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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1 : 프렌즈 앤 패밀리

NY #5. Lower East Side & Brooklyn

by 정동

"마이클, 잠깐 얘기 좀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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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나는 너를 우리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넌 나를 존경하지 않았어. 그건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

"... 지금 마피아 영화 리허설해요?"

"말대꾸하지말아봐... 그래, 최근에 했던 오디션에서 몇 줄 인용하긴 했는데, "

"원하는 게 뭐예요?"

"(에라 모르겠다) 내가 말하려는 건 이거야. 피비는 내게 너무 중요한 친구라구. 네가 그걸 확실히 알았으면 좋겠어 그뿐이야..."

"걱정마세요. 저는 피비를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절대 걱정하지 말아요."


- 드라마 <Friends> 中 마이클과 피비의 결혼식을 앞두고.




딱 하나의 장르로만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시트콤'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드 '프렌즈'나 '모던 패밀리'같은, 투닥거리면서도 끈끈한 사람들이 모여 좌충우돌하는 이야기. 거창하거나 화려한 일들은 거의 없지만, 충분히 감정과 사건의 굴곡을 겪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 - 무엇보다 언제든 유쾌한 엔딩으로 끝나는 장르.

고등학교 무렵쯤에야, 이런 내 성향이 영화 취향에도 고스란히 반영된 걸 느꼈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마구마구 많이 나오고, 그들끼리 지지고 볶는 영화를 나는 굉장히 좋아한다. 그래서 로맨스보다는 버디 무비, 즉 낭만적인 연인들 이야기보다도, 싸울 땐 웬수처럼 싸우다가도 점점 우애가 깊어지는 친구들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이런 성향이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건 머릿속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맨 처음 쓴 시나리오에는 주인공과 같은 반 옆반 선배 후배 등등 인물을 너무 많이 만들어 꼭 스토리가 미어터질 것만 같았다. 단편 시나리오에서도 마찬가지 - 더욱 효율적으로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갈등의 수와 인물의 수도 적을 수밖에 없는 단편 장르에서 친구를 떼로 등장시키다 보니 단편이 아닌 최소 중편의 시나리오로 발전되기 일쑤였다.


프렌즈 그리고 패밀리에 대한 로망이 어디서 왔나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영화를 보면서 어떤 끈끈한 공동체에 속하고 싶다는 욕망이 컸던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지금껏 로망에 백프로 일치되는 경험을 해본 적은 없다. 앞으로도 그런 건 없을 거라 기대하는 게 맞다고 본다. 그리고 그런 공동체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애써야 한다는 것도 나이를 먹어서야 깨달았다.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

그럼에도 가끔은, 정말 기적처럼 그런 순간이 오기도 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날 때, 별로 특별한 일이 없는데도 그저 하하호호 웃고 있으면 그때가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닐까, 그런 뿌듯함이 들 때가 있다.


어쨌거나 이런 로망과 가장 밀접한 기억을 갖고 있는 동네가 뉴욕에도 있다.


맨해튼 남부. 월가가 있는 파이낸셜 디스트릭트 바로 옆에 위치한 '로어 이스트 사이드(Lower East Side)'는 맨해튼에서도 유독 햇볕을 많이 받는 곳 같다. 당일 날씨가 쨍쨍하게 맑았던 탓도 있지만, 또 미드타운처럼 길쭉한 빌딩들이 없어 햇빛이 차단되지 않아서인 듯하다.

어린 시절 주머니에 동전을 가득 채우고,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서 동네 골목을 누비던 기억이 어쩐지 이곳에선 더 술술 풀린다. '바로 여기는구나'하고 나그네가 추억의 보따리를 푸는 느낌이다. 흔히 하는 맨해튼의 모습과는 다른, 다양한 문화가 섞여있는 곳임에도 오히려 살갑게 느껴지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 갖고 있는 골목의 냄새 때문일 것이다. 그 냄새는 내가 직접 맡은 냄새이기도 하며, 필름 속 '프렌즈'와 '패밀리'가 담고 있는 향긋하면서도 이상한 향기이기도 할 것이다.




1. 차이나타운(Chinatown)



인천 차이나타운과 달리 뉴욕 차이나타운은 ‘미국식 중국’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인천이야 관광을 테마로 잡다 보니 약간 과도히 중국 흉내를 내는 게 보이지만, 미국 차이나타운은 오랜 시간 사람들이 자연스레 살면서 만들어진 곳이다 보니 그냥 뉴욕식 소방 계단이 빼곡한 건물에, 한자 간판과 중국음식의 냄새가 풍겨 나오는 것뿐.

