자면, 그중에서도 가장 쉽게 키울 수 있는 능력은 관찰력이라고 본다. 학창 시절 미술 시간을 떠올려보자. 사과를 책상에 올려놓고 정물화를 그려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때 어떤 학생은 사과를 하나의 빨간 물감을 사용해 투박한 붓칠로 금세 완성하고, 또 어떤 학생은 빛과 각도에 따라 한 알의 사과를 그리는 데에 여러 색과 다양한 굵기의 붓을 사용한다. 바로 관찰력의 차이다.


글쓰기도 그렇다. 오늘도 지루하고 평범한 하루였다고 푸념해버리면 별다른 소재들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현관에서 우연히 본 아버지의 낡은 신발이나 화장대 앞에서 화장품 샘플을 열심히 흔들어 바닥까지 긁어모으는 어머니의 모습을 관찰하여 글로 묘사한다면 부모의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독자들과 진솔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내가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에서는 수강생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여 한 편의 이야기를 지어보는 시간이 있다. ‘나’를 소설이나 드라마에 나오는 등장인물이라 생각하고 인물의 특성을 보여주는 대사나 행동, 사건들을 풀어서 설명해 보는 기회를 갖는다. 이를 ‘자기 객관화’라 부를 수 있겠다. 자신을 객관화하기 위해서는 관찰이 필수인데, 외모나 행동에 관한 관찰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잊지 못할 사건이나 재미있는 상황이 일어났던 공간과 시간, 그때 느꼈던 감각과 감정까지도 제삼자를 바라보듯이 관찰하여 담담하게 글로 풀어써본다.

    

 예를 들어 ‘나의 성격은 소심해’가 아니라 ‘나라는 인물은 주위 사람들에게 부정적 평가를 받거나 외면받는 것이 두려워 자기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행동의 자신감이 떨어지는군.”하고 서술해 보는 식이다. 그러다 보면 “나라는 인물은 왜, 언제부터 사람들의 평가에 예민하게 됐을까?”라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자신의 마음 상태와 삶의 태도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하게 된다.     


관찰력을 바탕으로 한 글쓰기는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과거의 나와 이런 과거들이 쌓여서 만든 지금의 나를 되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미래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방향은 무엇인지도 조금씩 선명해진다.

     

물론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언어로 옮기는 과정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나’라는 미지의 여행지를 탐험하기 위해 단어와 문장이라는 멋진 도구가 이미 준비되어 있다. 처음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단어 하나, 문장 한 줄로 나를 표현해보자.


그러다 보면 에세이 쓰기를 통해 묵묵히 살아온 나의 삶을 위로하고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발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 누가 알겠는가. 내년 즈음에는 당신의 에세이집이 서점에서 반짝반짝 빛나며 독자들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시각의 변화는 우리가 인생을 바라보는 방식을 변화시킨다. 소소한 몇 가지 일상의 의미가 갑자기 명확하게 와닿고, 그것은 우리에게 의지할 수 있는 일종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만 같다."

 - 앤 라모트, <쓰기의 감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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