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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매이 Sep 20. 2024

IMF 때 실직자들이 북한산으로 간 이유

추석 연휴, 가족을 만나지 않았다

IMF 당시, 북한산과 관악산 등 서울과 그 주변 산은 양복 입은 등산객들로 매일 북적였다고 한다.

누군가는 가족에게 차마 실직을 알릴 수가 없어서, 또 누군가는 일없이 집안에 앉아 있을 수 없어서 기원과 공원, 도서관 그리고 산으로 향했다.

특히 북한산은 1998년 일사분기 방문객이 전년 대비 38.6%나 증가했을 정도였다. ( 출처: [IMF 등산객 급증으로 북한산 생태계 피해 막심]) 대중교통으로 접근 가능하니 편하기도 하겠지만 당시 국립공원이나 사찰 땅이 있는 유명한 산에선 입장료를 징수했는데 북한산이 비교적 저렴한 편이어서 더욱 인기가 많았다. 등산로 입구 가게에 등산복을 맡겨두고 출근 도장을 찍는 사람도 있고, 어떤 가게에선 양복에 구두 차림으로 산을 찾는 이들에게 장비 대여 서비스를 만들었다는 기사도 봤다. 사람이 늘어난 만큼, 동식물 무단 채취부터 실족사 등 사건 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 출처: [등반 실족사 잦다] )

1998.01.07. MBC 뉴스

저마다 속사정이야 다르겠지만, 양복 차림에 구두 신고 익숙지도 않은 산길을 오르던 그때 그 시절 실직자들 마음이 요즘은 좀 알 것도 같다. 지난번 브런치에서도 썼듯, 나도 비슷한 이유로 등산을 시작했으니까. ( 같이 보기: 걱정과 고도차를 두고 멀어지기)


내가 짐작하는 1998년 IMF 한파에 떠밀린 사람들이 북한산을 찾은 이유는 이랬다.


우선 등산은 시간이 잘 간다.

북한산이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꽤 품이 너르게 펼쳐져 있고 코스도 다양하다 보니 한나절 시간 보내기가 어렵지 않다. 사실 한국인의 기본 정서는 '불안'이라고 생각하는데 시간이 남을수록 불안은 장마철 곰팡이처럼 증식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니 실직자들은 잉여 시간을 빠르게 소비해야 한다. 


그리고 '정상을 오른다.' 는 목표가 있어서 좋다.

숨이 깔딱 넘어가는 오르막을 포기하지 않고 걸으면 누구나 다다를 수 있는 길의 끝. 경쟁 없이도, 불안에 스스로를 들볶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성취감은 한국 사회에서 참 귀하다.

산 아래에서는 일하며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쓸모없는 배경이 된 기분이었는데, 산에 오르면 높고 먼 자리에 서서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와 그 속에서 달리는 보통 사람들을 몰개성한 풍경으로 조망할 수 있다. 덕분에 열패감도 잠시나마 누그러진다.


무엇보다 건강해진다.

처음 한두 번은 근육통으로 고생하고 무릎도 쑤시지만 자주 가다 보면 허벅지도 단단해지고 오르기도 수월해진다. 건강은 단순히 몸의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신체를, 삶을 건전하게 잘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이 중요하다. 세상에 쓸모를 얻지 못한 실직자가 어디 가서 이만한 효능감을 맛보겠는가.


지난해 브런치에 인생이 힘들어 산에 오른다고 썼는데 그 이후로도 나아지기는커녕 보다시피 더 사정이 나빠지다 보니, 이번 추석 본가 방문은 포기했다. 대신 북한산을 올랐다. 마침, 연휴 기간에 내 생일도 있어서 그 기념이라며 등산메이트 바람이를 불러냈다. 이날은 숨은벽을 지나 백운대에 올랐다가 영봉을 거쳐 육모정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박수와 응원과 격려가 있던 추석연휴 북한산

며칠씩 편집실에 갇히는 일이 잦은 바람이는 요즘 체력이 부쩍 떨어져서 이미 등산로 초입부터 지쳐있었다. 밤골지킴터를 지나서 마당바위로 향하는 길목, 가파른 데크 계단을 오를 때 앞서 걷던 중년의 등산객이 헉헉대며 올라오는 우리를 보며 쉬었다 가라며 불렀다. 등산객들은 늘 입버릇처럼 "천천히 갑시다."한다. 급할 게 뭐 있냐, 다들 여기서 놀며 쉬며 걷는다며 제풀에 지친 이들을 다독인다. 나도 그 중년의 등산객과 같은 자리에 멈춰서 멀리 상장 능선을 구경하는척 하며 숨을 돌렸다. 그리고 최근 낙석으로 북한산 등산로 일부가 통제되어서 얼마나 답답한지, 한참 같이 아쉬워했다.