(여담이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뉴욕 건축의 대명사인 5-6층 갈색 건물과 지그재그 비상계단이 의외로 어떤 디자인과도 잘 어울리는 양식이란 생각도 들었다. 이를테면 흔히들 보는 유럽식 건물이 붉은 회등과 한자 간판과 어울릴 것 같진 않으니까.)


그래도 분위기가 분위기인 탓에, 롱 그레인 볶음밥에 칠리 소스를 비벼먹고, 걸쭉한 닭국물을 한사발 들이켜고 싶어 지기도 한다. 한편으론 거리를 걷다 보면, 어쩐지 <블레이드 러너>풍의 미래도시를 현재에 잠시 갖다 놓은 듯한 오묘한 느낌도 든다. 비록 <블레이드 러너>는 미래 LA를 배경으로 하지만, 서양과 (서양인의 시각으로 본) 동양의 모습이 섞여있는 모습을 독특하게 그려놓은 작품이니까.


하고 많은 영화 중 차이나타운 하면 떠오르는 영화는 <왓 어 걸 원츠>다. 차이나타운은 이 영화의 배경도 아니고 오프닝 시퀀스에 주인공이 자기소개를 할 때 아주 짤막하게 나온다. 영국 귀족인 아버지와 어머니는 신분 차이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어머니 홀로 주인공을 차이나타운에서 이웃들과 함께 키웠다는 것.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가는 것뿐인데, 차이나타운이 뭐하는 곳인지 참 집약적으로 이미지를 드러낸 것 같다. 맥락만 봐도 차이나타운은 뉴욕이란 대도시 속 이방인(그중에서도 동양인)이 가득한, 좀 가난한 동네를 상징하는 데 쓰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린 나이에 이 영화를 보면서도 서양인들이 이 동네를 그닥 긍정적으로 보진 않는다고 느꼈던 것 같다.


또 하나의 단순한 설정을 살펴보자면 이번엔 홍콩 누아르의 대표작 <영웅본색>을 들 수 있겠다. 본편이 아니라 속편에서 주윤발이 연기한 마크의 (역시나 주윤발이 연기한) 쌍둥이 동생 켄이 중식당을 운영하는 곳은 뉴욕 차이나타운이다. 식당에 들어와서 괜한 시비를 거는 외국 조폭들과 기싸움을 하고, 결국 제압해버리는 모습이 어찌나 멋지던지.

한때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유행했을 때 등장인물들이 <영웅본색>에 열광하는 모습이 그려져 386세대의 향수를 자극했었다. 내가 <영웅본색>을 본 것은 그로부터도 1년이 넘어서였다. 적당히 재미있는 킬링타임 무비겠거니 했는데 예상외로 흠뻑 취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후에 한 번 더 얘기할 테지만, 7-80년대 영화는 묘하게 쌈마이 같으면서도 자꾸만 보고 싶은 사골국같은 매력이 있다. 깔끔한 리마스터링보다 거친 입자가 살아있는 필름 버전이 훨씬 더 끌리는 그런 작품. 도시 뒷골목에 불을 피워놓고 바라보는 푸른 저녁 하늘 같은 매력(?)이라고나 할까.



<영웅본색> 하면 떠오르는건 역시 우정이다. 형제애와 의리의 낭만을 보여주는 데 이만한 영화는 또 없을 것이다. 2편에서 동생 '아걸'(장국영 扮)의 복수를 위해 형 송자호과 켄, 용사 셋이 의기투합해 싸우는 모습을 보면 꼭 국이 펄펄 끓어오르는 광경을 보는 것 같다. 특히 1편에서도 감탄했지만 역시나 2편에서도 멋있는 주윤발의 눈빛은 뉴욕에서든 홍콩에서든 어디서나 강렬하다.

마크가 죽은 1편이 안타까워, 2편에서만큼은 세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남는 해피엔딩이라고 아직도 믿고 있다.




2. 리틀 이탈리(Little Italy)



리틀 이탈리는 꼭 가보고픈 곳 중 하나였는데, 시간이 없어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다. 뉴욕에 여행 간다고 하니, 뉴욕 피자 한번 먹고 후기를 들려달라던 지인의 부탁을 본의 아니게 거절하게 된 셈이었다. 뜻밖에 발견한 테너먼트 뮤지엄(Tenement Museum)이 머릿속 피자와 파스타를 밀쳐낸 탓이다.


오차드 거리(Orchard Street)에 가면 옛날 이민자들이 살던 건물에 특별한 표시를 해놓은 곳이 있다기에 잠시 들렀는데, 알고 보니 아예 박물관이었다. 박물관도 일부러 관광객 노려서 했다는 생각은 안 들 정도로 굉장히 알찬 곳이었다. 뉴욕에 온 이민자들을 다룬 책과 자료들이 가득했고, 2층부터는 그때 당시 사람들이 살던 그대로 방을 꾸며놓아 구경할 수 있게 해 놓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가 간 날이 전시 휴관일. 나는 1층에서 무료 상영하는 다큐멘터리를 한참 보다 나왔다.



