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먼저다!
한 회사의 인사담당자를 만났다.
최근 신입사원을 뽑았는데, 다른 해에 비해 마음에 드는 인재들이 많다고 자랑하였다. 제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좋은 인재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판단하느냐고 물었다. 뭔가 전문적이고 거창한 대답이 돌아올 것 같아 메모 준비까지 하면서.
그런데 그분의 대답이 의외로 간단했다. 출근 첫날, 질문을 들어보면 된다는 것이다. 회사나 부서의 특성을 설명하고 그들이 맡을 업무를 소개한 후 질문이 있으면 해보라고 권유한단다. 그때 수동적인 사원들은 질문하길 머뭇거리거나 평범한 질문을 던지는 반면,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들은 회사나 프로젝트의 핵심이 되는 질문, 본질을 꿰뚫는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상사가 질문을 하고, 대답을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판단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준비된 대답보다 준비되지 않은 짧은 질문에서 그 사람의 내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이 아니다. 좋은 대답은 성실히 준비하면 내놓을 수 있지만, 좋은 질문은 성실함뿐만 아니라 통찰력과 순발력까지 갖춰야 내놓을 수 있다. 인사담당자는 이번에 선배를 당혹하게 하거나 허를 찌르는 질문을 하는 신입사원들이 많아서 그들과 함께 일하게 될 날들이 기대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방송 스토리텔러들에게도 질문하는 능력은 꽤 중요하다. 특히 출연자나 전문가를 인터뷰 하면서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고수와 하수를 구분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당신도 스타들의 진솔한 대답을 이끌어내는 몇몇 유능한 인터뷰어들이 머릿속에 맴돌 것이다.
나 역시 방송 일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지금은 메이저리거가 된 야구선수부터 유명 정치인, 학식이 높은 교수, 그리고 공원에서 만난 어르신과 노숙자까지……. 직업도, 나이도, 살아가는 환경도 다양한 그들을 만나면서 인터뷰 내공도 조금씩 쌓여갔다. 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나름대로 터득한 인터뷰 요령은 다음과 같다.
하나, 라포(rapport)를 형성한 후 인터뷰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포는 상담이나 교육, 치료를 할 때, 심리적 교류를 나누는 친밀한 관계를 뜻한다. 상담이나 치료를 할 때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상호 협조가 중요하므로, 대상자와의 라포가 형성된 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라포를 형성하려면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 경험에 공감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인터뷰에 응용하면, 인터뷰어와 인터뷰 대상자가 심리적 교류를 나누는 관계가 되어야 솔직하고 깊이 있는 인터뷰가 가능해 지므로, 두 사람 사이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지난해 손석희 앵커와 가수 이효리 씨의 인터뷰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때 손석희 씨가 이효리 씨에게 제일 먼저 한 얘기는 오래전, 두 사람이 ‘100분 토론’과 ‘해피투게더’로 시청률 경쟁을 하던 사이라는 사실이었다. 목요일 밤 대중의 관심을 나눠가지던 사이라는 인연으로 라포를 형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라포 형성에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방송 작가 시절, 시사다큐 프로그램에서 '갱생보호공단'이란 곳을 취재했다. 교도소에서 나와 바로 사회로 복귀가 어려운 출소자들을 위해 지원을 하는 기관이었다. 이곳에서 몇몇 출소자들을 소개해주어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방문 첫날, 이들은 나의 눈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제작진의 방문을 귀찮게만 생각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일단 방송 아이템 순서를 바꾸어 좀 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리고 PD와 둘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추억의 간식거리나 새로 나온 소소한 생활용품들을 사서 찾아갔다. 추억의 간식거리를 먹으며 자연스레 어린 시절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신기한 생활용품의 쓰임새를 설명할 때는 서로 눈을 맞추어 주었다. 헤어질 때 그것들을 선물로 주면 고맙다며 손을 잡아주거나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몇 차례 방문으로 서로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가 되자,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있었고, 카메라로 촬영을 해도 거부감 없이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인터뷰 요령 둘, 사전조사는 많이 하면 할수록 좋다.
