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자주 찾던 북한산 문수봉으로 향했다. 등산로에 툭 튀어나온 부러진 나무뿌리 위치까지 기억할 만큼 익숙한 길이었다. 그런데 그 산의 풍경이 일변해 있었다. 곳곳에 소나무의 가지가 부러지고 아예 몸통이 쪼개져 있기도 했다. 바닥에는 아직 푸른 솔잎이 융단처럼 깔려있었다.
얼마 전 내린 습설 때문이었다. 충분히 춥지 않은 겨울에 내리는 젖은 눈은 그만큼 더 무거워 적설량에 따라 구조물 붕괴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북한산에선 소나무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낙엽수는 겨울엔 잎을 떨구어 가지만 앙상하고, 상록침엽수는 대체로 곧게 자라니 눈이 쌓이는 면적이 비교적 적어 줄기가 부러지는 일은 드물지만 소나무는 다르다. 소나무는 극양수로, 햇볕을 찾아 줄기를 이리저리 비틀며 자라고 가지도 넓게 뻗는다. 그러다 보니 내리는 눈이 차곡차곡 쌓여 그 무게를 감당 못해 결국 부러지고 마는 것이다.
그토록 작고, 녹기 쉬운, 바람에 가벼이 날려온 젖은 눈송이가 바위틈에 뿌리내리고 수십 년 세월을 견딘 질기고 강인한 소나무의 허리를 기어이 부러뜨리고 만다.
가끔은 내가 그렇게 부러진 나무처럼 느껴진다.
작년 10월, 실업급여 수급을 위해 고용복지센터를 방문했다가 고용보험 상실코드가 26번이면 수급이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26번, 그중에서도 하위코드 1,2가 모두 기재되어 있다고 했다. 상당원도 이런 코드는 본인이 일하면서 처음 본다고 했고, 일단 센터에서 회사에 공문을 보내 구체적인 사유를 다시 확인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답을 받는데 최대 한 달 걸릴 수 있고 법적 강제력도 없기 때문에 답을 안 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회사에 직접 코드 수정해달라고 요청하는 게 더 빠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일단 공문을 보내달라고 하고 협회에 연락해 상황을 이야기하고 회사와 대화해 달라고도 부탁했다.
먼저 결론을 낸 건 고용복지센터였다. 회사로부터 공문에 대한 답변을 받은 공단은 그 내용을 검토한 결과, 실업급여 수급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회사에서 내 해고 사유를 뭐라고 써서 보냈냐고 물어봤지만 그건 알려줄 수가 없다고 했다.(왜?) 다만 공단에서 판단하는 기준이 있는데, 횡령 등으로 회사에 손해를 입히거나 업무와 관련해 형사처벌을 받았거나 또는 합당한 사유 없이 계속 결근하고 업무를 해태했거나… 내 해고 사유는 이에 해당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렇게 일 66,000원으로 책정된 첫 실업급여를 받고 다시 몇 주가 지난 뒤 협회에서 뜻밖의 연락이 왔다.
“작가님, 회사에서 상실코드를 수정했다고 합니다. 이제 실업급여 받으실 수 있어요.”
나는 황당했다.
“전 이미 받고 있는데요?“
이번엔 협회가 당황했다.
알고보니 협회가 방송사를 통해서 회사에 해당 사항을 문제 삼자 회사는 ‘국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고용보험 상실코드를 수정했습니다.’라고 방송사에 보고 했단
것이다. 하지만 상실코드는 수정되지 않았다. 내가 이런저런 경로로 이미 실업급여를 받고 있다고 전하자, 이번엔 ‘사실 코드는 수정하지 않았지만 고용복지센터에서 공문이 왔기에 거기에 좋은 말을 써줬습니다.’라고 말을 바꿨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작가, 이미 다른 데서 일 잘하고 있습니다.’라는 진짜 뿌리도 잎도 없는 거짓말을 덧붙였다는 것이다.
그래도 다들 그러려니, 했다.