<대부> 3부작이나 <좋은친구들>과 같은 마피아 영화를 통해서만 이탈리아계, 혹은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접했기 때문에, 사실 다른 문화권의 이민자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는 잘 모른다. 사실 엘리스 섬 이민자 박물관에 대한 첫인상도 온통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의 느낌이었다. <대부 2>에서 비토 콜리오네가 어릴 적 혈혈단신 뉴욕에 들어오는 장면이 대표적이었다.

그래서 어쩐지 뉴욕 안 이탈리아는 무서워 보인다. 중절모를 눌러쓴 채, 긴 코트자락을 휘날리며 포드차에 올라타는 마피아의 모습이 떠오른다. 입에는 으레 엄지손가락만 한 두께의 시가를 물고 있는 마피아들. ‘마피아’라는 컴퓨터 게임을 한 적이 있는데, 전쟁이 끝나자 사촌들이 사는 뉴욕으로 온 주인공은 돈이 필요해서 검은 세계에 발을 디디고 점차 스케일이 큰 범죄에 손을 대며 거물 마피아로 성장하는 이야기였다. 미션보다 게임 속 뉴욕을 걷는 게 더 재밌었던 거 같다.

<대부>에서 마피아들은 자기 조직을 '패밀리'라 일컫는다. 마이클 콜리오네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것도 결국 '패밀리'다.

하지만 그 패밀리를 죽이기 위해 친형을 죽였을 때, 그가 지키려고 했던 '패밀리'의 모순은 극에 달한다. 그가 지키려고 했던 것은 그와 핏줄을 나눈 진짜 가족이 아니라, 아버지 비토 때부터 내려오던 생존과 폭력의 질서에 다름 아니었다.



<좋은 친구들>도 비슷한 맥락이다. 서로 없이 죽고 못 사는 마피아 '친구들'이 나중엔 죽고 죽이는 관계가 되는 게 이 영화의 핵이다. 하기사 자기 가족도 죽이는 판국인데, 암흑세계에서 우정을 다진 이들이 어느 한순간 생존을 위해 죽고 죽이는 스토리는 대부에 비하면 양반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마피아들만 이처럼 극악무도한 것일까? 원래 악한 조폭들에게만 그런 이율배반이 가능할까?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진짜 가족과 친구 사이에도 이런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단지, 중절모와 코트 깃을 내세운 흥미로운 스토리 속에 그 진실을 숨겨놓고 있을 뿐이다.

<대부> 시리즈를 보며 나는 격조있으면서도 고급지고 또 한편으론 험악하기도 한 이 작품에 그저 ‘잘 만들었다’는 감탄만 했던 것 같다. 영화라는 매체가 한 인간의 내면을 얼마든지 섬세하고도 깊이 있게 그려낼 수 있는가를 깨닫게도 해주었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찾아 외치는 '가족'과 '패밀리' 사이의 균열을 치밀하게 탐구했다는 점에서 이토록 오랫동안 관객들에게 호소할 수 있었다고 본다. 이처럼 냉정하며, 끔찍할 수 있는 것이 '패밀리'라는 것을 이 영화는 말해준다.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뒷골목은 '가족'을 뉴욕에 뿌리내리게 한 곳이지만, 또 한편으론 <대부>와 같은 작품들 속에서 '가족'에 대해 끝없는 회의를 품게 하기도 한 동네이기도 하다.



차이나타운, 리틀 이탈리를 차례로 보다 보니 드는 생각이 있다. 서울을 비롯해 런던이나 파리 등등 대도시는 물론 다양한 문화와 인간 군상이 모여드는 곳이다. 홍등과 이탈리아의 벽돌을 떠올리게 하는 로어 이스트 사이드 그리고 리틀 이탈리는 붉다. 저 멀리 끈끈한 가족문화 없으면 시체인 두 문화권에서 온 이들은 뉴욕 복판에 '가족'을 뿌리내리려 했다. 그렇기에 그곳엔 땀이 있고, 또 마찬가지로 피도 흘렀나 보다.





3. 브루클린(Brookyln)



이번 뉴욕 여행에서 손꼽는 풍경이 있다면, 그건 맨해튼에서 브루클린으로 넘어가는 혹은 그 반대로 향하는 교각에서의 풍경이다. 한강철교에서 서울 풍경을 보듯, 맨해튼 브릿지에서도 전철을 타고 주변 풍경을 볼 수 있는데... 덜컹이는 열차 소리와 함께 푸른 강물과 뉴욕식 건물의 전경이 드러나는 그 순간은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듯 시원하면서도 평온했다. 사진을 찍어두지 않은 게 아쉬울 따름이다.


