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이 글은 오직, 오랜 시간 내 곁에 머물며 삶의 순간들을 함께해 온 음반들을 소개하고 싶은 작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음악을 듣는 것은 마치 시간을 걷는 일과 닮았다.
어떤 곡은 지나가는 풍경처럼 스쳐 지나가지만,
어떤 곡은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때로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머물게 한다.
그러고서 내게 남은 것은, 사라지지 않는 단 하나의 순간 — 기억이다.
나는 꽤 오랫동안 클래식 음악을 들어왔다.
그 시작은 아마도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기억한다.
팝송이나 가요를 듣다가 이 곡을 접했을 때, 그 느낌은 뭐랄까? 참 묘했다.
마치 빛이 반짝이며 흐르는 강물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노래처럼 느껴졌다.
평온하면서도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졌고,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흐르고 흘러가는 과정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의, 그때의 감동은 아직도 선명하게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이렇게 시작된 클래식 음악 듣기는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던 그 시절, 그저 유명한 곡들을 찾아 듣고, 좋다 별로다. 뭐지? 모르겠다 이런 단순한 감정만 가졌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음악이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고, 그 속에는 나만의 이야기를, 나만의 느낌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춘기를 지나고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나는 여전히 클래식 음악을 옆에 두고 있다.
그 사이에 많은 곡들을 만났고, 몇몇 곡들은 내 마음을 지나쳤지만, 그중 일부는 내 안에 깊이 남아 있다.
마치 오래된 책갈피처럼,
언제 꺼내어도 그때의 감정과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내가 즐긴 수많은 곡들 중, 언제나 곁에 두고 싶은 7곡을 이야기하려 한다.
이 곡들은 소위 말하는 '역사적 명반'도 반드시 들어야 할 '필청 음반' 그런 것이 아니다.
곡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나 분석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나는 음악 전문가가 아니고 그냥 즐기고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내 취향에서 오랜 시간 내 곁에 머물며 삶의 순간들을 함께해 온 음반들을 소개하고 싶을 뿐이다.
* 바흐 푸가의 기법 – 끝없이 펼쳐진 길 위에서 네 개의 현(현자)이 만들어내는 질서와 자유, 그 완벽한 구조의 세계. 끝나지 않는 이야기 (Never Ending Story)
* 베토벤 교향곡 5번 – 어둠을 뚫고 나아가는 거대한 흐름, 끊임없이 펼쳐지는 강력한 의지의 진군.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9번 – 깊고 넓고,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절대 음악의 세계.
* 쇼팽 마주르카 49번 – 단순하지만 깊고, 끝없이 흔들리며 사라지는 가을 저녁의 흔적. 아련한 추억 속에 남아 있는 정서.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 도시의 화려한 빛 속에서 고독과 열정, 그 모든 감정이 뒤섞이며 피어나는 거대한 서사.
* 브루크너 교향곡 8번 – 산맥처럼 웅장한 공간 속에서 떠오르는 인간의 작은 숨결과 존재.
*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 빛이 반짝이며 흐르는 강물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노래.
이 7곡은 마치 나의 사춘기와 함께 시작된 여행처럼,
한 곡씩 내 삶 속으로 스며들어 지금도 여전히 나와 함께한다.
각 선율은 단지 음악이 아니라, 내 인생의 한 순간순간을 담고 있다.
그 순간을 다시 되돌리며, 나는 이 곡들의 나에게 가져다준 풍경을 하나씩 차례차례 풀어보고 싶다.
이 연재는 나와 음악이 함께한 긴 여정의 기록이다.
내가 사랑하는 선율이 어떻게 내 마음을 움직였는지를 담은 이야기이다.
나는 잔잔한 파도, 작은 평화가 사랑스럽다.
그저 그 음악이 내게 보여준 풍경과 일으킨 감정을 풀어내려는 작은 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내게 음악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뛰어넘어 그것은 나를 어떤 시간으로, 어떤 장소로 데려다 놓는 힘이다.
나는 그 시간이 어떤 모습일지, 내가 걸어온 길을 어떻게 펼쳐볼지 조금씩 이야기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