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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걷는 음악 : 바흐-푸가의 기법 1-1

연재 : 7개의 선율 - 기억 1.

by 헬리오스


내게 남은 것은, 사라지지 않는 단 하나의 순간—기억 1.


시간을 걷는 음악 - 언제나 곁에 두는 7개의 선율

바흐 : 푸가의 기법 (현악 사중주 버전, 파올로 보르치아니) : 1부


J.S. BACH : Die Kunst der Fuge BWV 1080

바흐, 네 개의 현으로 엮은 영원의 대화 – 보르치아니 4중주단의 "푸가의 기법"


박이도 – [소리]


나는 본다

보이지 않는 소리를 본다.

그 소리는 흰빛이다.

흰빛의 가시(可視) 너머,

나직한 생명의 울음을 본다.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산맥을 타고 흐르고

소리는 바람이 되어

대지를 적신다.


나는 듣는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는 맥박이다.

맥박의 울렁임 너머,

숨 쉬는 우주의 떨림을 듣는다.


I. 푸가의 기법 – 미완의 건축, 혹은 끝없는 사유


이 곡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끼는 클래식 음악 중 하나다.

바흐가 남긴 마지막 작품이자 미완으로 남겨진 이 음악은, 끝이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완전하다.

건축처럼 정교하면서도 공기처럼 자유롭다. 논리의 틀 속에서 감정이 피어난다.


300년 전, 1750년에 바흐는 이 곡을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푸가는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공중에 떠 있는 오로라처럼 끊임없이 다시 태어난다.

네 개의 현악기가 엮어내는 대화는 이 미완의 건축을 다시 세운다.

보르치아니 4중주단의 연주는 그러한 음악적 건축을 정교하게 조각한다.

차가운 수학적 질서는 그들의 손끝에서 인간적인 숨결로 바뀌고, 네 개의 현은 유리창을 통과하는 빛처럼 투명하면서도 따뜻하다.


푸가의 기법은 단순한 작곡 기법이 아니다.

그것은 사유이며, 구조이며, 균형과 비례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단 하나의 주제가 씨앗처럼 심어지고, 스스로를 복제하며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다. 반사되고, 늘어나고, 수축하며 얽히는 과정 속에서 질서는 탄생한다.

듣고 있으면 조각들이 맞춰지는 거대한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바라보는 듯하다.

빛을 받으면 각기 다른 색으로 빛나지만 결코 단절되지 않는다.

흐트러짐 없는 논리 속에서 음의 실타래는 끝없이 이어지고, 음악은 끝없는 미로처럼 우리의 감각을 감싼다.

정교하면서도 고요한 빛을 머금은 채, 바흐의 정신은 서서히 투명한 공기 속으로 스며든다.

차가운 악보 속 질서는 연주자의 손끝에서 인간적인 숨결로 변화한다.


피아노, 오르간, 오케스트라, 그리고 네 개의 현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울림 속에서, 이 음악은 세기를 지나며 끊임없이 다시 태어난다.



II. 우리에게 주는 감정 – 끝나지 않는 이야기(Never Ending Story)


나는 푸가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는 기쁨을 누린다.

그것은 거대한 미로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길, 엇갈리는 음형, 한 번 들어서면 다시는 같은 자리로 돌아갈 수 없는 구조.

그러나 그 미로는 폐쇄된 공간이 아니었다.

걸음을 옮길수록 길은 점점 넓어졌고, 때로는 천장이 사라지며 무한한 하늘이 펼쳐지기도 했다.


푸가의 기법은 음악의 경계를 시험하는 작품이다.

악기의 한계를 넘어, 형식과 구조를 초월하는 세계.

나는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그것이 ‘작곡된 음악’이라기보다 ‘발견된 세계’처럼 느껴졌다.

마치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기 위해 정밀한 공식을 세우는 과학자처럼, 바흐는 소리의 법칙을 풀어가면서도 그 안에서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누군가는 푸가에서 정교한 수학적 질서를 보지만, 나는 그 안에서 혼돈 속 질서를 찾아 헤매는 인간의 순수한 열망이 응축된 형상을 본다.

계산된 규칙이 아니라,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가는 소리의 흐름. 서로를 밀어내고 끌어당기며 끝없이 조화를 이루려는 선율의 몸짓을 본다.

이 곡은 치밀한 구조 속에서도 자유를 품는다.