출소자들이나 노숙자들을 인터뷰하러 간다면 그전에 그들의 기본적 생활이 어떤지 정도는 미리 정보를 얻어서 가야 한다. 관련자들에게 전화로 문의를 해도 좋고, 자료를 찾아도 좋다. 그래야 인터뷰 대상자들이 어이없어하거나 불쾌해할 질문들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사전조사는 사실, 전문가들을 인터뷰할 때 더욱 필요하다. 만약 찬반 논쟁이 되는 이슈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묻는 인터뷰를 진행한다면, 적어도 그 사람의 입장이 무엇이고 대표적 주장은 무엇인지 정도는 파악하고 가야 한다. 그래야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역인재할당제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물으러 간다면, 그가 다른 매체를 통해서 의견을 피력한 적은 없는지 찾아본 후 질문지를 만들어간다. “지역할당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보다, “얼마 전, 지역인재 할당제에 관한 칼럼을 기고하면서 ‘역차별’이란 말을 쓰셨는데,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라는 질문이 보다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로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 덧붙여, 인터뷰를 성의 있게 준비해 왔다는 좋은 인상까지 줄 수 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라포도 형성했고 사전 정보도 충분히 찾아봤다면 이제 질문 구성에 공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인터뷰 요령 셋은, 질문의 순서를 대상자가 ‘하고 싶은 말’로 시작해서 우리가 ‘듣고 싶은 말’로 끝내자는 것이다.
만남 직후부터 너무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하면 인터뷰 대상자가 당황하거나 경직되기 쉽다. 특히 앞에 카메라를 설치해 두고 묻는다면 분위기는 더욱 삭막해진다. 그래서 가벼운 질문이나 대상자들이 평소 말하고 싶었던 내용을 물어보며 인터뷰의 물꼬를 트는 것이 좋다.
일례로, 상대방이 최근 어떤 변화를 꾀했다면 변화가 인상적이었다는 간단한 감상평과 함께 변화를 시도하게 된 이유 등을 질문하면 좋다. 소설가를 인터뷰한다면 가볍게는 헤어스타일의 변화나, 신상의 변화 등을 물어도 좋고, 보다 깊게는 최근 작품에서 달라진 점을 찾거나 신작에 대한 소개를 부탁해도 좋다. 이렇게 인터뷰 대상자의 마음의 빗장을 열었다면, 그다음부터 우리가 진짜 궁금하고 알고 싶지만, 인터뷰 대상자는 쉽게 말하기 어려울 질문을 꺼낼 수 있다. 잊지 말자! 좋은 인터뷰를 위해서는 충분한 예열이 필요하다.
끝으로, 말하는 사람이 흥이 나도록 돕는 리액션이 필요하다.
커뮤니케이션학에서는 언어 못지않게, 표정이나 신체의 움직임, 자세 등의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작가 시절, 장시간 인터뷰를 진행하고 나면 목이 결릴 때가 많았다. 당신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말하기 위해 계속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손으로는 그의 말을 메모했기 때문이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으로 맞장구를 치다 보면 인터뷰 대상자도 자신이 말하는 내용에 점점 몰입한다.
그런데 간혹 인터뷰를 하다 삼천포로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는 인터뷰 중 무례하게 말을 끊기보다는, 한 단락이 끝나 갈 즈음 지금까지 들은 대답 중 중요한 문장을 반복해서 말하거나, 되돌아가야 할 지점을 정리를 해준다. 예를 들어, “그러니까 이번 작품에서는 인간 내면의 이중성에 대해 얘기하고 싶으셨군요. 그런데 아까 하신 말씀 중에 주위 사람들에게 영감을 많이 받는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가 있을까요?” 등으로 인터뷰의 범위가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몰입하여 대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금까지 정리한 인터뷰에 관한 나만의 노하우들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본받고 싶은 인터뷰어들이 정말 많고, 그들이 보여주는 인터뷰 기법이나 질문 비법은 이보다 훨씬 훌륭하며 실용적이다. 하지만 그들과 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자신한다. 실전에서 좋은 질문, 좋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미리 많은 준비를 한다는 점이다.
인터뷰에서 좋은 질문을 던지는 비결은 상대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관심은 상대에 대한 예의와 배려를 전제한 것이어야 한다. 비록 사회적으로 비판받는 사람을 인터뷰하더라도, 그 사람의 언행에 대해 비판하는 질문은 할 수 있어도, 인격적으로 모욕감이나 수치심을 주는 질문을 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므로 누구를 만나든, 인터뷰 대상자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으나, 존중하는 마음으로 다가서야 비로소 마음을 여는 진짜 소통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