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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매이 Sep 24. 2024

이제 한국이 싫어져서

경쟁, 자기 착취 그리고 같잖은 계급

해고 통보를 하면서 E국장은 말했다.

자신이 방송일을 오래 했는데 '이게'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싶다고.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도 했다.

그가 말한, '이것'이란 아마 작가를 갈아치우는 일일 것이다.

적당히 어르고 달래면 적당히 좋게 좋게, 나갈 거라 생각했겠지. 그런데 도무지 쉽게 나가지 않는 방송작가 하나 때문에 기어이 얼토당토않은 사유나마 구색을 갖춰 해고 통보서를 작성해야 했으니, E국장은 참 억울했던 모양이다. 해고당하는 사람을 앞에 앉혀놓고도 '힘들었다'며 탄식을 할 만큼.


마지막 출근일에 나는 본사 CP에게 내가 해고당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CP는 예의 온화한 웃음을 띠며 "다음에 좋은 데서 다시 만나면 되죠."라고 답했다.

내가 스스로 사직하는 것이 아니라 '해고'라고 했음에도 말이다. 만약 CP 자신이, 혹은 자신의 동료가 '해고'를 당했다고 해도 언젠가 좋은 데서 보자, 라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었을까. 해고당하면 해직 언론인이 되는 방송사 정규직과 사실상 해고라는 절차도 없이 '교체'되는 방송국의 프리랜서들은 마치 다른 계급 같다.


"쉽게 잘리는 게 싫으면 정규직 하지 그랬어요?" 라고 말하는 동료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어설프고 여전히 을에게 불리하지만 그래도 집필 계약서라는 걸 쓰고 일하게 된 것도 몇 년 되지 않았다, 그 계약서도 회사 측이 일하는 사람을 배려해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참지 않고 싸웠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크든 작든 우리를 보호하는 장치들은 거저 얻어진 것이 없다고 했지만 물론 아무도 듣지 않았다.


언젠가 방송국 정규직 피디가 최근 인사이동으로 팀에 인원이 늘었다고, 그들과 일감 나누기를 해야 할 참이라고 했다. 일이 없어도 자리가 있다니, 프리랜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세계였다.

또 언젠가는 또 다른 방송국 정규직 피디가, 두 개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제작하는, 소위 투잡을 뛰는 외주 제작사 소속 프리랜서의 제작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가 후회할 수도 있다."고 충고했다. 외주 제작 스태프가 받는 임금이 얼마인지, 그 임금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대체 이 사람들은, 한국 사회는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자본주의가 덜 중요한 일이라 임금을 적게 주는 것이 아니라 임금을 적게 주어서 그 일이 덜 중요하게 보이도록 만든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정성도 마찬가지 아닐까. 쉽게 자르고 교체할 수 있으니 마치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중요하지 않는, 임시직처럼 여겨진다. 정규직과 비교하면 그 밥그릇이 한없이 가벼워 보인다. 일부러 차이를 만들어 차별을 정당화한다.


한국 사회에서 정규직이 일종의 신분이고 계급이 되었다는 건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지만, 그래도 여긴 방송국인데, 소위 언론인인데, 스스로 '찍소리도 못 내는 힘없는 사람을 위해 대신 찍소리 내주는' 사람이라면서 자기 안의 모순은 이대로 모른 척해도 괜찮나.

회사의 공채를 통과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이렇게까지 인간에 대한 대우가 달라도 되는가. 해고 노동자 앞에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다음에 좋은 자리에서 만나자'라니.

뭐랄까, 동료 시민이라는 연결고리를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독문학자이자 교육개혁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김누리 교수의 책을 몇 권 읽었다.

시험으로 등수를 매기고 우열을 나누고 승자에겐 엘리트의 오만을, 패자에겐 열등감과 수치심을 안기는 한국 사회. 사유하는 법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각자도생이니 적자생존 같은 야만을 진리처럼 떠받든다.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를 읽다가 독일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해서 물었다. 정말 독일은 다르냐고.

친구는 한국으로 따지면 초등학교 5학년쯤 된 아이를 키우고 있다. 지난번 학교 종업식에 참석했다가 한 학생이 유급한다는 얘기를 들었단다. 쉬쉬하며 뒷담화처럼 전해 들은 것이 아니라, 담임교사가 학부모와 학생들이 모두 지켜보는 자리에서 "000은 함께 진급하지 않게 됐다. 헤어져서 아쉽지만 그래도 힘내라고 응원해 주자."라며 서로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독일에선 월반은 드물지만, 유급은 흔하다고 했다. 남과 비교하고 우열을 나누지 않으니 유급하는 아이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진급하는 아이들도 우쭐해하지 않는 독일의 학교. 한편 교사가 판단해 아이의 유급을 권해도 부모가 '아동학대'라며 교사의 멱살을 잡지 않는다는 점도 부러웠다.


듣다보니 더욱 한국이 싫어졌다.

사실 좋아한 적도 별로 없었던 것 같지만, 어차피 이곳에 계속 살 테니까 더 나빠지는 건 막고 싶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내가 이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건 어쩌면 좀 다행스러운 일이긴 한데 안타깝게도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우니 참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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