길을 잃을 때 비로소 깊은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음악.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길을 따라가지만, 어느 순간 방향 감각을 잃고, 결국 그 안에서 길을 잃는다.

그러나 그 길을 잃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혼란 속에서도 질서는 존재하고, 방황 속에서도 음악은 계속된다.


바흐는 이 곡을 완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는 애초에 끝을 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미완성이라는 것은 단순히 결말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음악이 끝없이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그의 손을 떠난 후에도 이 곡은 흐르고, 우리가 듣는 순간마다 새로운 길을 만들어간다.


이 음악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네 개의 현이 엮어낸 바흐의 사유 속에서 우리는 고요한 기쁨, 깊은 애수,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인 평온을 마주한다. 한 성부가 독립적으로 흘러가다가 다른 성부와 얽히고, 다시 홀로 남는 흐름 속에서, 우리는 마치 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고독과 교감, 정돈과 혼란, 시작과 끝. 그러나 바흐의 마지막 푸가는 완결되지 않는다.

선율은 중단되었지만, 어딘가에서 여전히 흘러가고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나는 한 가지 감각에 사로잡힌다.

이것은 끝이 아니다.

바흐가 남긴 것은 미완이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이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의미를 찾는다.



III. 네 개의 현과의 첫 만남 – 피아노를 떠나 맞이한 새로운 세계


내가 바흐를 처음 만난 것은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80년대, LP 음반을 턴테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내리는 순간, 정적을 가르며 흐르는 첫 음이 내 안에 스며들었다.

그의 연주는 몽환적이면서도 맑고 단단했으며, 그 속에서 숨결이 느껴졌다. 나는 그곳에 매료되었다.

바흐라는 끝없는 우주의 문이 열린 듯했고, 나는 더 많은 바흐를 찾아 헤맸다.


그러다 우연히 푸가의 기법을 만났다.

처음엔 또 하나의 바흐 작품이라 여겼다. 그러나 곡의 웅장함과 정밀한 아름다움에 이끌려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쳄발로와 피아노, 발햐의 오르간, 칼 뮌힝거의 오케스트라 버전을 차례로 들으며 그 세계를 이해하려 애썼다.

그러나 음을 쌓고 구조를 따라가 보아도, 끝내 손이 닿지 않는 느낌이었다. 아름다웠지만, 무언가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은 사라진 명동의 디아파송 음반 가게에서 우연히 보르치아니 4중주단의 연주를 발견했다. 그리고 음반을 듣는 그 첫 순간, 나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들어섰다.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이 조용히 열리는 듯한 감각.

현이 떨리며 만들어내는 그 소리는 차가운 질서가 아니라 따뜻한 숨결이었다. 하나의 선율이 다른 선율과 맞닿고, 서로를 비추며 길을 만들어가는 소리.

단 네 개의 현만으로, 바흐가 꿈꾼 또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현악 사중주로 연주된 푸가의 기법은 피아노나 오르간과는 전혀 다른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피아노가 선을 분명히 그어 구조를 세우고, 오르간이 거대한 공간을 채운다면, 현악 사중주는 공기 속에 녹아들며 서서히 형체를 드러낸다.

손끝으로 만질 수 있는 견고한 건축물이 아니라, 안개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소리의 건축물이었다.


이렇게 피아노, 오르간, 현악 사중주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푸가의 기법을 풀어낸다.

피아노는 철학자의 독백처럼 투명하고 직설적이며, 오르간은 성당의 기둥처럼 웅장한 시간의 흔적을 쌓아간다. 그러나 현악 사중주는 다르다.

네 명의 현자가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듯, 서로 감싸 안고 때로는 논쟁을 벌이며,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유연하면서도 긴장과 균형을 잃지 않는다.


피아노처럼 단단하지 않고, 오르간처럼 거대하지 않다.

현악 사중주는 우리에게 더 가깝고 더 따뜻하다.

네 개의 악기가 각자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서로를 바라보고 손을 맞잡는다. 촘촘한 선율이 엮이며, 음악은 하나의 아름다운 문양을 만든다.

그래서 더욱 인간적이다.


이어서 2부에서...


https://brunch.co.kr/@brunchbluesky/63





음반 표지 및 내지


유뷰브 전곡 연주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qkqWRTmHEcUExO2Xl6iepO6yQ-Qdc-Cy&si=h_wO79OOh9nV_l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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