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주미 Jan 09. 2018

방송 편성을 결정짓는 기획안 쓰기

방송 관계자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2018년의 시작과 함께, 새해 편성을 기다리던 프로그램들이 하나, 둘 시청자들 앞에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군대를 다녀온 스타의 복귀 작품으로 기대를 모은 새 프로그램부터 앞선 시즌의 성공 요소를 강화해 시청자들을 매혹시킬 준비를 마친 시즌제 프로그램까지, 보다 다양한 즐거움을 맛볼 생각에 시청자들은 즐겁기만 하다.   


하지만 방송쟁이들에게 개편을 준비하는 시간은 일분일초가 피를 말리는 잔인한 시기다. 사실, 개편을 맞아 새롭게 선보이는 방송들은 치열한 내부 전쟁에서 이미 승리한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개편시기가 오기 전, 많은 PD와 작가들은 프로그램들을 기획하여 편성 책임자나 방송사에 구애를 펼친다. 자신들이 원하는 채널, 원하는 시간대에 편성을 받기 위해서다. 이때 방송사 내부에서는 물론이고, 동일 장르에서도 뭔가 특화된 부분들을 어필해야만 한다. 그러다 보니, PD와 방송작가들이 가장 공들이는 것이 기획안 작성이다.


현재 방송 현장에서 일하진 않지만,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 진행하는 방송 프로그램 지원 사업의 심사위원으로 참가할 기회는 지금도 종종 있다. 방송 제작비나 촬영 인프라를 지원해 줄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주된 기준이 바로, 기획안이다.


그럼 편성을 받기에, 혹은 지원금을 따내기에 유리한 기획안이 따로 있을까? 셀 수 없이 많은 기획안을 만들었던 창작자로서, 그리고 이제는 냉정한 눈으로 기획안을 분석해야하는 평가자로서 내가 생각하는 경쟁력 있는 기획안들을 추려 보았다. 그 기획안들 속 공통분모들을 모아 조언을 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획을 위한 큰 카테고리를 먼저 파악하라!"

방송사나 채널마다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또는 그 해에 방송국이나 기관 및 기업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도 있다. 새로 기획하는 프로그램들은 큰 틀에서 그 방향성을 따르는 것유리하다. 자신들의 비전과 지향점을 공유할 수 있고 프로그램으로 구체화시켜줄 기획안을 방송국과 기관, 기업들은 애타게 찾고 있다.


가령, 올해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어 올림픽의 가치나 동계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널리 퍼뜨릴 콘텐츠를 기다리는 방송사나 공공기관이 많다. 이번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고된 훈련기처럼 직접 관련이 있는 아이템부터 동계 스포츠나 눈을 체험해보지 못한 나라에서 온 이방인이 올림픽과 겨울 평창의 매력을 하나씩 알아가며 '우정'과 '이해'의 가치를 전달하는 프로그램까지, 작품이 마지막에 도달해야 할 메시지 방향이 정해져 있다면 기획안 작성은 훨씬 수월할 것이다.


둘째, 데이터를 분석해 소구력 있는 아이템을 찾아라!"

방송작가는 데이터 분석가가 되어야 한다. 능력 있는 빅데이터 분석가들은 수많은 자료들을 분류화하고 그 속에서 숨은 의미를 찾아낸다. 방송작가들은 새로운 방송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위해 발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서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코너와 베스트셀러들을 파악하고, 포털사이트 검색 순위들의 동향을 읽으며, 신문과 잡지에 실리는 주요 기사들을 챙겨본다. 이러한 과정은 결국엔 이 시대 대중들이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게 해준다.


예를 들어, 주변의 데이터들을 분석하고 분류한 결과 일상에 지치고 좌절감을 느끼는 현대인들이 누군가에게 위로와 격려를 받고 싶어 하는 욕망을 읽어냈다면, 당신은 방송 타깃을 보다 구체화할 수 있고, 더 소구력 있는 아이템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뻔한 아이템도 다채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라!"

방송 편성을 결정짓거나 도와줄 대상과 비전도 공유했고, 현대인들이 주목할 만한 아이템도 찾았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가진 방송쟁이들이 어디 나뿐이겠는가! 힐링, 치유, 요리, 인문학 등 주목받는 아이템들은 이미 방송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졌거나 다른 누군가가 기획을 마쳤을지 모른다. 이때 필요한 것이 차별화된 시각이다.


방송가에서 명언처럼 내려오는 말이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각’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오래전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지만 내 기억 속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작품이 있다. KBS에서 추석 특집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서울의 달밤>이다. 이 프로그램에 주목했던 이유는 추석 명절이면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고향’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중에서 단연 차별화된 시각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보통 명절의 고향을 떠올리면, 시골 고향집에서 자식들을 기다리는 노부부나 고향이 그리워도 가지 못하는 이산가족 등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에 관한 다큐멘터리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데 <서울의 달밤> 팀은 역발상으로 명절에도 고향에 가지 못하고 치열하고도 고단하게 서울살이를 살아내고 있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그래서 편의점 알바를 하느라 고향집에 가지 못하는 여대생, 고시원에서 공무원 준비를 하느라 명절을 건너뛰고 있는 고시생 등의 일상에 카메라를 들이댄 것이다. 고향을 떠나 학업생활이나 직장생활을 해본 시청자라면, 또한 그런 가족을 기다려 본 시청자라면 이 다큐멘터리에 쉽게 공감할 수 있다.


흔한 아이템을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법!

그것은 편견이나 고정된 시각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대상을 바로 보는 것에서 출발다.


마지막 네 번째, 무조건 구체적으로 써라!"

기획안을 심사할 때 기획안을 들고 온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그래서 구체적으로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평이다.


요리와 한류가 화제이니 요리로 일으키는 한류 바람을 콘셉트로 예능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데 인기 요리사들과 한류 스타들을 데리고 와서 어떤 영상을 만들겠다는 것인지, 기존의 프로그램들과 다른 지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할 수 없다면 그 기획안은 미완성작이다.


다시 말해, 프로그램명과 방송 형식은 물론이고 방송일시와 방송길이, 등장인물들까지 가상이라 하더라도 구체화시켜 기획안을 보면 한 편의 프로그램이 머릿속에 그려질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계획되어야 한다. 만약 매주 방송되는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면 1, 2회 정도는 구성안을 간략히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방송 관계자 모두가 참신하고 구체화된 기획안을 기다린다.


개편 시기에 선보이는 새로운 프로그램들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도깨비처럼 홀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다. 모두 이런 인고의 과정들을 거쳐 매력적인 기획안으로 인정받았기에 시청자들 앞에 등장한 것이다.


물론 좋은 기획안이 반드시 좋은 프로그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위에는 기획의도는 좋으나 몇 주 가지 않아 새벽이슬처럼 사라져 버리는 프로그램들이 무수히 많다. 하지만 방송작가들이 공을 들인 기획안은 적어도 제작과정에서 동료들이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준다는 사실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기획안은 기본적으로 방송 편성을 받기 위해, 즉 관계자들을 ‘설득’ 하기 위해 쓰는 글이기 때문이다."


설득 전략들이 창의적이고 구체적이라면 종이 위 글자뿐인 계획들이 어떻게 한 편의 작품으로 탄생하는지 그 과정을 직접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지 않겠는가. 편성을 결정짓는 방송사도, 제작에 도움을 줄 기관이나 기업도 결국, 시청자의 관심을 끌 콘텐츠를 두 팔 벌려 기다리고 있다. 시청자로서 내가 보고 싶은 작품인가, 지인들에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인가에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다면, 당신의 기획안은 이미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를 마친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