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 #7. Musical "The Lion King"
시험 기간만 되면 으레 치르는 행사가 있다.
눈은 교재를 읽는데, 귓가에는 환청처럼 노래가 들려온다. 이어폰이 아니라 머릿속 콘서트장이 문제다. 평소에 자주 듣지 않던 노래까지 생각해가면서 혼자 콘서트 무대감독 일을 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위험한건 첫째로, 연도별 유행가 리스트. 그만큼이나 악명 높은 것은 디즈니 OST다.
수많은 명작에 등장하는 곡 중 한 곡이 떠올랐다면, 그게 뭐든 이미 늦었다. OST를 머리에서 틀고 있자면 자연스레 애니메이션 그림까지도 같이 보고 싶어지는게 인지상정. 내가 흥얼거리는 것보다야 화면속 티몬이 눈썹 찡그리며 노래하는 디테일을 확인하는게 훨씬더 쾌감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튜브에 접속한 이후 단 한 편의 영상만 보고 휴대폰을 끌 수 있는 자 누구랴. 이제야 풍악이 울리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어깨를 진정시키고 폰을 끈단 말인가. 결국 원래 듣고자했던 'Hacuna matata' 외 모든 라이온킹 곡들을 다 듣고야 만다. 언제 들어도, 얼마나 들어도 질리지 않는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의 주제가.
그 곡들이 2D 명작이 뮤지컬 무대에 올라 살아 숨쉬는 인간들에게 불린다고 했을 때, 나는 우선 작품에 대해 감도 잡지 못했다. 뮤지컬 라이온킹이 있다는걸 알게 된게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인데 그때만 해도 뮤지컬을 한두편밖에 보지 않아 영화의 뮤지컬 각색이 어떤 것인지, 어떤 방향으로 이 유명한 스토리를 각색해나갈지 궁금했을뿐 구체적인 소리와 이미지는 상상하질 못하였다. 내가 갖고 있는 단서란, 유튜브에 올랐던 '기내 라이온킹 팀 무대' 영상뿐이었다. 인간의 목소리로 자연의 소리만큼 오묘하고 다채로운 소리를 내려 시도한 작품이라니, 그때문에 작품에 대한 기대치도 높았었다.
민스코프(Minskoff) 극장. 그곳에서 바로 뮤지컬 라이온킹을 보게 되었다. 좀 색다른 의미에서 '놀랍다'고 말한다면, 스토리와 대사가 판박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각색곡과 그 앞뒤 추가장면을 제외하면 원작 애니메이션과 대사 하나하나가 다 똑같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론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난뮤지컬 가까이서 보는걸 선호하는데 멀리서 본데다 무대가 꽉찼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인형극 스러운 느낌이 많이 들었던 탓인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실망 가운데서 하나의 보석을 발견했는데, 바로 이 곡이다.
Wait, there's no mountain too great
Hear these words and have faith, oh, oh, iyo
He lives in you, he lives in me
He watches over-- everything we see
Into the waters, into the truth
In your reflection, he lives in you
- 'He lives in you'*
극에서 이 곡은 두 번 등장한다. 1막에서 무파사가 어린 심바에게 조상들 이야기를 하는 장면, 그리고 구름을 타고온 무파사 장면으로 유명한 2막 심바의 각성 장면에서다. 나는 별이 총총 떠있는 밤하늘을 배경으로 아버지의 가르침이 들리는 첫장면도 좋았지만, 두번째 장면에서야 말로 그 노래는 내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 깊숙이 꽂히고야 말았다. He lives in you. He가 아니라 She든 It 이든 무엇이든 좋았다. 무언가가 내 안에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 이 문장이 찌른 바로 그곳에서, 그 좁은 곳에 아직도 살아있는 그 무언가의 숨이 내뱉어지는 것 같았다.
