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7개의 선율 - 기억 1
J.S. BACH : Die Kunst der Fuge BWV 1080
바흐, 네 개의 현으로 엮은 영원의 대화 – 보르치아니 4중주단의 "푸가의 기법"
IV. 보르치아니 4중주의 연주 – 바흐의 대화를 새롭게 엮다
보르치아니 4중주단의 연주는 빛을 머금은 유리처럼 투명하면서도 따뜻했다.
네 개의 현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게 감싸며 공명하고, 각자의 흐름을 유지한 채 같은 공간에서 조화를 이루었다.
이전까지 들었던 피아노와 오르간의 푸가의 기법은 단정한 건반 위에서 차가운 대칭을 이루는 순수한 형태였다면, 파올로 보르치아니가 이끄는 현악 사중주가 그것을 연주하는 순간, 그 안에는 인간적인 숨결이 스며들었다.
바흐의 논리를 존중하면서도, 단 네 개의 악기만으로 완전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그 소리는 마치 익숙한 풍경을 전혀 다른 시간 속에서 다시 바라보는 듯했다.
선율이 겹겹이 쌓이며 빛을 머금은 유리창처럼 투명한 구조가 완성될 때, 나는 그 질서와 수학적 아름다움 앞에서 말을 잃었다.
4중주로 연주하는 푸가는 대화이다.
보르치아니 사중주의 연주는 푸가를 구조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살아 있는 대화로 만든다.
네 개의 현은 각자의 개성을 지니면서도 서로를 가로막지 않는다. 제1바이올린은 유려하게 혹은 날카롭게 주제를 이끌어가고, 첼로는 단순한 베이스가 아니라 깊은 사색을 담은 음성처럼 울린다.
한 성부가 속삭이면 다른 성부가 조용히 따라가고, 때로는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침묵 속에 머문다.
음악이 시작되면, 제1바이올린이 조용히 숨을 들이마시고 가느다란 빛줄기를 그린다. 제2바이올린이 그 뒤를 따르고, 비올라는 낮은 목소리로 균형을 맞추며, 첼로는 깊고 단단한 대지를 펼친다.
이렇게 첫 음이 울려 퍼지면, 바이올린이 단호하게 말을 걸고, 첼로가 응답하며, 비올라는 두 세계를 잇듯 흐른다.
네 개의 현이 엮여 하나의 길을 만들고, 그 길은 반복되지만 단 한 번도 같은 곳을 지나지 않는다.
한 마디가 나오면 또 다른 마디가 이어지고, 낯선 선율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겹쳐지고, 변형되며 마침내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간다.
그것은 건축이자, 바람이자, 물결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정교하게 짜놓은 직조(織造)의 세계.
첼로의 낮은 선율 위로 비올라가 흔들리는 그림자를 드리우고, 바이올린이 섬세한 선을 그리며 조용히 가라앉는다.
그 순간, 나는 바흐가 꿈꾸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논리의 엄격한 틀 속에서도 감정이 피어날 수 있음을, 질서와 자유가 하나로 녹아들 수 있음을.
건반 위에서 단단하게 조각되었던 선율이, 마치 인간의 음성처럼 흔들리며 살아 숨 쉬었다. 그것은 바람이 스치는 오래된 돌벽처럼 차갑고도 따뜻했다. 이 곡은 단순한 푸가의 기교적 연구가 아니라, 감각과 감정, 시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음악이 된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순간. 악보는 멈춘다.
바흐가 끝내 완성하지 못한 푸가는 어둠 속으로 스며든다.
그러나 보르치아니의 현악기는 그것을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놓아줄 뿐,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건축이 다시 다른 세기로 흘러가도록.
그러나 이상하게도, 음악은 여전히 흐르는 듯하다. 우리가 듣고, 느끼고, 상상하는 순간, 푸가는 끝없는 길을 따라 걸어간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또 다른 선율이 이어질 것만 같다.
나는 그 길 위에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V. 끝없이 열리는 문, 끝나지 않는 이야기 – 나는 그 미로에 매혹되었다.
내가 이 음반에 매료된 이유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끝없는 발견의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들을 때마다 처음 듣는 것처럼 신선하고, 익숙한 선율 속에서도 늘 새로운 표정을 발견한다.
같은 길을 지나지만 결코 같은 풍경을 마주하지 않고, 마치 미로 속에서 매번 다른 문을 열고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그 이유가 푸가라는 형식의 특성 때문인지, 보르치아니 4중주단의 유기적인 대화 때문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연주는 "끝나지 않는 이야기(Never Ending Story)"처럼 들려온다는 것이다.
푸가의 선율은 흐르다 멈추고, 다시 이어지며, 겹쳐지고, 변형되지만 완전히 닫히지 않는다.
이 음반을 들을 때마다 나는 또다시 새로운 문을 열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것이야말로 듣는 즐거움의 궁극이 아닐까?
바흐의 음악을 흔히 우주에 비유하곤 한다.