이스트 리버를 사이에 두고, 맨해튼 남부 로어 이스트 사이드와 마주하는 뉴욕 주(州)의 또 다른 자치구 브루클린. 이름을 발음할 때마다 꼭 브라우니에 작은 크림쿠키 하나를 얹어 깨무는 듯한 느낌이 드는 동네. 첼시와 트라이베카, 로어 이스트 사이드 그리고 이스트 빌리지 등 뉴욕 남부의 힙한 인디 예술가들이 새로이 정착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 윌리엄스버그 공연장에서 라이브 공연을 급히 예매하려 했지만 표가 동나 결국 가지 못했다.


그러나 사실대로 말하자. ESB를 킹콩 때문에 갔다면, 브루클린은 이 영화 때문에 갔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장장 3시간에 달하는 작품이다. 이에 30분이 더해진 것이 감독판이다.


영화는 누들스라는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나가며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어릴 적부터 동고동락하던, 맥스를 비롯한 절친들을 전부 잃은 청년 누들스는 잠시 뉴욕을 떠나고, 쉰 살이 훌쩍 넘어서야 돌아온다. 돌아온 뉴욕에서 맥스와의 어릴 적을 회상하고, 그의 죽음에 대해 곱씹어보는 게 영화의 줄거리다.


브루클린에서 자란 누들스와 맥스 그리고 세 친구들. 이중 가장 키가 작았던 친구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누들스는 결국 감옥에 들어간다. 오랜 복역 기간을 마치고 다시 사회로 나온 누들스. 먹고사는 문제에 부딪친 그에게 맥스가 암암리에 몇 가지 일을 주는데, 점점 깊이 들어갈수록 갱단이 할만한 소름 끼치는 일들 투성이다. 지하세계에 발디딘 누들스는 결국엔 빠져나올 수 없는 지경이 되고, 결국엔 친구들을 몽땅 잃게 된 것이다.


이 영화 초반부, 뉴욕에 돌아오는 장면에 흐르는 비틀즈의 'Yesterday'는 원곡과 다른 버전이지만 그만큼 애달픈 느낌을 전해준다. 아마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Main theme' 만큼이나 이 영화의 감성을 대변해주는 곡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 영화의 결말까지 치달으면, 과거에 대한 향수와 친구와의 우정이 얼마나 처절히 배반당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될 뿐이다. 그래서 전반부의 'Yesterday'는, 친구의 진실을 아직은 모르는 누들스의 시선에서 바라본 추억의 마지막 향기일 뿐이다.



그러나 친구 사이의 신뢰가 있고 없음이나, 아예 친구 자체가 있고 없음이 문제를 일으키는 건 아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드러낸 문제는, 너와 내가 기억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의 문제다.

한참을 흘러 맥스가 사실은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누들스는 자신을 속인 맥스를 이해할 수도 없었지만 더 괴로웠던 건 함께 했던 과거를 맥스가 다르게 느꼈다는 것이다. 누가 진실을 쥐고 있느냐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너와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 무엇이 삶에서 중요하고 매 순간 무엇을 느끼며 살았는지가 - 달랐다는 것,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패밀리 맨>처럼 평범한 미국 가정의, 보통의 가족애를 그려내는 작품이 아닌,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프렌즈'와 '패밀리'를 생각하게 됐다. 굳이 이럴 필요는 없다. 슈트와 선글라스, 칼과 총을 써야만 이들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이런 엉뚱한 상념은 반쯤은 이야기적 낭만이고, 영화적 로망이며 이미지에서 비롯됐다.

그럼에도 위 작품들이 다른 가족 친구 스토리와 다른 것은 무얼까. 그건 배경의 힘일 것이다. 애초에 뉴욕이 떡갈나무 뿌리 같은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도시도 아니요, 그렇기에 증증증조부 격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는건 힘들기 짝이 없는 젊은 도시라는 점이 그에 한몫할 것이다. 뉴욕은 갓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시였다. 다른 깊은 토양 속 수백년 뿌리박고 있던 '가족' 문화는 이런 맨들맨들한 땅에 갑자기 나타나게 되었다.


'가족'이란 꽃밭이 아니라 황무지에 놓였을 때 그 제대로된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뉴욕에 있는 이민자들이 얘기하는 '프렌즈' 그리고 '패밀리'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끈끈한 무언가의 허전함을 발견하고, 가장 공허한 무언가에서 끈끈함을 찾아내는 그런 미스터리한 도시는 여기말고 또 없을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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