숨은벽의 암릉 코스는 꽤 아찔하다. 오르는 길도 그렇지만 큰 바위를 넘어서 골짜기로 내려갈 때는 쇠 난간에 의지해서 거의 수직의 바위를 밟고 내려가야 해서 더욱 당황스럽다. 남편과 함께 온 아내가 그 쇠 난간 앞에 서더니 "이건 뭐지? 명절에 시월드 개입 없이 이혼하는 방법인가."라며 농담을 했다. 그러면서 무섭지만 돌아보면 멋지다며 남편이 안내한 오늘 코스를 칭찬하기도 했다. 물론 내게 하산길을 물어보던 남편이 미련이 남는지 백운대까지 오르는 길은 어떠냐고 덧붙이자, 아내가 작작 하라고 막아섰지만.


부부를 지나쳐서 우리는 백운대로 향했다.

출발할 때는 정상부에 구름이 걸려있었는데 정오를 넘어서자 쾌청해졌다. 멀리 내려다 보이는 도시가 하늘에 물든 듯 푸르게 빛났다. 여기저기서 감탄이 끊이지 않았고 다들 뜻밖의 선물이라도 받은 듯 들떠 있었다. 처음 북한산을 찾은 아들이 힘들어 하자, 아버지는 여기도 보고 저기도 보라며 자꾸 붙들었다. 다들 쇠줄에 매달리듯 오르는 길이라 걸음이 더뎠지만 재촉하는 법 없이 다들 '천천히' '조심히'를 외쳤다. 부모 손을 잡고 올라온 너덧 살 쯤 된 아이를 향해 사람들은 손뼉까지 치며 격려했다.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고 염려하고 응원하고.

1998년, 산 아래에 자리를 잃어버린 이들에게도 백운대는 이런 곳이었을까.

그날, 왁자지껄한 행렬을 따라 정상으로 향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이 또한 실직자들이 산을 오르는 이유일 것이라고.


산 아래에선 왜 그게 어려울까, 는 생각도 했다.

적자생존이니 각자도생이니 반문명적인 말을 무슨 대단한 진리인 양 중얼거리면서 아주 평범한 사람들조차 한두 푼의 이익 앞에 기꺼이 비겁하고 비열하기를 택한다. 겨우 그 정도 깜냥밖에 되지 않는 업계 사람들의 면면이 스쳐 지나가는 한편, 내 얼굴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인정했다. 아무리 눌러보려 해도 신경이 곤두섰고 쉽게 주눅들고 쉽게 들뜨고 그러다 화가 났다.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하는지도 몰랐고 어쩌면 내가 불안하다는 것조차도 자각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쫓기고 있으니, 천천히 가자고 주변을 다독일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결국 그 치열한 의자 놀이에서 나도 이렇게 밀려나지 않았나.

240915 백운대 가는 길

백운대, 정상을 지나 다시 한참 내려가다가 그날 등산의 또 다른 목적이었던 영봉으로 향했다.

인수봉을 가장 아름다운 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는 영봉. 백운탐방지원센터, 그러니까 등산 날머리를 코 앞에 둔 하루재에서 다시 북쪽으로 꺾어 200미터를 급하게 올라가야 하는데 그 갈림길에 서면 '아, 그냥 내려갈까?'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길이 어디서 끝날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오래 망설이지 않고 성큼 한 발을 내딛었다.


영봉에서 육모정으로 하산하는 길은 북한산에서 가장 한산한 코스가 아닐까 싶다. 

다른 등산객도 없으니 내 걸음도 느려졌다. 몸을 돌려 멀어지는 봉우리를 다시 보고, 숲 내음을 큰 호흡으로 머금어 보기도 했다. 그렇게 산 아래에서는 걸을 수 없을 속도로 우리는 산을 넘었다.


육모정 하산길, 가을보다 일찍 떨어진 밤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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