그리고 이 연주는 그 광활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들을 때마다 새로운 문이 열리고, 매번 다른 빛을 머금은 선율이 끝없이 공간을 확장한다.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을 때조차 하나의 질서가 되어 흐름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나를 느낀다.
1시간 50분 동안 음악 속을 헤매고 나오면 오히려 머릿속이 맑아지고, 길을 잃는 순간조차 기쁨이 된다.
나는 잃어버린 길을 찾고, 찾았던 길을 잃으며, 그 반복 속에서 더 깊이 빠져든다.
마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다가도, 어느 순간 미래로 우주여행을 하는 듯하다.
이것이야말로 이 연주가 줄 수 있는, 어쩌면 푸가의 기법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일 것이다.
언제나 처음처럼 다가오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길이 열린다.
많은 음악은 기승전결이 뚜렷하여 끝이 나지만, 이 음악은 악보가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울려 퍼진다.
닫힌 세계가 아니라, 열려 있는 세계.
바흐가 남긴 것은 하나의 결말이 아니라, 끝나지 않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VI. 그 미로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지금도 푸가의 기법을 들을 때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이 음반을 찾는다.
늘 곁에 두어야 할 음악.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무리 많은 연주를 만나도, 결국 나는 이곳으로 돌아온다.
처음 길을 잃었던 미로의 입구처럼, 내 안에 조용히 머무는 하나의 세계처럼.
이 음반을 들을 때마다 나는 길을 잃고, 다시 길을 찾는다.
그러나 그 방황조차도 음악의 일부가 되어 나를 감싼다.
소리는 흐르고, 시작과 끝의 경계는 흐려지며, 나는 그 안에서 자유로워진다.
듣는 순간이 가장 깊은 몰입, 가장 순수한 기쁨의 절정이다.
나는 이 곡을 사랑한다.
이 곡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이며, 철학이고, 삶이다.
그리고 그 미로 속에서 나는 기꺼이 길을 잃을 준비가 되어 있다.
바흐의 음악 중 단 하나를 고른다면, 망설임 없이 이 곡을 선택할 것이다.
푸가의 기법은 끝나지 않는 사유의 한 조각. 그리고 우리는 다시금 그 끝없는 대화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후에도 나는 피아노, 오르간, 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편성의 연주를 찾아가겠지만, 결국 내게 이 음반만큼 완벽한 것은 없을 것이다.
오르간이 그려낼 법한 장엄한 성당 대신, 이곳엔 가느다란 현이 만드는 투명한 첨탑이 있고,
피아노가 내리꽂는 단호한 그림자 대신, 네 개의 목소리가 서로를 물들이며 번져간다.
푸가의 실핏줄들이 천천히 얽히고, 풀리고, 다시 엮이며 끝없는 미로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미로엔 벽이 없다.
모든 길은 서로를 향해 열려 있다.
하나의 선율이 다가오면 또 다른 선율이 멀어지고, 떠난 음들은 뒤집혀 돌아오며, 마지막 문을 열고 나가면 다시 첫 번째 문이 기다리고 있다
1985년에 녹음된 이 실황 연주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네 개의 현이 엮어낸 시간의 결, 침묵과 울림이 만들어낸 숨결,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음악의 흐름.
그 소리는 멀리 스며들고, 바흐의 세계는 그 안에서 다시 태어난다.
이 음악은 닫힌 세계가 아니라, 끝없이 열리는 문.
나는 또다시 그 문을 열고, 그 미로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바흐가 남긴 마지막 수수께끼.
그가 끝맺지 않은 마지막 문장.
그러나 어쩌면, 그가 남긴 것은 하나의 ‘끝’이 아니라
끝없이 확장되는 공간,
들어가도 들어가도 닿을 수 없는
무한(無限)의 계단인지도 모른다.
그 길 위에서 나는 걸음을 멈출 수 없다.
음악은 나를 부르고,
네 개의 현이 엮인 길 끝에서
언제나 새로운 빛이 조용히 깃들고 있다.
이 곡을 들으면 가끔 생각나는 시가 있다.
음악이 흐르면, 소리는 단순한 울림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메아리가 된다.
우리는 음악과 시의 경계를 넘어간다.
김현승 – [묵상]
나는 이 세상에서 가야 할 길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한 길도 가보지 못한 듯이 돌아앉아
남모르는 서러움에 눈물을 흘린다.
나는 이 세상에서 만나야 할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한 듯이 돌아앉아
남모르는 서러움에 눈물을 흘린다.
나는 이 세상에서 사랑해야 할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한 사람도 사랑하지 못한 듯이 돌아앉아
남모르는 서러움에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막상 적고 보니 너무 심각하다. 곡에 대한 이야기도 어쩐지 너무 무거워졌다.
음악을 듣는 게 마치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음악은 그냥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즐기면 되는 건데,
다음 2편, 베토벤 운명에서는 조금 더 가볍게, 편안하게 적어봐야겠다...
음반 표지 및 내지
유뷰브 전곡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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