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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뉴욕의 바다

NY #5-2. Brooklyn Bridge Park

by 정동

바다의 색을 살펴보게 된건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시라노:연애조작단>을 보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 속초바다랑 강릉바다랑 색깔 다른 거 알아?
속초바다가 코럴블루라면 강릉바다는 코발트블루. "
" 다 파란색이네 "

" 속초바다가 맑은 청색이라면 강릉바다는 탁한 청색? "
" 에이, 바다는 색이 없지. 너 기분에 따라 그렇게 보이는거지.

너 직장 생활 할 때 좋은 기억이 없어서 그렇게보였나본데, 한국가면 나랑 꼭 같이 가보자.

아마, 강릉바다가 다르게보일걸? "


이 대사를 듣고, 매년 외갓집이 있어 찾아간 강릉 바다의 색을 처음으로 살펴보게 되었다. 내가 본 색이 그냥 블루인지 코발트블루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 이후 강과 바다만 가면 자연스레 어떤 색으로 출렁이는지 살펴보는게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프랑스 남부의 세 도시(니스, 칸느, 마르세유)를 여행하면서 세 도시 바다색이 전부 다르다는걸 내 눈으로 확인한 순간에야 - 모든 바다에는 자기만의 색이 있다는걸 확실히 깨달았다.

영화에선 내 기분에 따라 색이 바뀐다지만, 그 이전에 바다는 분명 자기의 색을 갖고 있는게 틀림없다. 어떤 바다는, 온 세상이 단 1초라도 전부 그 색이길 바라는 마음이 들게 만든다. 바다는 결국 물이기에,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그 위에 드러누워볼 수 없다는게 아쉬울 정도로.


맨해튼을 두번째로 밟은 날, 이 도시의 물색깔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파이낸셜 디스트릭트를 걸었다가, 베트남전 참전 용사비 근처까지 걸어가니 이스트 리버가 한 눈에 선명히 보였다. 그땐 아직 뉴욕 이틀차였던지라, 저멀리 브루클린교가 가짜 미니어처 모형처럼 느껴진 때였다.



주위 건물들의 그림자에 가려진 뉴욕의 물 색깔은 이랬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물 색깔인, 탁한 푸른색에 녹색과 회색이 간간이 섞인 물 색깔일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짙은 청색이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유독 날씨가 좋은 이날, 이스트 리버는 묵직하면서도 세찬 물결로 흐르고 있었다.




두번째로 바다색을 유심히 살펴본 곳은 이와는 반대편, 브루클린 브릿지 파크에서였다.


브루클린에서 맨해튼을 바라볼 때 하늘은 이미 짙푸른 색으로 가득찼었다. 마치 해가 아니라 하늘 전체가 바다에 잠기는 것처럼, 도시는 조용히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 도시에 오기 전, 플레이리스트만 무려 50곡을 담아놨었는데 정작 그 절반도 맨해튼 위에서 듣질 못했다. 게중엔 그 유명한 'Empire State of Mind'도 있다.


"In New York,
Concrete jungle where dreams are made of
There's nothin' you can't do
Now you're in New York
These streets will make you feel brand new
Big lights will inspire you
Let's hear it for New York, New York, New York"


ESB 전망대에서의 부각과, 브루클린 덤보(Dumbo)에서 바라본 평각의 차이는 무얼까. 그것은 가사에 나오는 'Concrete jungle'을 위에서 바라보는 것과, 같은 높이에서 바라보는 것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각에서보다는 평각에서 볼때야, 맨해튼은 비로소 콘크리트로 된 정글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바다의 색을 확인한건, 이 도시를 떠난 마지막 날이다. 화가가 점점 그림을 덧칠해가듯, 첫날부터 시간이 지나면서 뉴욕의 하늘에도 구름이 점점 더 많이 피어났다. 마지막 날엔 이처럼 하얀 구름들이, 가장 보통의 색인 뉴욕 하버 위에 가만히 떠있었다.



어떤 여행지의 하늘과 바다, 혹은 노을과 별빛 그중 하나만이라도 여행자의 마음을 낚아챈다면,

그 도시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오래오래 기억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다음에 바라볼 바다는 과연 어떤 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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