고용복지공단도 협회도 방송사도, 회사가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저는요, 진짜 제가 후배들에게 모질고 갑질하는 사람이라 잘렸다면 마땅한 벌을 받은 것이라고 치자고요. 그런데 회사는 그렇게 절차도 없이 괴롭히고 손배 소송운운하고 거듭 거짓말을 하는데 왜 아무런 처벌도 제재도 없는 건가요?”
내 안에 쌓이는 이 감정을 [억울함]이라기엔 단어가 너무 작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그토록 눈금이 조밀한 자를 들이대고 변명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더니 어째서 그들의 부정은 가늠할 자가 없다는 듯 군단 말인가. 금세 뒤집히는 거짓도 다들 문제삼지 않았다. 죄가 아닌 힘의 경중으로 처벌받고 구원받는 걸까.
나는 이 글을 한낮의 통인동 도로 위에 앉아서 쓰고 있다.
동짓날 엄동설한 남태령에서 시민들이 지킨 농부의 트랙터가 씨 뿌릴 계절에 다시 한번 서울을 찾았고 경찰이 막아선 자리에서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12월 3일, 경기도 고양시의 집에서 택시를 타고 국회로 향할 때도 지금처럼 절망적이지 않았다. 소수의 광기를 제어할 국회와 시민, 사법 등 국가의 시스템은 멀쩡할 거라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해가 이토록 뜨거운 계절을 맞이하고도 아직 우리는 길 위에 있다.
그사이 내란 수괴는 풀려나 총 든 경호원이 지키는 요새로 돌아가고 헌재의 침묵이 길어지고 정치인에게, 경찰에게, 종교인에게 민주주의는 조롱당하고 있다.
법정에서 앞뒤 다른 말을 지껄여도 법 기술이라며 치켜세우는데 그게 정말 법을 잘 알아서인가, 법이 권력 앞에서 알아서 잘 기는 것은 아닌가.
정치가, 사법이, 공권력이 상대에 따라 이렇게 얼굴을 바꾸다니, 그동안 내가 지킨 법은 무엇인가.
억울하다는 말로도, 부당하다는 말로 담을 수 없는 경험이다.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뜨거운 것이 분노인 줄 알았는데 어쩐지 힘이 빠진다.
그리고 널리 같은 병을 앓는 사람들이 있다.
이건 [한]이라 불러야겠다.
나는 [한]이라는 단어를 즐겨 쓰진 않는다. [정의]를 자주 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너무 흔히 쓰여서 어쩐지 본래 뜻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스스로 정확하게 단어를 사용할 자신이 없기도 해서 그랬다.
하지만 이젠 알 것 같다. 과연 [한]은 사전이 아니라 몸으로 배우는 것이다.
마치 젖은 눈송이처럼 세상의 부조리는 가벼이 날려 어디로든 간다. 누군가는 처마 아래에서 눈을 피하고 또 누군가는 툴툴 털고 지나간다. 하지만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들의 등에는 부조리는 차곡차곡 쌓여 한이 된다.
힘 있는 이들에겐 하찮은 눈송이가 어째서 나에겐 이토록 무거운가. 젖은 눈의 무게를 짖눌린 소나무처럼, 두터운 한을 짊어지고 버티고 버티다 기어이 허리가 부러진다.
해고 이후, 내 삶이 폐허가 되었다는 울분이 밀려들 때마다 나는 장례식을 열었다.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수치도 후회도 모를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기만하더니, 결국 이렇게 조롱당하며 가네.’ 라거나 ‘살아생전엔 다들 뒷말만 했는데 죽고 나니 영정 건너에서 대놓고 욕하네.’ 또는 ‘욕심 사나운 인간에게 어울리게도 상갓집 분위기 참 적적하다.’는 식이다. 어차피 인간은 죽으니까 내 안에서 좀 이른 장례를 치루고 산 사람의 삶을 살고자 한다.
그리고 광장에 나갔다. 나만 억울한 것은 아니라고 위로받았다. 학내 성폭력으로부터 학생을 지키고자 나섰다가 해고당한 교사가 체포된 경찰서 앞을 지킬 때는 싸우지 못한 비겁한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광장에서 내 근심을 옆 자리의 낯 모를 사람의 등에 지우고 앞선 사람의 고통을 그도 몰래 덜어와 내 짐에 더한다.
그러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