지난 7일동안 뉴욕에서 보고들은 화려한 광경들과 즐거움만큼이나, 그 즐거움 밑에 숨겨진 불안과 후회들을 떠올려 본다. 그들은 뉴욕을 딛기 전부터, 꿈을 이룰까 두려워하고 조급해하던 순간, 아니 어쩌면 꿈이 생겨난 그 순간부터 어쩔 수 없이 내 속에 쌓여왔었다.
이제야 그 속을 들여다보니, 보이는건 작은 구식TV 앞에서 영화를 보던 어린 나였다. 심바는 아버지의 피와, 가르침과 조상의 정신이 자기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느낀 것은 아직도 어린 내가 내 안에 남아있다는 '자명한' 사실이었다. 다소 유치하지만, 꼭 '영화의 신'이 있어서 나를 항상 지켜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제 너는 훌쩍 자라서 강해졌으니 더 큰 어려움을 이길 수 있다'는 말보다
'너에겐 아직 잃지 않은 것이 있고, 언제든 넌 네 안의 불을 다시 켤 수 있다'는 말이 더 큰 위로라고.
변해서 강해졌다는 것보다, 아직 변하지 않은 무언가가 네 안에 있다는 말이 더 소중할 때가 있다고 말이다.
밖에서 외치는 '힘내' '이겨내'라는 말은 때로는 강요되는 긍정이다. 그걸론 순간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언정, 진정으로 강해지고 새로워질 수는 없다. 중요한건 내 자신, 내 안의 순수를 다시 마주하는 일이다. 바깥에서 누군가 '나'를 던져줄 수는 없다. 나를 가진 것도 나요, 잃은 것도 나이며, 그걸 다시 되찾는 것도 또 되찾을 수 있는 곳도 결국 '나'다.
내 잘못이든 남의 잘못이든 그 어떤 것이 가려는 길을 비틀고 그 길에 놓인 나 역시도 갈피를 못잡게 되면서, 겨우 중심을 잡았다싶으면 다시금 그 길을 의심하게 되는 지난한 탐색의 여정. 옳은 답의 기쁨보다 틀린 답의 충격이 더 커서, 결국엔 질문을 하고 답을 내리는 것조차 두려워진 일들. 그러나 무수한 옳고 그름 이전에 내가 바랬던 것, 실로 사랑했던 것은 딱 하나였음을 다시 깨우치게 되는 경험은 그야말로 소중하다. 다만 그 내면의 마주함 한번이 얼마나 힘든지 그게 아쉬울 따름이다.
이 노래를 듣자마자 난 '인생의 팔 할'인 영화와 더불어 내 유년부터 내 안에 숨어있었던 나머지 이 할을 다시 되새겨보았다. 그게 무엇인지 확실히 이름을 댈 순 없지만, 어떤 작은 숨이 아직 꺼지지 않고 가슴 속에 남아있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영화를 꿈꾸면서도 나는 한때 사람들에게 봉사하며 살고 싶기도 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 전도사가 되고 싶기도 했다(특히 입시로 힘들었던 고3 때 친구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혹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작가처럼 세계 곳곳을 다니며 사람들의 눈빛을 카메라에 담고, 이곳저곳의 역사와 지리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런 의미에서 나는 '모험' 영화를 좋아했고, '역사'를 다룬 영화를 좋아했으며 무엇보다도 누군가의 '상처'를 치유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던 것 같다. 지금은 희뿌연 안개에 뒤덮인 말이지만, 이런 말을 스무살 대학동기들 앞에서 자기소개랍시고 썼던 때, 그땐 이 모든게 나의 진심이었다.
8월의 어느 밤,
그 진심의 숨결이 허옇게 브로드웨이 공중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러나 사라졌다 해도 기억해야겠지.
수많은 인공조명이 교차하는 도시 한복판,
북극성처럼 빛난 그 말을 이 화려한 도시에서 결코 잊지 말아야겠다.
무파사가 이야기한 것처럼.
"Remember who you are."
* 해당곡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hjfM6NiMGG4